왼쪽부터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
적폐청산. 박근혜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 단어다. 하지만 최근 신한금융지주의 최고위층에선 이런 시대적 과제를 역행하는 발언이 공공연하게 흘러나온다.
지난 9일 ‘신한사태’ 발발 7년 만에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신한사태는 2010년 당시 이백순 신한은행장이 지주의 신상훈 사장을 횡령 등의 혐의로 고소하는 전례 없는 일로 시작됐다. 이는 신한금융 내 절대권력으로 네번째 연임에 성공했던 라응찬 당시 지주 회장이 이 행장 등을 내세워 신 사장을 내치려다가 발발한 ‘경영진 내분사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사태를 계기로 정치권과 연루된 금융회사 내부의 부패와 비리 의혹들이 터져 나왔다는 점이 중요하다. 2008년 라 회장의 지시로 이 행장이 이상득 한나라당 전 의원에게 3억원을 전달했다는 의혹, 라 회장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50억원을 전달했다는 의혹 등이 줄줄이 불거졌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흐지부지된 채 넘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은 신 전 사장에 대한 고소 건 대부분을 사실상 무혐의로 본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신 전 사장은 라 전 회장의 지시에 따른 일부 횡령죄만 인정돼 2천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고소를 감행했던 이 전 행장은 금융지주회사법 위반죄 등으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고소당한 사람보다 고소했던 사람이 되레 더 무거운 형을 받은 셈이다.
사법부가 신한사태에 대한 법적 매듭을 7년여 만에 내놨지만, 신한금융은 ‘이제 옛날얘기는 그만하자’고만 한다. 사태 임시봉합 이후 지주 회장으로 6년여간 재직했던 한동우 회장은 지난 14일 퇴임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회장부터 주요 그룹사 사장까지 다 바뀌어 새 출발 하는데 과거 일이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된다”며 “누가 옳았냐 그르냐를 따지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게다가 지주 이사회는 그간 재판이 진행 중이란 이유로 신 전 사장의 스톡옵션 권한 행사를 보류해왔다. 이는 신 전 사장의 명예회복과도 관련 있는데 신한금융 쪽은 이를 어찌할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한 회장은 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새로 구성되는 이사회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23일 열릴 신한금융 주총에서 확정될 새 사장단엔 신한사태 당시 등장했던 이름들이 포함돼 ‘라응찬 인사’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신한사태 당시 지주 부사장이었던 위성호 신한은행장, 당시 신한은행 부행장이었던 김형진 신한금융투자 사장,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 등이 그러하다. 최근 위 행장 선임을 막겠다고 검찰 고발까지 나섰던 금융정의연대 김득의 대표는 “신한사태 주역들이 승승장구 하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신 전 사장은 “신한사태 주도자들이 누구인지조차 밝히지 않은 채 덮고 간다면 조직에 무슨 발전이 있겠습니까”라며 씁쓸해했다. ‘초격차 신한’, ‘탁월한 신한’ 등을 앞세우는 신한금융 현 경영진이 ‘적폐청산’이 시대적 요구가 된 이유를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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