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를 통해 금융그룹 통합감독 방안 추진을 밝힌 바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
2013년 동양그룹이 파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재벌그룹들이 금융 계열사를 사금고로 인식한다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다. 동양그룹은 ㈜동양 등 그룹 주력 계열사의 자금난을 덜기 위해 동양증권과 동양파이낸셜대부 등 금융사를 공격적으로 활용했다. 이들 금융사들은 고금리를 미끼삼아 기업어음(CP)과 개미 투자자들로부터 1조원 안팎의 자금을 끌어모아 그룹의 주력 계열사를 지원했다. 이런 편법적 자금 융통마저 한계에 부딪히면서 그룹은 해체됐다. 손실을 본 개미투자자가 4만명을 넘었고, 손실액도 2조원에 육박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당시 금융당국은 별다른 대응에 나서지 못했다. 편법 자금 융통의 뿌리인 동양그룹 주력 계열사들이 감독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금융그룹 통합감독’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27일 금융연구원은 공청회를 열어, 금융그룹 통합감독 도입을 위한 구체 방안을 제시했다. 금융위는 금융연구원 안을 토대로 연내 정부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금융그룹 통합감독 도입 방안의 핵심은 감독 범위와 내용이다. 감독 범위는 어디까지를 감독 대상 ‘금융그룹’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다. 이날 금융연구원은 그룹의 총자산이 20조원이 넘으면서 동시에 권역이 서로 다른 두개 이상 금융계열사의 보유 자산이 각각 5조원이 넘는 그룹을 1안으로 제시했다. 이렇게 되면 삼성·현대차·한화·동부·롯데·미래에셋·교보생명 등 7곳이 감독 대상이 된다. 또 자산 규모와 무관하게 금융계열사가 두 곳 이상인 그룹 중 동종업종에만 계열사가 포진한 그룹은 제외하는 방안(2안)과 두 곳 이상 금융계열사가 있는 모든 그룹을 감독 대상으로 하는 방안(3안)도 나왔다. 2안의 경우, 증권·자산운용·선물회사를 소유하는 등의 동종금융그룹은 업권별 연결감독을 통해 통합 위험관리가 가능하다는 취지에서 나온 방안이다. 2안과 3안 기준으로 하면, 각각 17곳과 28곳이 감독 대상으로 꼽힌다.
이런 방안들에는 현재 통합 감독을 받고 있는 금융지주회사나 은행이 모회사인 그룹은 빠져 있지만, 삼성·현대차·한화·동부·롯데 등 주요 그룹들은 어떤 방안으로 결정되든지 간에 감독 대상에 포함될 전망이다. 금융위 쪽은 이 가운데 2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감독대상이 된 금융그룹들은 금융당국이 제시하는 자본요건을 맞춰야 하며, 일정 규모 이상 자금 거래를 계열사 끼리 할 때도 해당 거래 내용과 더불어 이 거래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또 금융당국이 지정한 ‘대표회사’는 그룹 차원의 위험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룹 사주나 계열사에 돈을 빌려줄 때도 그 한도가 제한된다.
이런 감독 내용은 그룹을 각 계열사 단위로 쪼개서 들여다보는 데서 한발 나아가 그룹 전체를 한 묶음으로 해서 자본의 적정성과 위험 관리를 당국이 들여다보겠다는 취지다. 가령 삼성전자가 반도체나 휴대전화 사업에서 큰 손실을 볼 경우, 이런 손실이 금융계열사인 삼성생명이나 삼성증권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금융당국이 삼성그룹 전체를 감독하고 위험 전이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도록 조처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금융당국은 금융지주회사법 전면 개정으로 통합감독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금융당국은 곧바로 법제화를 추진하는 대신 일단 모범규준(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감독 내용과 범위를 정한 뒤, 각 금융그룹들이 자율적으로 이 규준을 준수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통합감독이 가능하도록 금융당국 조직도 재편할 계획이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1990년대 말 이후 겸업화 흐름이 확대되면서 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선 대부분 ‘통합감독’ 체계가 구축됐고 2008년 위기 이후에는 좀더 강화되는 흐름”이라며 “한국도 겸업화 확대로 2개 이상의 금융회사가 동일 지배력으로 연결된 복합금융그룹이 매우 확대된 터라 이런 구조에서 비롯되는 그룹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통합감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공청회에서 전문가들은 “금융계열사가 비금융계열사에 출자한 지분은 자본적정성 평가에 제외해야 한다” “감독 대상 범위가 너무 넓다”(민세진 동국대 교수)거나 “금융지주회사와 은행이 모회사인 그룹도 통합감독 대상에 포함시켜 통합감독의 일원화가 필요하다”(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등의 의견을 쏟아냈다. 금융권에선 통합감독이 시행되면 금융 계열사가 비금융 계열사에 상당히 많은 출자를 하고 있는 삼성그룹과 지주회사 전환을 회피하며 규제 차익을 누리고 있는 미래에셋그룹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한다.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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