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구 금융위원장이 16일 오후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금융위가 2008년 ‘금융실명제 종합편람’을 펴낸 것을 보면, 차명계좌는 실명전환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왜 제대로 안 했나? 이명박 시절 금융위가 삼성 맞춤형 특혜를 제공한 것 아닌가? 왜 삼성 앞에만 서면 작아지나?”(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삼성 앞에서 작아질 이유가 없다. 1997년과 1998년 판결이 서로 상반되는 것으로 나온다. 최종적으로 2009년 판결에 따르면, 1998년 판결은 차명거래 일반에 적용하기 어렵다.“(최종구 금융위원장)
16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선 이건희 삼성 회장 차명계좌의 실명전환 대상 여부를 두고 날선 공방이 벌어졌다. 금융위는 2009년 대법원 판결을 준용하면 삼성 차명계좌가 실명전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삼성 쪽은 해당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명의변경을 마친 상태였다.
금융위가 이날 거론한 2009년 대법원 판결(2009.3.19 선고 2008다45828)의 요지는 예금 명의인이 실명으로 계좌를 개설했다면 실소유주가 누구인지와 무관하게 실명거래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2006년 남편이 아내를 대리해 아내의 주민등록증 사본 등 관련 서류를 갖춰 아내 명의로 저축은행에 계좌를 개설하고 4200만원을 예치했다. 예금의 출처가 남편의 계좌인데다 비밀번호 등 계좌관리도 평소 남편이 해온 점 등을 근거로 금융기관이 예금계약자(돈 주인)를 남편으로 판단해 송사로 이어졌는데, 대법원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출연자 등이 아닌 명의자를 예금거래자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2009년 판결은 원칙적으로 실명확인이 됐으면 금융실명제법 위반이 아니란 것이다. 즉 명의인의 자산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박용진 의원은 “2009년 대법 판결을 근거로 어떻게 2008년에 내린 금융위 결정을 설명할 수 있느냐, 금융위가 무당이냐”고 반격에 나섰다. 이미 삼성이 상당한 차명재산을 금융실명제법에 따른 실명전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단순 명의변경에 그친 것은 금융위가 근거로 제시한 2009년 대법 판결이 나오기 전에 이루어진 탓이다. 삼성은 2009년 2월18~19일 문제가 된 차명재산의 상당액인 삼성전자 보통주 224만5525주와 우선주 1만2398주, 삼성생명 주식 324만4800주 등을 실명으로 전환했다고 공시한 바 있다.
더군다나 금융위가 2008년 8월에 펴낸 ‘금융실명제 종합편람’도 국감에서 도마 위에 올랐지만, 금융위 쪽 답변이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는 당시 편람에 관련 대법원 판례 9개 가운데 차명계좌가 실명전환 대상이라고 한 1998년 대법 판결을 기재하고, 금융위가 애초 국감 답변자료에서 실명전환 대상이 아니라는 근거로 들었던 1997년 대법 판결은 수록하지 않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최종구 위원장은 “2008년에 낸 편람은 더 이상 배포하지 않고 배포를 중단한 상태”라고만 답했다.
최 위원장이 이날 “1997년 판결과 1998년 판결이 상반된다”고 말한 대목을 두고도 뒷말이 나온다. 1997년 노태우 비자금 판결은 중요 사건의 경우 전체 대법관들이 모여서 결론을 내는 전원합의체 판결로, 몇달 뒤 항소심과 대법원 소부가 이를 뒤집는 판결을 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실제 전원합의체 판결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서만 판례 변경이 가능하다. 쟁점이 다르기에 두 판결이 공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1997년 판결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인 차명계좌를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 대신 실명전환한 사건에서 실명전환 과정에서 제3자인 실소유주까지 확인하는 게 금융기관의 업무인지에 관한 것이고, 후자는 일반적인 차명계좌 운용에서 실명전환에 따른 과징금·세금 부과가 옳은지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임직원 명의 계좌를 운영한 이건희 차명계좌 처리에 관해서는 후자 쪽을 따르는 게 옳지만 최 위원장은 ‘혼재돼 있다’, ‘상반되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초점을 피해갔다.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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