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3분기에 1.4%나 성장하면서, 정부가 예측한 올해 3%대 성장이 확실시되고 있다. 반도체가 주도하는 수출 호조에 힘입은 결과지만, 민간소비는 여전히 부진한 모양새다.
한국은행은 26일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속보치)’ 자료를 내어, 올해 3분기 국내총생산(GDP)이 2분기 대비 1.4% 성장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 분기 대비 0.8%포인트, 전년 동기 대비 0.9%포인트 높은 수치다. 또 2010년 2분기(1.7%) 이래 7년여 만에 가장 높은 분기 성장률로, 애초 정부와 시장 평균 예측치인 0.8~0.9%를 크게 웃돈 ‘깜짝 성장’이다.
분야별로는 단연 수출의 기여도가 높았다. 반도체가 선봉에 서고 화학제품과 자동차가 뒤를 받쳐주며 3분기 수출은 6.1%나 증가했다. 특히 9월 수출액은 1956년 무역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인 551억3천만달러에 이르렀고, 월간 수출 증가율도 2011년 4월(44.7%) 이후 6년여 만에 최대인 35%를 기록했다. 수출 호조 영향으로 제조업 성장률도 2012년 1분기(2.8%) 이래 6년여 만에 최고치인 2.3%에 달했다. 9월 말 기준 집행률이 80.6%를 기록한 추가경정예산(추경)의 빠른 집행도 힘을 보탠 것으로 보인다. 추경안은 7월22일 국회를 통과한 뒤 두달 남짓 동안 국채 등 상환액을 뺀 사업예산 9조6천억원 중 7조7천억원이 집행됐다. 정부소비는 건강보험급여비 지출 증가 등으로 3분기 증가율이 2.3%에 달했다. 이외에도 2분기에 0.3%로 저조했던 건설투자가 1.5% 증가로 반등했고, 설비투자도 산업용 전기기기와 정밀기기 등 기계류를 중심으로 0.5% 증가했다.
앞서 1분기 성장률 1.1%, 2분기 성장률 0.6%를 고려하면, 올해 3분기까지 한국 경제의 누적 성장률은 3.1%다. 정부 목표치이자 한국은행 전망치인 ‘올해 3% 성장’을 이미 넘어선 셈인데, 4분기에 -0.5% 이상만 성장하면 올해 목표는 달성하게 된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른바 북핵 리스크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관련 중국의 경제보복 등 악재가 해소되지 않았고, 수출 의존형 ‘외끌이 성장’이 거둔 성적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상 최대라는 9월 수출도 알고 보면 10월 초 열흘이나 이어진 연휴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업체들이 연휴를 앞두고 조기 통관을 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4분기 수출은 예년보다 증가율이 낮을 수 있다. 이런 연휴 효과를 빼면 3분기 성장률이 1.4%가 아니라 1.0% 수준이라는 분석도 일각에선 나온다.
우려되는 지점은 꽁꽁 언 민간소비다. 민간소비 3분기 증가율은 0.7%로 2분기(1%)에 견줘서도 낮다. 수출이 크게 늘고 정부도 씀씀이를 늘리고 있지만, 정작 국민은 지갑을 닫고 있다. 수출이 내수나 고용에 미치는 효과도 예전만 못할뿐더러, 최근 수출 증가를 주도하고 있는 반도체는 고용창출 효과가 낮다. 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펴고 있지만 가시적 성과가 나올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탓이다. 성장률 호조에 따라, 다음달 30일 열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인상이 좀더 확실시되는 분위기다. 두드러진 성장세가 금리 인상으로 가는 근거를 강화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이 엄청난 성과를 낸 것인데, 또다른 측면에서 보면 대외경제 여건에 따라 수치가 급격하게 출렁이는 것으로 우리 경제가 대외 여건에 얼마나 의존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여전히 부진한 고용 여건과 내수 경기 등을 볼 때 추세적인 회복세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순혁 허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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