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드 방식의 모바일 결제. 위키미디어 커먼스
“이걸로 다 결제가 되는 것인가?”
지난 14일 중국을 방문 중이던 문재인 대통령이 현지에서 아침식사를 한 뒤 했다는 말이다. 중국 일반인들이 찾는 식당을 찾아 꽈배기 빵과 두유 등으로 식사를 한 뒤 대사관 직원이 테이블 위 바코드에 스마트폰을 갖다대고 값을 치르자, 이렇게 쉽고 빨리 처리되느냐며 놀라 물었다는 것이다. 결제액이 68위안(1만1200원)으로 비교적 소액인 데다, ‘중국은 대부분 모바일 결제를 한다’는 노영민 중국대사의 답변까지 더해지면서 중국의 ‘간편결제’가 화제에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노영민 주중국 대사 부부와 함께 14일 오전 중국 베이징의 한 식당에서 현지인들이 즐겨먹는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스마트폰을 이용한 간편결제는 이른바 금융과 정보기술(IT)을 융합한 핀테크 산업의 대표적인 서비스로, 한국에서도 이용이 빠르게 늘어왔다. 하지만 중국보다는 확산 속도가 뒤처지고, 결제를 처리하는 주된 방식 면에서도 차이가 난다.
카페에 붙은 위챗페이와 알리페이 QR코드 결제 안내문. 플리커/해럴드 그로븐
■ 1년 반 새 시장규모 5배 이상 늘어
스마트폰을 이용해 손쉽게 물건값을 치르는 간편결제 시장은 한창 뜨는 분야다. 한국은행이 지난 19일 내놓은 ‘3분기 전자지급서비스 이용현황’을 보면, 올 3분기 하루 평균 간편결제(지급카드 기반서비스) 이용건수는 243만건, 이용액은 762억원이었다. 전 분기(187만건·567억원)에 비해 30%가량 늘어났고, 한은이 관련 집계를 시작한 지난해 1분기(44만건·135억원)에 비해서는 5배 이상 늘어났다. 현재 증가 추세대로라면 올해 시장규모는 23조~24조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다만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간편결제는 ‘지급 카드 정보 등을 모바일기기에 미리 저장해두고 거래 시 비밀번호 입력, 단말기 접촉 등으로 결제하는 서비스’로, 금융사들의 앱카드와 이동통신사들의 간편결제 서비스(T페이, 클립카드), 주차장 이용료 같은 군소서비스 등은 집계에서 빠져 있다.
한화투자증권 김소혜 애널리스트는 최근 ‘간편결제 시장의 재편과 본격적인 성장의 시작’ 보고서에서 “(한달 60조원가량인) 국내 신용카드 거래액에서 간편결제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지난 2분기 기준으로 약 3% 수준”이라며 “아직 초기 단계이므로 당분간 고성장세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제조·유통·IT 업체들 뛰어들어 각축
한국에서 간편결제는 2014년 9월 카카오페이 등장과 함께 시작됐다. 온라인상에서 은행계좌에 연동해 충전해둔 카카오머니로 물건값이나 서비스 이용 대금을 결제하는 서비스였다. 이후 네이버(네이버페이·라인페이)라는 포털, 옥션·지마켓(스마일페이)·티켓몬스터(티몬페이)·에스케이플래닛(시럽페이) 등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 네이버에서 갈라져 나온 엔에이치엔(NHN)엔터테인먼트(페이코)·케이지(KG)이니시스(케이페이)·엘지유플러스(페이나우) 등 전자지급결제대행업체(PG사)들이 뛰어들었다. 여기에 롯데(L페이)·신세계(SSG페이) 등 유통사들과 에스케이텔레콤(SKT·T페이)·케이티(KT·클립페이) 같은 이동통신사, 삼성전자(삼성페이)·엘지전자(엘지페이) 같은 스마트폰 제조사들까지 가세한 상황이다.
현재 간편결제 시장은 스마트폰 제조사 진영의 삼성페이와 범유통 쪽 대표랄 수 있는 페이코, 정보통신기술(ICT) 쪽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가 주도하고 있다. 간편결제 이용 추이를 집계한 한은 전자금융조사팀 송윤정 과장은 “온라인에서만 결제할 수 있는 정보통신기술 쪽보다 온라인·오프라인 모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통·제조사 쪽에서 사용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은의 지난해 1분기와 올해 3분기 간편결제 건수와 이용액 자료를 보면, 유통·제조업체 쪽의 오프라인 결제규모는 17만건·48억원에서 148만건·319억원으로 7배가량, 온라인 결제규모는 5만건·15억원에서 39만건·226만건으로 10배가량 급증했다. 정보통신기술 쪽 온라인 결제는 22만건·72억원에서 57만건·216억원으로 3배가량 증가하는 데 그쳤다.
CES 2016 기자간담회에서 신용카드 기반 모바일 결제 서비스 ‘삼성 페이’를 설명하는 팀 백스터 삼성전자 미국법인 부사장. 위키미디어 커먼스
■ 신용카드 내장형이 대세…한국식 한계
한국의 간편결제 시장에는 스마트폰제조·유통·정보통신기술 업체들이 죄다 뛰어들어 치열하게 각축을 벌이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1998년 설립된 온라인결제서비스 업체인 페이팔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라는 알리바바(알리페이)와 중국판 카카오랄 수 있는 텐센트(위챗페이)가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데, 올해 1분기 결제액이 18조8천만위안(약 3100조원)에 육박한다. 같은 시기 한국의 간편결제액은 하루 평균 447억원(한국은행 집계)으로, 중국의 200분의 1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시장규모는 물론 결제 방식도 한국이 뒤처진다. 문 대통령 사례에서 보듯, 중국에서는 스마트폰으로 큐아르(QR)코드나 바코드를 읽어 결제를 처리하는데, 한국에서는 신용카드 탑재(또는 연동)가 주된 방식이다. 간편결제 앱 등을 통해 상대적으로 편리하게 이용할 뿐, 근본은 신용카드 결제의 한 방식이란 얘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은 신용카드가 워낙에 많이 보급돼 있다. 따라서 플라스틱 카드를 들고 다니는 대신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카드를 긁는 방식이 널리 퍼지는 중이다. 반면에 중국은 신용카드 보급이 덜 돼 있어 바로 모바일로 넘어갔다. 카카오머니처럼 (일종의 사이버머니를) 충전해놨다가 필요할 때 스마트폰으로 바코드 등을 읽어 결제하는 방식이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신용카드 결제수수료·가맹수수료·회비 등을 낼 필요 없어 가입자나 이용자 모두에게 더 저렴하고, 매장마다 단말기를 설치할 필요도 없다. 좀더 진정한 혁신에 가깝다는 얘기다.
패스트푸드점의 알리페이·위챗페이 간판. 위키미디어 커먼스
■ 경제 소비생활의 플랫폼을 향하여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간편결제 시장은 한창 떠오르는 분야다. 페이코는 모회사에서 분할해 독립한 지 5개월 만인 지난 9월 5200억원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지에스(GS)홈쇼핑과 한화인베스트먼트로부터 각각 500억원(9.8%), 250억원(4.9%)을 투자받았다. 그만큼 가능성 있는 분야로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다.
시장을 주도하는 4개사의 저마다 다른 전략도 볼거리다. 시장을 가장 먼저 개척하고도 한발 밀린 카카오 쪽은 “내년 상반기 오프라인 간편결제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중국에서 일반화한 큐아르코드와 바코드를 읽어 결제하는 방식을 채택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반면에 네이버 쪽은 “당장에는 오프라인 간편결제 시장 진출 계획이 없다. (네이버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여서 오프라인 쪽 진출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는 오프라인 결제시장 진출을 통한 도약을 노리고, 네이버는 온라인에서의 지배력 강화에 주력하는 식으로 전략이 나뉜 셈이다.
페이코와 삼성페이도 지난달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고 각사의 온·오프라인 네트워크를 공유해 경쟁력을 강화해나가기로 했다.
일단은 시장확대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모양새인데, 진정한 승부는 그 다음인 플랫폼화에서 날 전망이다. 단순 중계를 뛰어넘어 소비생활의 중심이 되는 플랫폼이 돼야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간편결제 선진국인 미국이나 중국에서는 이미 여러 모델이 시도되고 있다. 간단한 신청·승인 절차를 밟아 99달러 이상 제품 구매 때 무이자 대출을 해주는 서비스로 신용판매 쪽에 진출한 페이팔, 고객예치금으로 세계 최대인 1조4천억위안(올 상반기 기준·240조원) 규모 머니마켓펀드(MMF)를 운용하며 모바일금융의 핵으로 떠오른 알리바바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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