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미국은 노년층일수록 부채비율이 줄어드는 반면 한국은 노년에 부채비율이 증가한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나이가 들수록 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대책이 부족한 상황에서 빚을 내서라도 부동산에 투자하려는 경향이 강한 결과로 풀이된다.
24일 한국은행이 최근 3년간(2013~2016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세대별 가계부채의 특징 및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노년에 접어들수록 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상승하는 추세가 두드러졌다. 16~34살 연령대에서 81.8%였던 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35~44살에서 104.4%로 올랐다가 45~54살과 55~64살 연령대에선 각각 89.6%와 80.3%로 주춤했다. 하지만 65~74살에는 105.5%로, 75살 이상 연령대에선 121.2%로 다시 반등했다.
이에 견줘 유럽의 경우엔 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35~44살 136.1%로 정점을 이룬 뒤, 45~54살 79%, 55~64살 43.8%, 65~74살 33.9%, 75살 이상 17.3% 등으로 점차 낮아졌다. 미국도 35~44살 158.5%, 45~54살 164.3%까지 올랐다가 55~64살 115.7%, 65~74살 96.4%, 75살 이상 70.4%로 떨어졌다.
유럽과 미국에선 가정을 이루고 자식들을 키우는 청년층~중장년층 시절 빚이 늘다가 노년층에 접어들면 줄어드는 생애주기에 충실한 모습을 보인 반면, 한국은 한창 경제생활을 하고 가정을 건사할 때보다 나이가 들어서 빚이 더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보고서는 이런 현상을 부동산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임대보증금 부채 증가분의 세대별·소득수준별 기여도를 분석한 결과, 60대 5분위(소득 상위 20%)가 40.9%로 가장 높았고, 60대 3분위 36.6%, 40대 4분위 32.7%, 60대 4분위 25.2%, 60대 2분위 19.7%, 50대 5분위 10% 등의 차례였다. 60대는 최하위 소득계층인 1분위를 제외한 모든 소득계층에서 장차 세입자에게 내줄 임대보증금 부채를 늘린 셈이다. 3년 새 증가한 임대보증금 부채 총액에서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120%에 달했다. 대출이나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갭투자)하거나 기존 전월세 보증금을 인상한 노년층이 그만큼 늘었다는 얘기다.
한은 조사국의 한경수 거시재정팀장은 “우리나라는 연금제가 발달돼 있지 않아서 노년층 소득이 낮고, 대신 실물자산 선호도가 높다”며 “자산이 분산돼 있을수록 안정성이 있는데 (다른 세대들에 비해) 실물자산에 너무 쏠려 있어 유동성 리스크에 취약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2013~16년 사이 증가한 주택 실수요 금융부채는 60대 2~5분위, 50대 4~5분위, 40대 3~4분위 등에서 고르게 늘어난 반면, 주택 투자용 금융부채 증가분은 50대와 60대 5분위(소득 상위 20% 이내)의 몫이 90%다.
한편 최근 부동산(주택) 투자를 위한 금융기관 대출은 50대와 60대 고소득층이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2013~2016년 사이 336조원에서 514조원으로 늘어난 주택 실수요 금융부채와 150조원에서 239조원으로 늘어난 주택 투자용 금융부채의 세대별·소득별 비중을 조사했다. 그 결과, 실수요 금융부채 증가 기여율은 50대 5분위(22.2%), 40대 4분위 14.9%, 60대 이상 5분위 10%, 40대 3분위 10% 순으로 세대·소득별로 비교적 고르게 분포했다. 이에 반해 주택 투자용 금융부채 증가 기여율은 50대 이상 5분위(소득 상위 80~100%)가 54.4%, 60대 이상 5분위가 34.8%로 전체의 90% 가까이 차지했다. 50대와 60대 고소득층이 부동산 투자용 대출 증가액의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노년층은 소득에 비해 가계부채가 많고 금융자산 대비 부채비율이 높은 가계가 상대적으로 많다”며 “정책당국은 건전성이 취약한 노년층의 부채 확대 및 실물자산 의존도 심화라는 리스크 확대에 유의해 정책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