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연임될 전망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본 위원이 이주열 후보자가 한국은행 총재 후보가 되는데 많은 기여를 했는데 혹시 알고 계십니까?”
“몰랐습니다.”
“제가 (한은 총재도) 인사청문회를 실시해야 된다는 한국은행법을 발의했습니다.”
“예, 기억합니다.”
2014년 3월19일, 국회에서 열린 한은총재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민주당 이용섭 의원과 이주열 후보자 간에 오간 대화의 한토막이다. 실제 한은 안팎에선 당시 이 총재 후보 지명의 일등공신으로 인사청문회를 꼽는 이들이 적잖았다. 한은 총재도 인사청문회를 거치게 되면서, 정치색이 짙거나 법적·도덕적 하자가 있는 인사들이 검증 과정에서 낙마했다. 그 결과 한은 출신인 이 총재에게 ‘기회’가 왔다는 얘기였다.
2일 차기 총재 후보자로 지명된 이 총재는 1998년 한은 총재가 금융통화위원장을 맡게된 뒤로 첫 연임 총재가 되는 영예를 안게 됐다. 이번에도 안팎의 환경이 이 총재에게 유리했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이날 “문 대통령이 먼저 ‘다른 나라에서는 (중앙은행 총재들이) 오랫동안 재임하면서 통화정책을 안정적으로 이끄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도 (연임이) 가능한지 살펴보라’고 지시했다”며 “(검증을 거쳐) 최종 후보자 3~4명이 올라왔는데 이 총재의 경륜이나 경험보다 딱히 월등하다고 할 수 없고 비슷한 정도였다”고 전했다. 이번 연임 결정에는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통화정책의 중립성을 존중한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는 동시에, 특출한 다른 후보자가 없다면 통화정책을 무난하게 펴온 기존인사를 통해 거시경제상황을 안정적으로 이끌겠다는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로서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다른 ‘인사청문 리스크’도 줄일 수 있다는 잇점이 있다. 앞서 한은 총재 후보로는 외부 인사로 박상용 연세대 명예교수와 김홍범 경상대 교수 등이, 내부 출신으로는 이광주 전 부총재보 등이 거론된 바 있다. 이 총재의 연임으로 ‘점진적 완화 축소’라는 통화정책은 그대로 유지될 전망이다. 하지만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한미간 금리역전, 기업 구조조정 등 향후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고려해야 할 변수는 갈수록 늘고 있다. 국내 경기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대내외적 악재가 많은 상황이어서 보다 정교한 통화정책 구사가 필요한 상황인 셈이다. 결국 이런 과제들을 어떻게 잘 풀어가느냐에 따라, 국내에선 첫 실험이랄 수 있는 중앙은행 총재 연임의 의미가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은 총재 연임은 전례가 거의 없었기에 개인으로서도 큰 영광이지만, 중앙은행으로서 중립성이나 그 역할의 중요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한은으로서도 영예스러운 일이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워낙 엄중하기 때문에 책임의 막중함을 절감하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