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구 금융위원장은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금감원, 금융연구원, 기업지배구조원, 금융협회 및 학계·전문가들이 참석하는 간담회를 열어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위원회 제공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그룹 내 금융계열사의 지분을 들고 있는 재벌 총수 일가도 금융당국의 적격성 심사를 받게 된다. 또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는 금융 전문성과 도덕성, 공정성을 갖춰야 한다. 채용비리나 성폭력 시비에 휘말린 최고경영자들이 자칫 자리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태영 전국은행연합회장 등 금융협회장 및 전문가들과 한 간담회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설명했다. 우선 금융회사 대주주 적격성 심사 범위가 대폭 넓어진다. 현재는 금융회사의 최다출자자 개인 1명(법인 제외)만 2년마다 적격성 심사를 받았다. 앞으로는 최다출자자의 특수관계인 모두 이 심사를 받아야 한다. 금융계열사의 지분을 조금이라도 가진 재벌 총수 일가나 계열회사 등기임원들이 당국 사정권 안에 들어온다는 의미다. 삼성생명·화재·증권 지분을 보유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롯데손해보험 등의 주주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법인이 주요주주일 때도 적격성 심사를 받게 된다.
심사 대상자가 금융 관련 법령과 조세범처벌법, 공정거래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확정판결을 받으면 10% 초과 보유지분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를 지키지 않을 때는 금융당국은 해당 주주에게 지분 처분 명령도 내릴 수 있다. 다만 이재용 부회장 등 재벌 총수 일가들은 대체로 금융계열사 지분을 10% 미만으로 들고 있는 터라 실제 의결권 제한 또는 지분처분 명령을 받을 여지는 적다. 제도 개선의 실효성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나아가 이런 강화된 심사는 법 개정 이후 발생하는 위법 행위와 판결에만 해당한다. 현재 뇌물 공여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는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더라도 이번 개선방안의 영향권 밖에 있다는 뜻이다.
금융회사 최고경영자의 자격 기준을 강화한 것도 이번 개선방안의 핵심이다. 현재는 범죄를 저지르거나 행정제재를 받는 등의 경우에만 최고경영자나 임원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는 금융 전문성과 공정성, 도덕성 등의 요건도 충족해야 한다. 재벌그룹 내 비금융 계열사에서 경력을 쌓은 인사가 금융계열사 최고경영자에 오르기 어려워지고, 공정성·도덕성 시비에 휘말린 인사도 최고경영자 자격을 얻거나 유지하기 힘들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당국은 공정성과 도덕성 등의 구체적인 기준은 개별 금융회사들이 정하도록 했다. 김태현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개별 금융회사가 최고경영자의 적극적 자격 요건을 내부 규범에 반영토록 하고 이를 공시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투자자 등 시장이나 여론의 압박을 통해 최고경영자의 자질을 평가토록 한다는 취지다.
이외에도 사외이사가 연임할 때는 그 활동에 대해 외부기관의 평가를 받도록 하거나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 최고경영자가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거수기 논란을 빚는 사외이사 제도의 내실화를 위해서다. 금융회사 등기임원들의 보수도 임기 내 한 번은 주주총회에 안건으로 올려 주주들의 평가를 받도록 했다. 김태현 국장은 “관련 법 개정안은 오는 6월께 국회에 제출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 처리가 연내 이뤄지게 되면 이르면 내년 7월부터 본격 시행된다.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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