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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증권

살인·배임·뇌물범…저축은행 대주주 못되는데, 보험사는 돼?

등록 2018-03-28 05:00수정 2018-03-28 14:46

허술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재벌들이 많이 소유하는
보험·카드·증권사에만
대주주 자격 제한 느슨
9월국회 개정논의 불붙을 듯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감독원·금융연구원·기업지배구조원·금융협회 및 학계·전문가들이 참석하는 간담회를 열어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위 제공 사진.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감독원·금융연구원·기업지배구조원·금융협회 및 학계·전문가들이 참석하는 간담회를 열어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위 제공 사진.
<문제 1> 한 금융회사 대주주 ㄱ씨는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언쟁을 빚던 중 살인죄를 저질렀다. 우발적 행위를 인정받아 정상 참작을 받았지만 징역 10년형이 선고됐다. 확정 판결이 나온 뒤 금융위원회는 대주주로서 ㄱ씨의 권리를 제한하기로 했다. 그가 소유하고 있는 금융회사 지분 15% 중 5%의 의결권을 제한한다고 명령한 것이다. 해당되는 금융회사는 어느 곳일까? ①ㄱ카드 ②ㄴ생명보험 ③ㄷ투자증권 ④ㄹ상호저축은행 ⑤ㅁ캐피탈. 정답은 ④번이다.

<문제 2> 한 금융회사의 사장 ㄴ씨는 직원들과 회식 중에 폭력을 휘둘렀다. 그는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고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금융위가 임원으로서 ㄴ씨의 자격이 상실됐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그가 몸담은 회사는 어디일까? ①ㄱ카드 ②ㄴ생명보험 ③ㄷ투자증권 ④ㄹ상호저축은행 ⑤ㅁ캐피탈. 정답은 ①~⑤ 모두 해당된다.

금융당국이 금융회사의 대주주 자격 등을 심사할 때, 별다른 이유없이 업권별로 차등을 둘 수 있는 등 관련 법률상 허점이 수두룩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이와 관련한 법률의 정비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금융회사는 일반 기업과는 달리 금융당국으로부터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고객이 맡겨둔 재산으로 돈을 버는 업의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 기업에는 없는 대주주나 임원 자격 기준을 금융관련 법령에 명확히 담아두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2014년 제정된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은 금융당국이 2년마다 금융회사 대주주의 자격 요건을 심사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 요건은 ‘최근 5년간 공정거래법과 조세범처벌법, 금융관계법령을 위반해 벌금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지 않은 경우’를 가리킨다. 금융관계법령은 자본시장법이나 보험업법·여신전문금융업법 등 금융과 관련된 법령이다. 이 요건에 따르면 살인죄나 폭행죄 같은 중범죄는 물론 배임죄나 사기죄와 같은 형법을 위반한 범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현행법은 살인죄와 같은 중범죄를 저질러도 대주주 자격과 그 권리를 유지시켜 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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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같은 죄를 저질렀더라도 저축은행 대주주는 곧바로 의결권 제한 명령을 받는다. 상호저축은행법에 대주주 자격 유지 요건을 좀더 강하게 두고 있는 탓이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정부는 보유 지분 중 일부에 대해 매각 명령도 내릴 수 있다. <문제 1>의 정답이 ④번인 이유다. 저축은행 대주주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서 정하는 ‘금융회사 임원 자격’ 요건도 충족해야 한다. 임원 자격 요건은 대주주 자격보다 훨씬 더 까다롭다. 형법과 같은 비금융관련 법률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은 기록이 최근 5년 내 없어야 하며, 공정거래법·조세범처벌법·금융관계법령 위반으로 같은 기간 1천만원 벌금형 이상의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더라도 대주주 자격을 유지할 수 없다. 이는 <문제 2>의 정답이 ①~⑤ 모두 해당된 이유이기도 하다.

저축은행 대주주에 좀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 이유는 뭘까. 금융당국은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는 대신 타업권과는 다른 저축은행의 ‘흑역사’를 거론하고 있다. 윤창의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저축은행은 1972년 사채 양성화 조처에 따라 등장했다. 그 뒤 대주주의 탈법행위가 빈번해 다른 업권보다 부침이 컸다. 이 때문에 좀더 엄격한 대주주 자격 요건이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은행처럼 고객의 예금을 받는 수신 기능을 저축은행이 갖고 있다는 점도 다른 업권보다 더 강한 규제를 받는 이유라는 설명도 따라붙는다.

반면에 보험·카드사 등의 대주주에 느슨한 자격 유지 요건을 둔 것이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2012~2014년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제정을 위한 논의에서 재계 쪽 의견이 물밑에서 상당부분 반영되며 매우 허술한 대주주 자격 요건이 만들어졌다. 재벌 총수가 뇌물죄 등 중범죄를 저질렀을 때 저축은행 소유는 안되고 보험·카드사는 되도록 한 것은 부조리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금융당국의 한 간부도 “국내 보험사나 카드사들 상당수가 재벌 그룹 계열사라는 현실이 고려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경제·금융범죄가 아닌 살인·폭행과 같은 일반 범죄를 저지른 대주주에는 자격을 제한하지 않는 이유도 명확하진 않다. 신진창 금융위 금융정책과장은 “정답이 없는 문제다. 다만 일반 범죄의 벌금형까지로 범위를 넓히면 사실상 전과자는 금융회사 지분 소유 자체를 금지하는 결과를 낳게 돼 과잉입법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대주주보다 임원자격 요건이 좀더 엄격한 이유에 대해선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다’는 가정과 그에 따른 법체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대주주가 임원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현실인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는 9월 정기 국회에선 대주주 자격 요건을 강화하기 위한 법 개정 논의가 불붙을 전망이다. 이미 국회엔 보험사와 카드사 등의 대주주 자격 요건을 보다 까다롭게 두는 법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박찬대 의원(더불어민주당)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을 위반해 벌금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 천정배 의원(민주평화당)은 사기나 횡령·배임죄를 저질러 벌금형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에도 대주주 자격을 제한하는 지배구조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여기에 금융위원회도 최근 대주주 자격 심사 대상을 현행 최대주주(최다출자자 개인) 외에도 특수관계인과 법인까지 확대하고, 자격 요건에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에 따라 금고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추가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신진창 과장은 “대주주 자격 제한 범위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 최근들어 기업의 투명 경영과 대주주에 대한 높은 도덕성 요구가 커지는 사회 변화를 고려해 자격 요건에 특경가법 부분을 추가했다”고 말했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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