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GM) 노동자들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군산공장 폐쇄 철회,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상경투쟁을 벌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국내에서 한계기업 2800여곳이 보유하고 있는 일자리 34만여개의 연간 인건비 총액이 22조7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인당 인건비는 연간 6600만원꼴로 상대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품고 있는 셈이다. 금호타이어·에스티엑스(STX)조선해양·한국지엠 등의 구조조정이 막판까지 지연되고 극한 갈등에 번번이 부딪치는 것은 ‘한계기업의 고용 빈자리’에 대한 사회적 응답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강병원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나이스평가정보 자료를 보면, 2016년 기준 인건비·종업원 규모를 공개하는 외부감사 대상 기업(외감기업) 2만3262곳(전체의 90%) 가운데 한계기업은 2858곳에 이른다. 이들 외감기업의 연간 인건비 총액 254조1천억원 중 한계기업은 22조7천억원(8.9%), 직원 수로는 전체 373만여명 중 한계기업이 34만여명(9.3%)을 차지한다. 한계기업이란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도 갚지 못하는 상태가 3년 이상 지속된 곳을 말하는데, 이들 기업의 인건비 규모가 집계된 것은 처음이다.
일자리 측면에서 보면, 기업 부실화에 따른 실직 위험에 노출된 한계기업 종사자 수가 34만여명으로, 이들에게 지급되는 인건비 총액이 23조원에 이른다. 이들 기업의 연간 인건비는 1인당 6585만원으로 집계됐다. 여기엔 퇴직급여나 급여에 포함되지 않는 복리후생비 등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실제 임금은 10~20% 더 적다. 하지만 5인 이상 사업체 노동력 조사에서 임금노동자의 월평균 세전 임금총액이 352만원, 연봉 4200만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한계기업 일자리는 상대적으로 ‘좋은 일자리’로 분류할 수 있다.
한계기업 구조조정 지연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사라질 일자리에 대한 ‘플랜 비(B)’가 없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특히 정부와 정책금융기관 쪽에선 고용 상실, 지역경제 파장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크다. 예컨대 한국지엠은 한계기업 중 공기업 한 곳을 빼면 인건비나 고용 규모에서 최상위에 자리한다. 나이스평가정보 자료를 보면 한국지엠은 2016년 1만6천여명에게 연간 인건비 1조7천억원(1인당 1억533만원)을 지출한 기업이다. 게다가 정부가 “한국지엠 건은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15만명의 일자리가 걸린 사안”이라고 언급했듯, 후방산업에 대한 고용 효과도 적지 않다. 한국지엠 구조조정에 관여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한국지엠과의 투자·지원 협상에서 이런 정도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6년 기준 한계기업 중 인건비 총액 지출 상위권엔 공기업이나 공공기관 등 특수 사례를 빼면 한국지엠, 삼성에스디아이(SDI), 대우조선해양, 이랜드파크, 두산인프라코어, 한진중공업, 두산건설, 성동조선해양, 에스티엑스조선해양 등이 포진하고 있었다.
한계기업을 구조조정할 때 사회적 비용(인건비)에 대한 대책은 사실상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올해 초 “성장세가 회복되고 금융 건전성이 양호한 지금이 한계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는 적기”라고 언급했다. 은행들이 수익을 많이 내고 있어서 한계기업에 빌려준 대출 상당 부분을 손실, 이른바 ‘못 받을 돈’으로 털어버려도 큰 무리가 없는 시점이란 얘기다. 하지만 구조조정은 금융시장 측면만 봐서 진행되는 게 아니다.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 박용린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고통분담’이란 구조조정을 밀고 갈 ‘오너십’이 취약한 상태다. 그러다 보니 정부, 국책은행, 시중은행, 노조 모두 기업이 벼랑 끝까지 몰리고 난 뒤에야 구조조정 본격화를 받아들인다.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고 실업안전망은 취약한 상태에서 금융시장과 채권단이 압박한다고 해서 구조조정이 적시에 이뤄질 수가 없는 구조란 얘기다”라고 짚었다.
실제 우리 실업안전망은 한계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 위험을 떠받쳐주기에 역부족이다. 지난해 실업급여는 127만2천명에 대해 6조3천억원 정도가 지출됐다. 실업급여는 최대 8개월, 월 180만원까지 나오지만 1인당 평균 수급액은 연간 533만원이다. 정부가 실업급여로 6조원 남짓을 쓰는 상황이니, 34만여명에게 23조원 가까운 인건비를 지출하는 한계기업을 대상으로 선뜻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구조조정에 나서기 힘들다.
이렇다보니 어떤 정권이든 ‘금융’이란 연료를 부어서 상당한 고용을 유지하고 싶은 유혹에 약해지는 부작용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계기업은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2691곳,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 3298곳, 그리고 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6년 3479곳으로 계속 늘어나기만 했다. 강병원 의원은 “부실기업에 수조원씩 돈 부을 생각을 하지 말고 실업안전망을 강화하는 문제에 과감한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10년을 근무해야 최장 8개월, 최대 180만원을 받는 실업급여 체계와 비정규직이 일상인 노동시장 이중구조 아래선 노조가 조직된 한계기업 소속 대기업 노동자들은 인력 감축 문제에 극렬하게 저항하고, 정부도 구조조정을 미적거릴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