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지난 10일 미국 뉴욕 유엔(UN) 본부에서 열린 세계중소기업협회(ICSB) 주최 포럼 기조연설자로 참석해 ‘지속가능한 인본주의적 이해관계자 경영’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교보생명 제공
“한 회사 사장이 직원들에게 농담을 했습니다. 모두가 웃는데, 한명만 웃지 않았습니다. 사장이 이유를 묻자, 이 직원이 뭐라고 했을까요? ‘이번 주까지 일하고 관둘 예정이라, 더는 웃을 필요 없거든요.’라고 했답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전까지 한국에서 유행하던 농담입니다. 열린 소통을 가로막는 위계적인 기업문화에 대한 풍자지요. 사실 교보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지난 10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UN)본부에서 각국 중소기업 경영자, 학자, 관료 등 200여명 앞에 섰다. 세계중소기업협회(ICSB) 주최 포럼의 기조연설자로 참석해 ‘지속가능한 인본주의적 이해관계자 경영’이란 주제로 연설한 것. 신 회장은 아시아금융위기(IMF 사태) 뒤 최고경영자로 취임했을 당시 경험담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위계적인 문화 탈피를 위해) 기업 변화 프로그램을 가동해 회사의 비전과 전략 재설계에 나섰습니다. 직원들 공감대 없이 전략과 비전 실행이 가능했을까요? 절대 아니었습니다. 공감대가 없다면 직원들은 비전과 전략을 불신하거나 부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비전을 공유하면 직원들에게 영감과 열정이 생기는 것도 말이죠. 그런 다음 직원들은 수동적인 근로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기여자가 됐습니다.”
그는 “경영의 기초는 직원들과의 소통”이라며 “따라서 최고경영자와 경영진은 열린 마음으로 직원들의 경청하고, 그들의 관점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내 경우에는 (상황에 따라) 직원들에게 ‘감사하다’, ‘내가 틀렸다’, ‘어떻게 도와줄까’라고 자주 얘기한다”고 소개했다.
신 회장은 “고객, 직원, 투자자, 지역민, 주주, 협력사, 정부 등 이해관계자들을 비즈니스 도구가 아닌 인격체로 존중하며 모두의 균형 발전을 추구하는 것”을 인본주의적 이해관계자 경영으로 정의한 뒤, “리더가 직원을 만족시키고, 직원이 고객을 만족시키고, 만족한 고객이 저절로 회사의 이익에 기여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또 최고경영자(CEO)의 E는 Executive(경영) 뿐 아니라 Empowerment(권한 이양), Entertainment(오락·접대), Envisioning(구상), Education(교육), Encouraging(격려) 등 의미도 있다며, 최고경영자와 경영진은 “행동으로서 말을 뒷받침하고 이런 모든 역할에서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고 말했다.
통역없이 영어로 진행된 이날 강연에서 신 회장은 ‘레지던트 시절 선임들에 의해 강제로 술을 마신 뒤 구토를 하는 등 정신적·육체적 학대를 받으며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규칙적인 운동과 스트레스 관리를 통해 불굴의 용기를 얻는다’ 등 개인적인 얘기도 일부 언급됐다. 신용호 교보 창업주의 아들인 신 회장은 서울대 의대 출신 불임 전문 산부인과 의사로 18년 동안 활동하다, 1996년 교보로 옮겨와 기업인의 길을 걸었다. 시 등 문학작품 문구를 담은 글판을 서울 광화문 사옥에 내걸고 한국메세나협회 부회장을 맡는 등 문화에 관심이 많은 경영인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