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오는 10월부터 ‘부부합산 연소득 7천만원 이상은 주택금융공사의 전세자금보증을 제한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수도권 맞벌이 가구 중심으로 반발이 일었습니다. 이미 지난 4월 발표된 내용이었지만 시행에 임박하면서 반발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입니다. 전날 “아직 협의중인 사항”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던 금융당국은 급기야 30일 무주택자에 대해 소득요건 제한을 철회하면서 한발 물러선 상탭니다. 정부는 왜 이런 정책을 추진했던 걸까요?
1. 전세자금보증 제한 규제, 왜 두려고 했나?
지난 4월 발표된 정부의 ‘서민·실수요자 주거지원방안’에 나온 정책 취지는 정확히 말하자면, 전세‘대출’제한이 아니라 주택금융공사(주금공)의 전세‘보증’제한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전세자금보증은 세입자가 제1금융권에서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때 주금공이 제공하는 최대 2억2200만원 한도의 대출보증을 말합니다. 임차보증금 5억원 이하(지방 3억원)의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보증금의 5% 이상을 계약금으로 지급한 세대주가 대상으로 지금까지 소득이나 주택보유 여부와 관련된 요건은 없었습니다.
소득요건 제한은 국회 지적 사항이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 국정감사에선 “고소득자가 서민들이 이용하는 전세자금보증을 이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문제제기가 나왔습니다. 당시 홍일표 자유한국당 의원은 “연소득 1천만원 이하의 저소득 계층에 대한 전세자금보증 거절률은 11.98%인데, 1억원 넘는 고소득자에 대한 거절률은 5.18%에 불과하다”며 “전세자금 마련 여력이 충분한 고소득자와 달리, 저소득·서민 계층은 전월세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앞으로 공적보증 지원 대상을 서민층으로 제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금융위 관계자도 “주택금융공사라는 공적기관의 보증여력은 제한돼 있기 때문에,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정책의 혜택이 향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금융당국은 올해 10월부터 전세자금보증 이용대상을 원칙적으로 부부합산 연소득 7천만원 이하로 제한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신혼부부(결혼 5년 이내)는 맞벌이 기준 연 8500만원, 1자녀 가구는 8천만원, 2자녀 가구 9천만원, 3자녀 가구 1억원 이하 등으로 가족 구성원에 따라 요건을 차등화했습니다.
최근 들어선 이런 소득요건 제한 취지에다 부동산시장 과열에 따른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 기류까지 더해졌습니다. 금융위는 지난 28일 가계부채관리점검회의를 연 뒤 “전세대출이 주택상승이나 주택구입자금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전세보증요건을 중심으로 전세자금대출 기준을 강화”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전세대출을 조여야 갭투자 등을 통한 투기를 잠재워 집값이 올라가는 여력을 줄일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2. 보증 안받으면 전세대출 못받나?
정부의 전세자금보증 제한은 ‘연소득 7천만원 이상은 전세대출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로 퍼졌지만, 이는 섣부른 주장입니다. 전세자금대출 제한 소득요건이 강화되는 주금공의 보증을 못 받는다고 해서, 전세대출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에스지아이(SGI)서울보증에서도 전세보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주택도시보증공사와 서울보증도 주금공처럼 소득요건을 마련하는 것을 검토중이라고 밝혀, 기준은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큰 틀에서 따라갈 가능성이 높아보이면서 ‘전세대출 불가’라는 불안감이 확산된 겁니다.
여기엔 은행 전세자금대출의 획일화된 구조도 한몫했습니다. 보증기관에서 보증을 받아오지 않으면 사실상 시중은행에서 전세자금대출 상품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 기준 전세대출 중 98%는 전세보증을 받은 대출인데, 은행 입장에선 보증기관이 전세대출의 80%를 보증하기 때문에 리스크가 매우 낮아져 이 편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보증받지 않는 전세대출상품을 만들 유인이 그동안 없었다”고 말합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에서 리스크를 지지 않으려고 보증부대출만 선호해온 측면이 있다”며 “고소득자에 대한 기존 기관의 보증이 제한되면, 은행은 리스크를 따져 좀더 높은 금리로 별도의 상품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금융당국 설명대로라면, 10월 시행 이전에 은행이 별도의 상품을 만들 수 있도록 준비기간을 주는 편이 시장의 혼란이 덜했을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애초 정부는 연소득 7천만원 이상인 고소득자는 신용대출 등 더 높은 금리의 대출 상품으로 갈아타 전세자금을 충당하라는 인식도 갖고 있었습니다. 시중은행 담당자들은 “현재로서는 담보가 없다면 전세자금대출 대신 신용대출을 받는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신용대출은 담보 없이 직장이나 소득 등을 배경으로 은행 대출을 받는 건데, 기존 전세자금대출과 비교하면 당연히 금리가 보다 비싸게 책정되고 전세대출만큼 수억원대까지 받기는 어렵습니다.
3. 연소득 7천만원은 고소득자?
“부부합산 연소득 7천만원이 고소득자냐”라는 불만도 맞벌이 가구 중심으로 터져나왔습니다. 단순 명목으로 계산해보더라도 월소득이 583만원 이상에 해당되는데, 맞벌이 부부라면 각자 월소득이 291만원이 넘으면 ‘고소득자’로 분류돼 전세보증이 막힌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금융당국은 이번 전세보증 제한 요건인 7천만원 기준을 기존 보금자리론 소득기준 요건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는 또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서 ‘상위 30%’ 수준에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올해 2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전국 2인가구 이상 소득 10분위별 통계를 보면, 8분위(상위 30%) 평균이 588만원으로 이 구간과 비슷합니다.
다만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는 가구원 숫자도 다양하고 노인의 연금소득 등 여러 소득이 포함돼 ‘부부합산 7천만원’이라는 통계에 딱 들어맞지는 않습니다. 정부가 전세자금대출의 실수요자라고 파악하고 있는 3040 부부의 소득은 통계청 ‘2016년 신혼부부통계’에 나온 수치가 좀더 근접합니다. 이 통계를 보면, 외벌이 신혼부부의 경우엔 90.4%가 소득 7천만원 미만 가구에 해당하지만, 맞벌이 가구는 해당 소득기준을 충족시키는 비중이 59.4%입니다. 바꿔 말하면 2인 맞벌이 가구 10쌍 중 4쌍은 연소득 7천만원 이상을 벌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들의 전세자금대출이 제한되는 것으로 해석되다보니, 수도권 맞벌이 가구 중심으로 이번 정책에 대한 반발이 불거진 셈입니다.
4. 앞으로 남은 과제는?
30일 정부는 주금공 전세보증 제한에 무주택자를 제외하기로 밝히면서, 1주택자에 대해서는 좀더 검토해 조만간 확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에스지아이서울보증 등 다른 보증기관의 소득요건 제한도 함께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김규정 엔에이치(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주금공 같은 정책금융기관이 다주택자나 고소득자를 위한 높은 전셋값을 싼 금리로 조달해줄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는 계속돼왔고 공감한다”며 “특히 다주택자에 대해선 확실하게 제한 요건을 만들 필요가 있지만, 소득기준으로 볼 땐 지역별 전셋값과 면밀히 비교해 결정할 필요가 있어보인다”고 조언했습니다.
각종 신혼희망타운 입주·보금자리론 등 각종 부동산 정책의 준거가 되는 ‘연소득 7천만원’이라는 일괄 규정도 따져보면 구체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정책금융기관이 지켜야 하는 공공성과 실수요자들의 주택 수요, 과열되는 부동산 시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론을 내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