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사옥 로비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제출한 아시아나항공 자구계획에 대해 채권단이 하루 만에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에 미흡하다”며 퇴짜를 놨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대주주 재기를 지원하려는 게 아니라 아시아나를 살리려는 것”이라며 추가 대안을 압박했다. 벼랑 끝에 몰린 박삼구 전 회장 일가가 아시아나 경영권을 포기할지, 어떤 대응 카드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채권단 대표인 케이디비(KDB)산업은행은 11일 오후 보도자료를 내어 전날 채권단 회의에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산은은 “채권단은 금호 쪽의 자구계획에 대해 사재출연 또는 유상증자 등 실질적 방안이 없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엔 미흡하다고 판단했다”며 “금호 쪽이 요청한 5천억원을 채권단이 지원한다 해도 시장 조달의 불확실성으로 향후 채권단의 추가 자금 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는 부정적 입장”이라고 밝혔다. 앞서 금호그룹은 채권단이 아시아나에 5천억원을 신규 지원해주고 3년 시한으로 재무구조개선 약정(MOU)을 재체결한 뒤에도 정상화에 실패하면 새로운 대주주를 찾는 데 협조하겠다는 자구계획을 지난 9일 제시했다.
이에 최종구 위원장은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자구안이) 최선을 다한 것인지, (박삼구 전 회장의) 아들이 경영한다는데 뭐가 다르다는 건지”라며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이어 “아시아나에는 30년의 시간이 있었는데, 또다시 3년의 시간을 달라고 하는지 (채권단이) 잘 판단해봐야 한다”고 일침을 날렸다. 이동걸 산은 회장도 채권단 회의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채권단에서 거액을 지원받고 3년 동안 마음대로 하다가 망하면 회사를 내놓겠다는 거냐”고 질책했다고 산은 관계자가 전했다.
결국 채권단과 금융당국은 5천억원을 수혈해준다고 해도 아시아나가 ‘밑 빠진 독’이 되기 쉽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는 과도한 부채로 신용등급이 흔들리며 회사채 발행 등 시장에서 정상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길이 막혔다. 시장에선 대규모 자본확충만이 아시아나의 시장 신뢰를 회복할 근본적인 해법이란 지적이 나온다. 아시아나 새 주인이든 누구든 나서서 유상증자로 자본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얘기다.
아시아나는 지난해 말 기준 이자를 내는 차입금 3조4천억원을 비롯해 부채총계가 7조1천억원인데, 자기자본은 1조1천억원 수준으로 부채비율이 650%에 이른다. 게다가 올해부터는 회계기준 변경으로 항공기 운용리스 금액 2조9천억원 상당이 비용에서 부채로 바뀐다. 이럴 경우 1분기 이후 부채비율은 900%를 넘어설 수 있다. 또 기업 신용등급을 매기는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아시아나의 기존 신용등급(BBB-)을 투기등급(BB+)으로 내릴 것을 검토 중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산은 등 채권단이 5천억원을 새로 대출해주면, 장래 항공운임 매출채권을 담보로 한 자산유동화증권(ABS) 투자자 등 시장에서 돈을 빌려준 다른 채권자들의 빚 상환에 쓰일 가능성만 커진다”며 “유상증자 등으로 대규모 자본확충을 하는 게 근본적 해법”이라고 짚었다.
당장 아시아나는 오는 25일 600억원의 공모 회사채 만기를 마지막으로, 공시된 유효 신용등급이 소멸할 위험에 처해 있다. 유효한 공시 신용등급을 되살리지 않으면 자산유동화증권 투자자들이 자금회수를 위해 영업 현금 흐름을 묶어버릴 위험마저 존재한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아시아나 차입금 3조4천억원 중 시장에서 조달한 돈이 3분의 2나 된다”며 “신용등급을 유지하고 시장에서 돈을 융통할 근본적 해법을 3년씩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채권단이 5천억원의 신규 대출을 해줄 경우 차입금의 구성은 바꿀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부채비율은 더 올라가는 등 효과가 제한적”이라며 “자본확충을 하거나 자산 매각을 통한 부채 상환 등을 해야 하는데 회사가 내놓은 자구안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정세라 박수지 기자
sera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