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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증권

“우리은행 직원, 취소했는데도 ‘라임’ 안전하다며 신분증만 맡겨달라해 가입”

등록 2020-01-08 21:58수정 2020-01-09 02:10

[라임펀드 불완전 판매 정황]
직원이 서류 준비하고 번호 불러줘
가입자 투자성향도 ‘공격형’으로 돼
1억 원금 6개월만에 3900여만원으로

직원, 투자성향 번호 불러준 것 시인
금감원쪽 “불완전 판매 전형적 사례”
업계 “신분증 보관은 업무절차 위반”
환매 중단된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에 가입한 정아무개(48)씨의 투자자성향분석 설문. 은행에서 불러준대로 1,5,1,1,1로 체크해 공격투자형으로 나왔다. 정씨 제공.
환매 중단된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에 가입한 정아무개(48)씨의 투자자성향분석 설문. 은행에서 불러준대로 1,5,1,1,1로 체크해 공격투자형으로 나왔다. 정씨 제공.

지난해 2월말 음악 강사 정아무개(48)씨는 우리은행의 한 지점에 환전하러 갔다가 ㅅ차장에게 펀드 가입 권유를 받았다. 얼떨결에 가입했다가 은행의 ‘해피콜’(사후 확인 전화)을 받고 곧장 가입을 취소했다. “원금보장형 상품이 아닌 걸 아십니까?”라는 식의 질문이 찝찝해서였다. 그러자 해당 상품을 판매한 차장은 정씨에게 개인 휴대전화로 여러차례 연락했다. 정씨가 “바쁘다, 관심이 없다”고 하자, “신분증을 맡기고 사인만 하시라”며 읍소했다.

지점에서 정씨를 만난 차장은 “6개월 뒤에는 무조건 돌려받는다”, “나라가 망하지 않으면 되니 믿어도 된다”, “저도 가입한 상품”이라고 강조하며 거듭 상품 가입을 권유했다. 3월께 정씨는 차장의 끈질긴 요청으로 신분증을 맡겼고, 난시가 심한 정씨는 ‘깨알’ 같은 글씨를 제대로 읽지도 못한 채 다음날 차장이 준비해둔 서류에 차장이 번호를 불러주는 대로 투자자 성향 분석 설문에 체크했다. 1,5,1,1,1. 그동안 예·적금 등 ‘저위험 상품’에만 가입해온 정씨는 ‘공격투자형’이 됐다. 정작 만기일인 10월11일, 정씨는 원금 1억원의 40%도 못미치는 3900여만원만 돌려받았다. 정씨가 가입한 펀드는 지난 10월부터 환매 중단된 라임자산운용의 사모펀드 ‘라임 톱(Top)2밸런스 6엠(M) 전문투자형 사모투자신탁’이었다.

속 끓이던 정씨는 지난 12월말 지점을 찾아가 따지고 녹음을 했다. 상품을 판 차장은 신분증을 맡기라고 한 것과 관련해 “고객님 편의를 봐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투자자 성향 분석 번호를 불러준 사실에 대해서도 시인했다. 다만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는 말은 한 적 없다”며, 본인이 가입한 상품도 아니라고 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객 신분증을 보관하는 건 명백한 업무 절차 위반이라 상상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최근 불완전판매로 문제가 된 해외금리연계 파생금융상품(DLF) 사례에서도 은행이 고객의 신분증 사본으로 가입 서류를 꾸미는 등의 ‘상식 밖의 일’이 드러난 바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투자자 성향 번호를 불러준 게 사실이라면 불완전판매의 전형적인 예”라고 말했다.

이 상품이 제시하는 목표수익률은 ‘연 3.0%’다. 6개월 만기 기준으로는 1.5%다. 정씨는 8일 <한겨레>에 “안전하지도 않은데 1억원 넣어서 150만원 이자 받자고 했겠느냐“며 “상품을 가입시키기 위해 고객에게 본인도 가입했다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준 신뢰에 우롱당했다”고 토로했다. 차장은 새해 부지점장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10월 라임자산운용은 유동성 위기를 이유로 일부 펀드에 대한 환매 중단을 선언했다. 이후 라임의 수익률 조작과 미국 운용사의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사기)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판매사의 불완전판매로도 불길이 번졌다. 금감원은 라임자산운용의 환매 중단 펀드를 1조5587억원(개인 9170억원) 규모로 추산한다. 손실 규모가 1조원이 넘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은행(3259억원), 신한금융투자(2349억원), 케이이비(KEB)하나은행(959억원) 등의 순으로 많이 팔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라임 실사가 끝나 실태 파악이 제대로 돼야 불완전판매 검사 착수 시점을 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에는 8일 기준 라임 불완전판매와 관련한 민원이 100여건 접수된 상태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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