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대출과 판매를 통해 막대한 수수료를 챙겨온 증권사들이 상황이 나빠지자 대출금 회수에 나서면서 연쇄적인 펀드 환매중단 사태와 함께 자산운용업계 전반의 유동성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6개 증권사 담당 임원들을 불러 “갑작스런 대출계약 조기종료 등으로 펀드 환매연기가 발생해 투자자 피해가 우려된다”며 대출자금 회수를 자제해줄 것을 당부했다.
28일 알펜루트자산운용은 ‘에이트리’ 펀드 567억원을 포함해 모두 3개 펀드에서 1108억원 규모의 환매를 중단했고 추가로 26개 펀드 1817억원이 환매연기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운용사의 환매중단 확대는 증권사들의 대출계약 해지로 촉발됐다.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대우 등은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통해 대출해 준 자금 460억원가량을 회수하겠다고 통보했다. 총수익스와프는 증권사가 펀드 자금을 담보로 운용사에 대출을 일으켜 자산을 추가로 매입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거래를 말한다. 이렇게 하면 시장이 좋을 때는 수익률을 높이는 지렛대 효과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고객자금 100억원에 대출자금 100억원을 합쳐 투자해 10억원의 평가이익을 내면 전체 수익률은 5%이지만 고객의 펀드 수익률은 10%로 고지된다.
증권사는 이를 통해 대출 수수료를 챙길 수 있을 뿐 아니라, 고수익 상품으로 홍보해 펀드 가입자를 유치함으로써 판매수수료도 증가하는 이중의 효과를 봐왔다. 알펜루트운용의 펀드에 대출을 해준 한국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미래에셋대우 등 3개사는 이 운용사 펀드를 6000억원(지난해 9월말 기준) 가까이 판매했다. 신한금융투자와 케이비(KB)증권, 한국투자증권의 라임자산운용 펀드 판매액은 1조1172억원에 달한다. 이들 3개 증권사는 환매가 중단된 라임의 3개 모펀드에 6700억원 규모의 대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라임 환매중단 사태가 터지면서 증권사들은 대출계약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대출담보가 있어 우선 변제권이 인정되는 이들 증권사가 먼저 자금 회수에 나서면 그만큼 일반 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또 자산운용사들이 연쇄적으로 유동성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이들 사모펀드 운용사는 펀드 자금을 주로 비상장사 지분이나 사모채권 등에 투자해 이른 현금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현재 국내 주요 증권사들이 대출로 자금을 대준 운용사는 18곳이며 해당 자금 규모는 1조9천억원에 달한다. 증권사들이 자체적인 리스크 축소에 나서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대출을 통해 ‘과적 선박’을 띄워놓고 파도가 거세지자 자신들을 믿고 펀드에 가입한 고객들보다 먼저 뛰어내리겠다고 나서 배가 침몰될 지경에 처한 꼴이다.
금감원은 이날 김도인 부원장보 주재로 미래에셋대우증권, 엔에이치(NH)투자증권, 케이비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신한금융투자의 총수익스와프 담당 임원들과 긴급 현안논의 회의를 열었다. 금감원은 회의에서 갑작스런 대출 증거금률 인상이나 계약 조기종료로 환매연기가 다른 사모펀드로 전이될 개연성도 있다며 시장 혼란을 우려했다. 금감원은 증권사들에 “대출계약을 통해 취득한 자산에서 부실이 발생하는 등 불가피한 사유가 아니라면 계약을 신뢰한 투자자 보호를 위해 운용사와 사전 협의를 통해 연착륙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한광덕 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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