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정 기자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가 납니다. (환율이) 계속 떨어지면 공장 문 닫아야죠….” 생산물량의 90%를 수출하는 한 플라스틱 부품업체의 이아무개(47) 사장은 환율 영향에 대한 질문에 한숨부터 내쉰다. “환율이 세자릿수로 간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선물환거래나 헤지를 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커요. 규모가 작아 금융기관에서 잘 받아주지도 않고요.” 이 사장은 최근 인력을 줄이는 등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다.
9일 오전 기업은행이 주최한 ‘중소기업 지원설명회’도 중소기업들의 환율 걱정으로 가득했다. 한 스피커제조업체 사장은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지속적인 관계를 위해 계속 생산하는 게 관행이지만, 환율이 950원 선까지 내려가면 아예 중단하는 것이 낫다”고 털어놨다.
큰 배보다 작은 배가 파도에 잘 휩쓸리듯이, 환율의 영향은 중소기업에 더 치명적이다. 대기업들은 선물환 투자와 같은 환 헤지(위험회피)를 통해 대처하지만, 대부분의 중소 수출업체들은 거의 무방비 상태다. 또 수출 중소기업의 92%가 달러 결제를 하다 보니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환 헤지와 결제통화의 다양화 등을 조언하지만, 근본적인 답은 다른 곳에 있는 듯하다. 박재필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수출 중소기업 407곳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72%가 수출가격에 환율 변동폭을 반영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밝혔다. 가격을 올리면 해결될 일이라는 뜻인데, 가격을 올리려면 제품의 품질이 올라가야 한다. 가격경쟁력보다는 제품경쟁력이 정답인 셈이다. 세자릿수 환율은 중소기업에 분명 현실적 ‘위협’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술기업으로 거듭나는 ‘기회’일 수도 있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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