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민·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을 위한다며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할 계획이지만, 정작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기준 때문에 소득이 낮은 사람은 엘티브이 완화 혜택을 못 받는 경우가 생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기준인 디에스아르 규제가 적용되는 상황에서는, 주택가격 기준인 엘티브이를 완화할수록 고소득층이 더 많은 혜택을 보게 된다.
4일 한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한도 변화 모의실험 결과를 보면, 연 소득 3천만원인 무주택자가 조정대상지역에서 5억원짜리 집을 살 경우 현재는 엘티브이 60%를 적용받아 3억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금리 2.7%, 30년 분할상환, 다른 대출 없는 경우로 가정). 정부의 추진계획대로 이 비율을 70%까지 올릴 경우, 대출 한도는 3억5천만원으로 5천만원 늘어난다. 하지만 내년 7월부터 디에스아르 40% 규제가 완전 시행돼 총대출 가능 금액은 2억4600만원으로 외려 제한된다. 엘티브이가 70%로 확대되더라도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셈이다.
연 소득 4300만원인 무주택자가 같은 집을 살 경우 엘티브이 70% 적용에 따른 대출 한도(3억5천만원)는 현행 3억원(60% 적용)보다 늘어난다. 이 사람은 디에스아르 40%에 따른 한도가 3억5천만원이기 때문에 엘티브이 확대 혜택을 받는다. 다만 신용대출 등 추가 대출은 불가능하다.
연 소득 8천만원인 무주택자가 투기과열지구에서 6억원짜리 집을 살 경우, 사정은 달라진다. 현재는 엘티브이 50%를 적용받아 3억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는데, 이 비율을 60%까지 올리면 대출 한도는 3억6천만원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이 사람에게 적용되는 디에스아르 40%는 6억5500만원이어서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은 이보다 더 많다.
고소득자들은 소득 기준으로 상환능력을 따져 대출 한도를 정하는 디에스아르보다 주택가격 기준인 엘티브이 규제로 대출 제한을 더 받는다. 이 때문에 최근 정부가 밝힌 대로 디에스아르 규제를 강화해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와 달리 엘티브이 규제를 완화하면 소득 기준으로 한도가 넉넉한 고소득자가 대출을 더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부·여당의 실수요자 대출 규제 완화 방침이 상대적으로 소득이 많은 계층에 집중될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금융위원회는 엘티브이를 10%포인트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적용 대상도 넓힐 계획이다. 소득 기준은 부부합산 연 8천만원에서 1억원으로, 주택가격은 6억원 이하에서 9억원 이하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최근에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처음 집을 사는 무주택자에게 엘티브이를 90%까지 올리자고도 주장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저소득층을 위해 디에스아르를 올려주지 않으면서 엘티브이 기준만 완화하면 고소득층만 혜택을 보게 된다”며 “저소득 실수요자가 혜택을 보려면 디에스아르를 같이 올리거나 소득 수준별로 디에스아르를 다르게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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