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에 있는 고양창릉신도시 지구 일대. 이경미 기자
지난 21일 찾은 경기 고양시 덕양구 경의중앙선 화전역 일대는 비닐하우스로 뒤덮인 농지와 고철 처리업체, 오래되고 낮은 집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수십년간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인탓에 높은 건물은 찾아볼 수 없었고, 인적도 드물었다. 몇몇 부동산 간판에 써 붙인 ‘토지 보상 상담’ 홍보문구가 이곳이 3기 새도시 지정 지역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고양창릉 공공주택지구(창릉 새도시)는 화전역과 지하철 3호선 원흥역 사이 812만6948㎡ 땅에 주택 3만8천호를 짓는 3기 새도시 사업지다. 2018년 3기 새도시 1차 발표 전 도면이 유출돼 1차 계획에선 제외됐고, 이듬해인 2019년 5월 지정됐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보면, 고양창릉지구에 속하는 화전동의 토지거래는 2017년 74건에서 도면 유출이 있었던 2018년 130건으로 두배 가까이 뛰었다. 2019년에는 이 일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서 49건으로 줄었고 지난해는 29건으로 감소했다.
화전역 인근의 한 부동산 직원은 “새도시 지정 뒤에는 땅 주인들이 보상을 받기 위해 매물을 내놓지 않아 거래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땅 보러 오겠다는 전화를 꾸준히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도 면적이 2평 정도 되는 땅을 사들이는 경우가 있는데 투기 목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화전역은 고양창릉지구의 남쪽이다. 반대편 북쪽 원흥역 일대는 기존 택지개발지구인 삼송지구가 있다. 과거에는 ‘미분양의 무덤’이라 불렸지만 주변 개발과 3기 새도시 효과 덕에 활기를 띤다. 이날 찾은 원흥역 주변은 각종 건물이 올라가고 있었고, 매물을 안내하는 분양홍보관과 부동산들이 늘어섰다.
고양시가 개발 바람을 타면서 이곳의지역농협 대출도덩달아 늘었다. 고양시내 8개 농협의 대출금액은 2017년 3조5187억원에서 지난해 4조5111억원으로 3년간 28.2% 증가했다. 새도시 외 지역농협의 평균 증가율(21.8%)보다 6.4%포인트 높다. 고양뿐만 아니라 다른 3기 새도시 지역농협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새도시 지정 전 농지나 임야 등을 사려는 사람들은 대체로 농협을 찾는다는 게 지역 사람들의 공통된 얘기다. 농지나 임야는 담보가치 산정이 까다로워 시중은행이 잘 맡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어서다. 지역 사정을 잘 아는 농협이 토지 담보대출에서는 시중은행보다 더 전문성이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신용사업으로 수익을 올리려는 농협이 개발이익을 노리는 투기꾼들과 만나면서농협 대출이 땅투기 수단으로 활용될가능성이커진다는데있다.투기 매매 가운데 여러 사람이 공유지분으로 땅을 사는 경우도 많은데, 이럴 땐 각자 지분만큼만 대출을 받으면 된다. 또는 한명이 대표 채무자가 되고 나머지 지분권자는 제3자 담보제공을 통해 대출을 받는 방식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퇴직 은행원들이 사실상 투기 ‘중개꾼’ 역할을 맡아 수수료를 챙기는 사례도 흔하다.화전동의 또 다른 중개업소 사장은 “농협이 수신은 많이 하는데 모아둔 돈을 쓸 곳(여신 사업)이 없어서 공격적인 대출 영업을 해오고 있다”며 “주로 퇴직한 은행원들이 금융컨설팅을 하며 대출자를 찾아 지역농협을 소개해주고 대출자한테서 일정 수수료를 받아왔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있던 관행”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나
농협 임직원의 ‘셀프 대출’이 드러난 것과 관련해,지역 주민들은 엘에이치 및 농협 일부 직원의 비위가 빙산의 일각이 아니냐는 의심을 한다. 화전동의 한 주민은 “이 동네에 살지는 않으면서 땅을 사놓고 주소이전만 해놓는 경우가 많은데, 정부가 이번 부동산투기 조사에서 그런 부분까지 싹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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