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아무개(43)씨는 신용카드 네 장을 갖고 있다. 모두 비자 또는 마스터카드 로고가 찍힌 해외겸용 카드다. 외국 나갈 때를 대비해 발급받았는데, 코로나19 이후에는 해외 사용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과거에는 1년에 한 차례 정도 해외여행을 했지만 코로나19를 겪고는 외국에 나가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해외직구를 하려고 가끔 아마존 사이트를 둘러보지만 필요한 게 있으면 구매대행업체를 이용한다. 이씨는 “혹시 해외에서 쓸 일을 대비해 연회비를 더 주고 발급했지만 실제는 국내에서만 사용하고 있다”며 “해외겸용 카드는 비상용으로 하나 정도 남기고 국내전용 카드로 바꾸는 걸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소비자가 해외겸용 신용카드로 국내결제를 하더라도 국내 카드사가 비자·마스터카드 등 외국 카드사에 수수료(거래분담금) 명목으로 매년 1천억원 이상 지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1일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외국 카드사 수수료 지급 현황을 보면, 7개 국내 전업 카드사가 지난해 국내 결제분에 대해 6개 외국 카드사에 지급한 수수료가 1094억2600만원으로 집계됐다. 6개 외국 카드사는 비자·마스터카드·유니온페이·아멕스·제이씨비·디스커버다.
국내결제분에 대한 수수료는 2018년 1152억700만원, 2019년 1188억6700만원에 이어 매년 1천억원 이상 유지하고 있다. 올해 1분기에만 외국 카드사는 국내결제 수수료로 263억5400만원 수입을 거뒀다.
반면 해외결제분 수수료는 2018년 429억2300만원에서 2019년 477억8900만원으로 늘었다가 지난해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급감해 276억4100만원으로 줄었다. 올해 1분기는 62억8700만원이다.
외국 카드사별로 보면, 지난해 마스터카드가 국내와 해외결제 합계 수수료로 659억3500만원, 비자가 590억8700만원을 거뒀다. 두 회사가 전체 수수료 수입의 91%를 차지했다.
해외 가맹점에서 결제를 하면 외국 카드사들은 소비자로부터 브랜드수수료를 받는다. 비자는 결제액의 1.1%, 마스터카드는 1%다. 해외겸용 카드로 국내에서 결제하면 외국 카드사들은 결제액의 0.04% 정도를 국내 카드사한테서 받는다. 이 외에도 국내 카드사들은 카드 1장당 발급유지수수료, 거래 건당 데이터 처리비 등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외국 카드사에 낸다. 카드사는 이런 비용을 고객의 연회비 등으로 충당해오고 있다.
카드업계의 설명을 들어보면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국제 결제망을 장악하고 있어 국내 카드사들은 어쩔 수 없이 불합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다고 한다. 한국뿐 아니라 대부분 나라도 같은 방식으로 계약을 맺는다.
해외겸용 카드는 보통 해외여행에 대비하거나 해외직구에 사용하려고 발급한다. 하지만 발급해놓고 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올해 1분기 기준 발급된 해외겸용 카드는 총 9685만8천장으로, 이 가운데 해외가맹점 결제를 한 차례도 하지 않은 카드는 89.6%인 8679만1천장이다.
금융감독원은 과거 불필요한 수수료 지급을 줄이기 위해 국내전용 카드 사용을 권장하기도 했으나 통상 마찰 우려 등으로 현재는 적극적으로 지도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 신청 때 고객이 외국에서 쓸 일이 없다고 하면 국내전용으로 안내하는 등으로 합리적 소비를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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