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본부 건물. 한겨레 자료사진
신한은행의 한 직원은 2018년 11월 한 장학재단의 정기예금이 만기가 되자 금리가 높은 상품이 있다며 자산관리 서비스를 하는 복합점포를 통해 계열사인 신한금융투자(신금투) 직원을 소개해줬다. 신금투 직원은 이 장학재단에 문제의 라임 무역금융펀드를 11억원어치 판매했다. 그러나 판매 당시 이 펀드는 이미 투자원금의 76%가 부실화한 상태였다. 신금투 직원은 라임이 허위·부실 기재한 투자제안서를 그대로 설명·교부하고, 투자자성향도 공격투자형으로 임의로 기재했다.
신한금융지주의 두 자회사인 은행과 증권사는 이렇게 연계서비스인 복합점포를 통해 부실 사모펀드를 팔았다. 신한의 라임 펀드 판매는 대부분 복합점포를 통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 지주사는 부실 판매의 책임이 있을까 없을까, 책임이 있다면 얼마나 있을까.
이에 대한 판단이 지난 4월말 있었던 신한지주에 대한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에서 나왔다. 당시 제재심은 신한지주에 대해 경징계(기관주의), 지주 회장에 대해서도 경징계(‘주의’)를 결정했다. 모두 금융회사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를 위반했다는 게 제재의 근거였다.
그러나 금감원은 제재의 근거로 금융지주사를 규율하는 일차적인 법령인 금융지주회사법 위반을 적용하지는 못했다. 금융지주회사법에는 법령 미비로 인해 제재 근거 조항이 마련돼 있지 못한 탓이었다. 이 사안을 아는 금융권 관계자는 “신한지주 제재에서 금융지주회사법은 적용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행 금융지주회사법은 제15조에서 ‘금융지주회사는 자회사의 경영관리업무와 그에 부수하는 업무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업무를 제외하고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다른 업무를 영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래 이 규정은 2000년 11월 법 제정 때 순수지주사 제도를 천명하는 조항으로 마련됐다. 금융지주사들이 재벌처럼 선단식 경영을 하면서 위험의 전이와 과도한 지배력 확장 등의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을 막으려는 취지였다. 그런데 금융지주사들이 10여년 전부터 회장 중심의 그룹 단위 경영을 본격화하면서 이 조항을 자회사 등에 대한 경영관리 업무의 근거조항으로 확장해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보니 법 조항에선 금융지주사의 권한만 규정해놓고, 그에 상응하는 의무와 벌칙 조항은 명확하게 해놓지 않아 사실상 법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현실에서는 이런 사각지대를 악용해 실제 의사결정은 자회사 사장단이 참여하는 지주사 차원의 경영전략 회의에서 결정되지만 집행은 각 사장단이 자회사 등의 차원에서 실행한다”며 “이 경우 집행에 따른 책임은 자회사 사장들이 지고, 정작 경영과 관련한 지시를 한 지주사 내부의 경영진들은 책임에서 자유스러운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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