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산업에 적지 않은 피해가 예상된다. 2차전지(배터리) 산업에는 단기적으로 어려움을 끼칠 것으로 예상되며, 중장기적으로는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산업연구원(KIET)이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발효에 따른 국내 산업 영향을 자동차와 2차전지 중심으로 분석한 보고서를 29일 내놓았다. 자동차 산업에는 ‘대형 악재’이며, 2차전지 산업에는 단기와 중장기로 영향이 갈릴 것이란 내용이다. 미 인플레 감축법은 전기자동차 세액 공제 조건을 바꾼 대목을 담고 있으며, 지난 8월16일 발효됐다.
연구원은 자동차 산업이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될 이유로 “법 발효 직후부터 시행되고 있는 ‘북미지역 최종 조립’ 조건을 맞추기 어려워 당장은 전기차 세액 공제를 받지 못하게 되고 미국 시장에서 경쟁국 업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 열위에 처하게 됐다”는 점을 들었다. 현대차·기아는 아직 미국 내 생산 기반을 갖추지 못해, 미국에서 판매되는 전기차를 국내에서 조달하고 있다. 인플레 감축법에선 북미 최종 조립을 조건으로 전기차(플러그인 포함) 1대당 7500달러의 세액 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연구원은 “법 발효 이전 계약 물량은 세제 혜택을 받게 되고 현대차·기아의 출고 대기 물량을 따져볼 때 실제 피해는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지만, 피해의 본질은 대당 7500달러 상당의 가격 경쟁력 약화”라며 “고성장 흐름을 타고 있는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 간 주도권 경쟁에서 치명적 약점이 생긴 것”으로 풀이했다.
현대차·기아는 올 하반기부터 미국 앨라배마 공장을 개조 또는 증설해 ‘GV70’ 전기차 일부를 현지 생산할 예정이나 그 물량은 제한적일 것으로 연구원은 관측했다. 또 조지아주에 지을 30만대 규모의 전기차 전용 공장은 2025년 이후부터 가동될 예정이다. 이와 달리 포드, 지엠(GM) 같은 미국 기업은 물론 북미지역에서 이미 공장을 가동 중인 독일·일본 등의 경쟁사들 일부 차종은 세제 혜택 대상에 포함돼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 상승효과를 누릴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른 전기차 세액 공제 적용 조건
산업연구원은 “국내 자동차 산업에 중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평가에선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내년부터 시작해 점차 강화될 배터리 관련 규정은 외국 기업들도 맞추기 어려운 조건이라는 분석이다. 인플레 감축법은 ‘북미 최종 조립’이란 기본 요건에 내년부터는 ‘배터리 광물 조달 비율’과 ‘배터리 부품 조달 비율’ 조건을 추가해 맞추도록 했다. 배터리 광물은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에서 40%(내년 기준)를, 배터리 부품은 북미지역에서 50%(내년 기준)를 조달한 경우에만 혜택을 주도록 하는 내용이다. 배터리 광물의 하나인 흑연의 경우 중국에서 생산되는 물량이 80%를 웃돌고 천연 흑연 정제는 전량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또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와 음극재 또한 세계 시장에서 중국 의존도가 60%를 넘고 있다.
국내 2차전지 산업에 대해선 “세계적 경쟁력을 지니고 있지만, 리튬이나 흑연 같은 핵심 광물의 생산과 정제가 중국에서 주로 이뤄져 인플레 감축법의 배터리 핵심 광물 규정을 맞추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파나소닉 등 외국 배터리 기업들도 핵심 광물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부정적 영향의 정도는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엘지(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국내 배터리 3사의 북미지역 생산 기반 확대 추세가 규모와 속도 양면에서 모두 경쟁국보다 앞서 중장기적으로는 인플레 감축법의 혜택을 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연구원의 황경인 부연구위원은 인플레 감축법에 따른 자동차 및 2차전지 산업의 피해 최소화를 위한 과제로 “현대차·기아의 조지아주 신공장 조기 가동, 배터리 조건에 부합하는 2차전지 공급망 구축”을 꼽았다. 연내로 예정된 미 재무부의 인플레 감축법 후속 지침(가이드라인) 마련 때 “양국 간 실무 협상을 통해 한국의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도 숙제로 남아 있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