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의 클린룸. 삼성전자 제공
산업연구원이 전문가 45인을 대상으로 한 포커스그룹인터뷰(FGI)를 벌인 결과, 반도체 산업의 미래 지형 변화를 이끌 핵심 동인으로 ‘지정학’(국제정치) 요인이 만장일치 1순위로 꼽혔다고 5일 밝혔다. 초미세 공정, 첨단 패키징(후공정),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기술(공급)’ 요인이 2순위로, 정보통신기술(ICT) 최종 세트산업 판매 등을 고려한 ‘수요(시장)’ 요인은 3순위로 꼽혔다. 미래차 분야에선 기술, 수요, 지정학 순으로, 바이오의약품에선 기술, 지정학, 수요 순으로 나타났다.
인터뷰 대상 전문가 45인은 주요 기업 임원 이상, 관·학·연 전문가들로 짜였다고 연구원은 밝혔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포커스그룹인터뷰 결과를 담아낸 보고서 ‘경제 안보 시대, 전략산업의 미래와 우리의 대응 방안’에서 반도체 분야에서 지정학 요인이 1순위로 꼽힌 데 대해 “미국, 중국, 대만, 일본 등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주요 구성 국가들의 제조시설 입지와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파격적 지원 정책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산업의 현재와 미래 지형’. 산업연구원 제공
경 위원은 앞으로 가치사슬(밸류체인) 관점에서 반도체 지형 변화의 주된 방향성은 종합반도체(IDM)의 부상을 꼽았다. 인텔과 삼성전자 등 종합반도체 기업들이 파운드리(위탁제조) 분야 진출 및 대규모 시설투자로 1987년 이후 위탁제조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한 대만 티에스엠시(TSMC)의 독점 구조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을 배경으로 들었다. 국가별 반도체 산업의 위상과 경쟁 우위 확보 측면에서 파운드리 분야의 중요성도 커질 것으로 보이며, 팹리스(설계전문) 분야에선 애플, 구글, 아마존 같은 빅테크 플랫폼 기업들의 반도체 생태계 진출 가속화가 예상된다고 경 위원은 설명했다.
‘미래차 산업의 현재와 미래 지형’. 산업연구원 제공
자동차 산업 미래 지형 변화의 1순위 동인으로 기술 요인이 지목된 것은 전기동력화 및 전장화 같은 정보통신기술과 융복합되는 흐름 속에서 기존 완성차 및 부품 업체들은 물론, 이종 분야 기업들의 신규 진입에 따라 다층적·입체적 구도의 주도권 경쟁이 진행 중이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산업이 제조(조달·생산)에서 서비스로 이동하는 ‘업의 본질’ 변화에 직면했음을 강조했다고 경 위원은 전했다. 그는 “산업정책 역시 경계를 허물고 연결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오의약품 산업의 미래 가치사슬 주도 부문은 연구·개발(R&D)·설계 쪽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이 경쟁 우위를 보유한 위탁개발생산(CDMO)의 전략적 중요성 역시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위탁개발생산 분야가 반도체에 버금가는 정밀 기술과 비법은 물론 미국 식품의약국(FDA), 유럽연합(EU) 유럽의약품기구(EMA) 등 규제기관의 철저한 관리·감독과 인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후발 개도국의 추격이 어렵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바이오 분야의 핵심 과제로는 해외 소재·부품·장비 기업과 인재 유치, 신약개발 성공을 위한 긴 호흡의 국제 신뢰자산 축적을 꼽았다.
김영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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