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7일(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에 개최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장관회의에 참석해 무역·공급망·청정경제·공정경제의 협상 현황을 점검하고, 공급망 협정이 약 6개월 간의 협상을 거쳐 타결되었음을 선언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미국이 주도하는 다자 경제협력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인태 경제프레임워크)의 14개 참여국이 ‘공급망 협정’을 타결했다. 중국을 배제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 질서를 수립하겠다는 미국 구상이 현실화하고 있다.
한국·미국 등 14개 참여국은 27일(현지시각)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통상장관 회의 뒤 발표한 공동보도성명에서 공급망 협정 타결을 선언했다. 지난해 5월 출범한 인태 경제프레임워크 참여국 간 첫 합의이자, 공급망 분야의 첫 국제 협정이기도 하다.
공급망 협정을 보면, 참여국들은 공급망 위기 발생 때 참여국 정부로 구성된 ‘공급망 위기대응 네트워크’를 가동해 대체 공급처 파악, 대체 운송경로 개발, 신속 통관 등 공조 방안을 협의하기로 했다. 또 참여국 공급망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조처를 자제하고, 불가피하게 그런 조처를 내릴 경우 참여국 의견을 듣고 협의할 수 있게 된다. 협정 이행 상황 점검을 위한 ‘공급망 위원회’도 구성한다.
미국 상무부는 “인태 경제프레임워크 공급망 부문 협상 완료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뒷받침하는 주요 성과”라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공급망 협정은 자원 부국과 기술 선도국이 함께 참여해 상호보완적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데 의의가 있다. 기업 입장에선 공급망 불확실성이 줄고 투자 여건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협정은 참여국들이 각국의 국내 절차 및 법률 검토 등을 거쳐 최종 협정 문안을 합의한 뒤 확정된다.
인태 경제프레임워크는 미국 주도로 지난해 5월 공식 출범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일본, 호주, 인도,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싱가포르, 브루나이, 뉴질랜드, 피지 등 14개 나라가 참여했다. 중국이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알셉)을 주도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자, 미국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협의체 성격이다. 미국은 아·태 지역에서 자국이 참여하는 다자 경제협정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번 공급망 협정은 중국의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미국이 ‘대중 압박’ 강도를 높이는 동력이 될 전망이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어떤 위기가 닥쳤을 때 서로 협력하는 틀을 만드는 것”이라며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 격인 인도와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강력한 공급망을 만드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인태 경제프레임워크 참여국의 전 세계 총생산 비중은 41%로 알셉(30.8%)보다 크다. 그동안 중국은 “중국과 지역 국가 간 협력을 약화하기 위한 지정학적인 경제 프레임”이라며 반발해왔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왼쪽부터 7번째)이 27일(현지시각)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장관회의에서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다만 ‘중국 배제’ 노선이 뚜렷하게 명시되진 않았다. 협정문에 ‘탈동조화’ 등 중국을 구체적으로 겨냥한 문구는 없다. 공급망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참여국간 공동 노력을 강화하자는 수준의 ‘느슨한 협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산업부 고위관계자는 “이번 합의에서 중국이 반발할 만한 요소는 없다. 특정국 배제를 목적으로 한 것도 없다. 중국은 우리의 중요 교역 및 투자 파트너로 긴밀한 관계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무역 등 나머지 협상 분야의 합의 수준도 그리 높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센터 센터장은 “대중국 경제 의존도가 높은 동남아 국가들은 협상에 참여해 이익을 챙기겠다는 입장이지, 미국 주도의 새로운 경제 질서를 수용한 관점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진단했다.
인태 경제프레임워크는 지난해 9월부터 무역·공급망·청정경제·공정경제 4개 분야 협상을 이어왔고, 이 가운데 공급망 분야에서 가장 먼저 합의를 이뤘다. 3개 분야 협상은 계속 이어진다. 미국은 올해 안에 나머지 분야 협상을 타결하겠다는 시간표를 제시한 상태다.
김회승 선임기자
honesty@hani.co.kr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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