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2일 열린 모로코 리튬·인산·철(LFP) 프로젝트 합자 업무협약(MOU) 체결식. (왼쪽 일곱 번째부터) 천쉐화 화유코발트 회장, 남철 엘지(LG)화학 첨단소재사업본부장 부사장. 엘지화학 제공.
중국 정부 지분이 25% 이상인 중국 배터리 기업의 외국 합작회사에는 미국이 전기차 보조금을 주지 않기로 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1일부터 배터리 핵심 광물인 흑연의 수출통제를 강화한 데 대한 맞대응 성격인데,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에 이어 배터리에서도 통상 장벽을 한껏 높이는 모양새다. 최근 미국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잇따르고 있는 한·중 배터리 기업 간 합작투자의 셈법도 복잡해질 전망이다.
미국 재무부와 에너지부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대당 7500달러(약 974만원)의 전기차 보조금 제외 대상으로 ‘외국우려기업’(해외우려기관)에 대한 잠정 세부규칙안(가이던스)을 1일(현지시각) 발표했다. 규칙안은 외국우려기업을 중국·러시아·북한·이란 정부의 소유·통제·관할(지시) 아래 있는 기업으로 정의하고, 이들 기업이 만든 부품과 핵심광물이 들어간 전기차 배터리를 단 차량은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번 규칙안에서 관심을 끈 대목은 중국 기업이 외국에 만든 합작사를 어떻게 간주할 것이냐였다. 규칙안은, 중국 정부 쪽이 국외 합작사의 이사회 의석, 의결권 또는 지분의 25% 이상을 직·간접적으로 보유한 경우 외국우려기업으로 규정했다. 그간 한국 정부는 외국우려기업의 중국 정부 지분율 기준을 50% 이상으로 요구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
외국우려기관 세부 규정은 배터리 부품의 경우 내년 1월부터, 핵심광물은 2025년 1월부터 적용된다. 미국 정부는 앞으로 한 달간 의견수렴을 받아 확정키로 했다.
일단 중국 정부 지분이 없거나 지분율이 낮은 중국 민간업체들의 합작사는 외국우려기업으로 지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는 중국 업체를 전부 배제하면 보조금을 받는 전기차가 거의 전무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 자동차 업계는 지금도 미국에서 팔리는 100여종의 전기차 중 20종만 보조금을 받는 현실에서 외국우려기업 규정까지 적용되면 보조금 대상은 더 줄어들 것으로 본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정부는 “세부 규정 발표로 업계의 불확실성이 해소됐다”고 밝혔지만, 세부 규정 중 불명확한 부분이 있다는 입장이다. 규정안은 ‘(중국 정부 쪽이) 광물과 부품 생산에 실효적인 통제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도 우려기업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기준이 모호해 중국 정부의 지분율 제한(25% 이하)을 충족하더라도 실제 보조금을 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업계 의견을 수렴해 미국 쪽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규칙안은 최근 한국과 중국 배터리 기업 간 합작사 추진 러시에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한·중 기업 간 합작사 추진 규모는 올해 들어서만 최소 5조원에 이른다. 지난해 인플레이션감축법 시행 이후, 대미 수출 우회로를 찾으려는 중국 기업과 안정적인 원재료와 부품 조달처가 필요한 한국 기업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엘지(LG)화학은 중국 화유코발트와 함께 1조2000억원을, 에스케이(SK)온과 에코프로는 중국 거린메이(GEM)와 함께 1조2000억원을 투자해 전북 새만금에 전구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
엘지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초 중국 리튬화합물 제조업체 야화와 모로코에서의 수산화리튬 생산을 위한 업무협약(MOU) 맺었다. 포스코홀딩스·포스코퓨처엠은 올해 6월 중국 업체(CNGR)와 이차전지용 니켈‧전구체 생산을 위한 합작투자계약(JVA)을 체결해 1조5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그간 두 나라 업체들은 합작사의 구체적인 계약 내용과 지분율에 대해 함구해왔다. 에스케이온 관계자는 “미국의 가이던스 확정 이후에 지분율을 추후 조정할 수 있는 계약 조건을 담았다”고 말했다. 포스코퓨처엠 관계자는 “필요시 합작 파트너와 협의해 지분 조정 등의 대응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엘지화학은 최근 기업설명회에서 “필요하다면 중국 쪽 지분을 전량 매입할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의 가이던스 발표를 염두에 두고 조정할 여지를 남겨둔 것인데, 한국 쪽 투자 부담은 그만큼 커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 절반가량을 분담하는 구조인데, 그 이상이 되면 재무적으로 부담된다”고 말했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중국 기업 지분의 추가 매입과 협상 등 단기적인 부담이 있지만, 길게 보면 우리 기업의 통제권이 늘어나고 내재화율이 높아지는 효과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회승 최우리 기자,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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