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6일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워싱턴 국회의사당 안에 난입해 깃발을 흔들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정치양극화는 오늘날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많은 국가들이 당면한 문제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더 많은 이들을 연결하고 소통으로 이끌어 민주주의를 강화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정치양극화의 토양으로 작용한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불과 24만 7077표, 득표율 기준 0.76%포인트 차이로 당락이 갈린 20대 대선이야말로 그 사례다.
지난 10일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은 역대 대통령에 견줘 이례적으로 낮다. 취임 직전 국정 운영 기대감이 57%(한국갤럽 4월 15일 발표 )에 그쳤는데 여당 지지층과 야당 지지층간 의견이 극단으로 갈렸다. 국민의힘 지지층은 89%가 긍정적으로 전망한 반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69%가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2017년 5월 탄핵과 촛불민심 위에서 출범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당선 2주 즈음 기대감이 87%였고, 비슷한 시기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도 각각 84%, 78%로 높은 기대감 위에서 출발했다. 과거에는 ‘내전’에 가까운 대선 뒤에도 정권 출범 초기엔 , 반대했던 유권자들도 새 대통령이 잘하기를 바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곤 했다.
정치양극화는 근래 더욱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지난 4월 12일 ‘정치양극화 수준의 국제비교와 시사점’을 주제로 박준 한국행정연구원 국정데이터조사센터 소장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대통령이 직무를 잘 했다는 긍정평가에서 여당 지지층과 야당 지지층간 격차가 컸다.
김영삼 정부 39%포인트, 김대중 정부 48%포인트였고 노무현 정부 시기엔 62%포인트로 상승했다. 그 후 이명박 정부 64%포인트, 박근혜 정부 75%포인트로 계속 커지다가 문재인 정부에서는 무려 85%포인트에 이르렀다. 정부에 따라 여당 지지층과 야당 지지층간 긍정평가 비율이 가장 크게 차이가 났던 시기를 기준으로 본 수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치양극화가 가장 극심한 나라로 꼽히는 미국보다 심각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 소장은 “미국에서 정치양극화가 최고조에 이른 시기는 2021년 1월 미국 의회 폭동이 발생했을 때다. 당시 공화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 간 트럼프에 대한 지지도 차이가 78%포인트였는데 이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된 2002년 대선은 정치가 디지털과 본격적으로 결합한 시기이기도 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더 많은 정보와 소통, 참여가 가능해졌지만 건전한 토론과 숙의 대신 편가르기와 분노에 기반한 극단주의 또한 또아리를 틀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다양한 의견의 수렴을 거친 여론은 갈등 조정을 위한 정치의 출발점이다. 소셜미디어가 지배하는 디지털 세상의 여론은 어떨까? 트럼프가 당선된 2016년 미국 대선은 소셜미디어가 정치양극화의 토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민자 등 약자에 대한 증오와 혐오 발언이 난무하고 여론은 양극단으로 분열되었다. 의도적으로 취사 선택된 허위 정보는 소셜미디어에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미국은 사실상 두 개의 세계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사람은 자신의 믿음에 부합하는 사실과 의견들만을 선택해 믿는 확증편향이 있다. 기존 연구들에 따르면 이런 인지편향은 소셜미디어에서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 또한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은 이용자의 관심사에 맞춰 필터링된 정보를 제공하고 이용자들은 편향된 정보에 갇힌다. 그 결과 “유튜브 등 거대플랫폼은 이용자들을 반향실에 밀어넣고 더 많은 극단적인 콘텐츠를 제공해 사실과 신뢰에 의존하는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 빅테크 시대 윤리학으로 주목받고 있는 책 <시스템에러 >의 저자들이 던지는 묵직한 경고다.
민주주의는 집단간 갈등이 공론장에서 진행되는 토론과 숙의를 통해 해결되는 정치체제다. 인간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접촉하고 다양한 견해에 노출될 때 더 나은 결정을 하며 혼자서는 불가능한 문제도 해결한다. 즉,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크기에 ” 유지될 수 있는 체제다.
사회학자 하버마스는 “인터넷이 원심력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공론장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다. 법학자 캐스 선스타인도 “온라인 공간이 확증편향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며 집단의 양극화를 악화시켜 극단주의, 사회 안정을 위태롭게 하는 경향이 있다”고 우려했다.
대안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독일 주간지 <디 차이트 > 편집장 바스티안 베르브너가 주도한 사회실험은 아직은 흐릿하지만 의미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는 정치적 극단화로 인한 균열과, 혐오와 편견으로 파편화된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접촉’을 제안한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필터 버블을 걷어내고 ‘나와 다른 사람’, 사회에서 배제된 소수자들과 더 많이 접촉함으로써 편견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난민, 무슬림, 동성애자 등을 혐오하던 이들이 그들과 작지만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면서 극단주의가 사라지는 수많은 경험에 기반한 주장이다. 그래서 더욱 울림이 크다 .
한귀영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연구위원 hgy421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