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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헤리리뷰

“지속가능 가치 담은 새로운 분배시스템 상상해야”

등록 2011-12-20 10:24

이탈리아 밀라노 폴리테크니코대학의 에치오 만치니 명예교수
이탈리아 밀라노 폴리테크니코대학의 에치오 만치니 명예교수
HERI가 만난 사람 / 에치오 만치니 교수
11월24일 이탈리아 밀라노 폴리테크니코대학의 에치오 만치니 명예교수가 한겨레경제연구소(HERI)와의 인터뷰를 위해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 들렀다. 그는 1980년대에 소재 디자인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이후 전략 디자인, 서비스 디자인을 거쳐 현재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전통적 디자인을 넘어서는 생각과 이론을 발표해오고 있는 디자인 전략가이자 지속가능한 디자인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이다. 그가 이번에 서울에 온 목적은 사회혁신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디자인(DESIS) 네트워크의 한국 출범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만치니 교수가 하는 디자인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디자인과는 조금 다르다. 그는 사회혁신을 위한 서비스를 디자인한다. 생산자와 소비자 직거래 장터라든지, 자동차 함께 타기(카 셰어링), 도심 자전거 대여 서비스 같은 사회적 변화를 가져오는 시스템이나 활동이 그것이다. 그는 현재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을 살펴보면 문제의 형태는 다를지라도 공통적인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며 “공통분모는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고, 기존의 가치관에 도전하는 것, 협력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말할 때 우리는 과거의 유기농 재배, 직거래, 공동체 활동 등을 주목한다. 하지만 만치니 교수는 오늘의 직거래 장터나 공동체 활동은 자발성의 산물이란 점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과거를 생각해보면 상당히 폐쇄적이었고, 많은 것이 필요에 의한 강제성을 띠고 있었다. 오늘의 직거래 시장은 후기 산업화의 새로운 개념이다. 농부가 당근을 생산해서 파는 것은 같다. 하지만 지금의 농부는 당근을 어떤 방법으로 재배했고, 무엇이 좋은지 생산에 얽힌 이야기를 판다. 농부인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혁명적 기술로 전통적 시스템 재현

그는 지속가능이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며 그 특성을 네 가지로 간추린 SLOC(small, local, open, connected)라는 조합으로 이를 설명한다. 즉 규모가 작고,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개방적이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점이 지속가능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사회는 작고 정체성이 뚜렷한 지역색이 있었다. 지금의 지속가능성은 두 특성에 개방성과 연결성을 추가한 것이다. 개방성은 새로운 기회와 참여의 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연결성은 작은 공동체 사이의 수평적 연대와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만치니 교수는 이 네가지 가치는 항상 같이 가야 하며 이것은 분배 시스템의 변화를 뜻한다고 말을 이었다. “새로운 형태의 분배 시스템을 상상해야 한다. 여러 지역에서 원료를 공수해 대량생산한 후 최종 사용자까지 먼 길을 돌아가는 방식의 끝에 와 있다. 개인이 디자인하고 필요한 만큼 만들어 바로 가져갈 수 있는 전통적 시스템이 혁명적 방법으로 높은 기술력과 네트워크를 통해 재현될 것이다. 이때 자원을 가장 덜 소모적으로 이용하게 된다.”


개인이 생산·공급·소비 함께 가능

그는 이론적 또 기술적으로도 이젠 각 개인 또는 개체가 생산과 공급, 소비를 동시에 할 수 있게 되었다며 정보의 이동과 집적이 수직적이던 시기를 벗어나 수평적으로 변한 것을 그 예로 들었다. “지금은 에너지 분배 시스템이 이런 방식에 근접해 있다. 제조업과 중공업의 변화는 이보다 좀 느리겠지만 조금씩 시작되고 있다. 미래의 생산체계는 지금의 반대가 될 것이고, 생산자와 최종 사용자의 거리는 가까워질 것이다. 이런 흐름이 다음 세대의 경제적·정치적 힘의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본다. 우리는 조만간 지난 세기의 공룡과 네트워크로 연결된 작은 생산자조합 사이의 주도권이 변화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농업을 산업으로만 보면 재앙 올 것

현재 국내에서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은 지속가능성의 특징에 부합할까? 그는 해당 국가의 정치·경제적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 답변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쟁점 중 하나인 농업분야에 대한 유럽인의 관점을 들려주겠다며 말을 이었다. “농업을 일반적인 제품이나 산업분야로 대한다면 큰 오판이다. 농산물에 대한 개방형 자유시장은 지역의 농업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농부는 단순히 식품을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다. 생물학적 다양성, 지역문화, 지역경제, 환경을 보살필 뿐 아니라 수질 규정, 환경 보호법 등의 주요 이해관계자이기도 하다. 이런 것들에 대한 통합적인 고려 없이 농업을 단순히 곡물과 야채를 생산하는 산업으로 본다면 크나큰 재앙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만치니 교수의 지속가능 사회 디자인의 이론적 배경은 199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이다. 그는 센이 “사회적 평등의 가치를 부각하고, 삶의 질을 측정하는 데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국민총생산이 아닌, 현재와 미래를 위해 개인의 가능성과 자유를 부각하는 역량접근”을 자신의 디자인에 반영했다고 한다. 그는 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모든 사람에게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의 가능성을 주어야 한다며 “디자인에 민주적인 가치를 담아 선택의 자유를 제공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윤리”라고 주장했다. 이런 접근법을 취하면 사용자를 문제의 원인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 생산의 요소, 조력자, 문제 해결자로 대하게 된다.

영웅이 필요없는 환경 만들어야

만치니 교수는 “우리에게 가장 풍부한 자원은 사람이다. 오늘의 70억 인구를 공동의 문제 해결을 위한 발명가, 절약가,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거대한 지성의 연합체라고 본다면 조금 희망적이지 않겠나?”라고 묻고는, “사람에게 물고기를 주는 것은 그에게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만 못하니라”라는 노자의 격언을 덧붙였다.

사회혁신의 동력은 헌신적인 개인 또는 집단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는 “창의력과 강한 조직력, 실행력과 기업가정신”을 꼽았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많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다고 그는 강조했다.

“영웅은 혁신의 초기 단계에 필요한 조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웅이 별로 필요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디자이너가 할 일이다.”

에치오 만치니

현 밀라노 폴리테크니코대학 산업디자인학부 명예교수 / 사회혁신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디자인네트워크(DESIS) 코디네이터

● 영국 골드스미스대학교 명예박사
● 미국 뉴욕 뉴스쿨 명예박사
● 홍콩 폴리테크닉대학교 석좌교수
● ‘황금 나침반’(Compasso d’Oro, Golden Compass) 상 2회 수상
● 유럽연합 과학연구개발 총국 자문위원
● 밀라노 폴리테크니코대학교 건축학 박사

DESIS란?

DESIS(Design for Social Innovation and Sustainability)는 사회혁신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디자인을 연구하는 단체들로 구성된 국제 네트워크다. DESIS의 목적은 디자인적 사고와 지식을 바탕으로 협력하여 다양한 차원의 사회적 혁신 시나리오와 소통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다.

지난 11월23일 DESIS 코리아가 출범했다. DESIS 네트워크의 창립자인 에치오 만치니 교수는 출범식 축사를 통해 디자이너가 사회혁신과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소개했다. 국내에서는 서울대학교, 울산과학기술대학교(UNIST) 등 두 학교가 참여하고 있다. 자세한 정보는 누리집(www.desis-network.org)을 통해 볼 수 있다.

글 하수정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soodal@ hani.co.kr·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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