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비영리ㆍ민간 협력의 성공모델로 꼽히는 캐나다 밴쿠버 주택협동조합 ‘로어 크릴’ 건물 모습.
[HERI 협동조합]
캐나다 밴쿠버 도심에 자리잡은 주택협동조합 ‘로어 크릴’(Lore Krill) 7층 옥상에는 예쁜 정원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멀리 태평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밴쿠버 캐나다 플레이스의 상징물인 5개의 하얀 돛대가 쪽빛 바다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다.
비싼 도심의 땅에 어떻게 주택협동조합 건물이 들어설 수 있었을까? 브리티시컬럼비아주(비시) 주택협동조합연합회(CHF) 톰 암스트롱 대표는 “공공, 비영리, 민간의 파트너십이 잘 이뤄진 모범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당국서 땅 빌려주고 건축비 대출 보증
로어 크릴이 있는 웨스트코도바 65번지는 고풍스런 건물과 고급 식당, 카페가 즐비한 화려한 도심의 바로 한 블록 뒤에 있다. 10여년 전 이 거리에는 노숙자와 마약중독자들이 활보했다. 2002년 노숙자를 위한 엔지오 활동가 로어 크릴과 지역 주민 15명이 모여 주택협동조합을 만들기로 했다. 당시 공공기관의 주택지원 프로그램에 따라 시 정부는 주차공간인 땅을 60년간 빌려줬다. 주 정부는 건축비용 대출을 보증했다. 비시 주택협동조합연합회는 조합모델과 사람 모집을 지원했다. 주민들은 연합회의 지원을 받아 조합을 구성해 집을 짓고 운영조직을 만들었다.
현재 로어 크릴에는 102가구가 산다. 10년째 조합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웨스 호슬러가 주택협동조합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보다 저렴한 비용에 안정적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월세가 주변 시세의 절반 수준으로 싸고, 조합 규칙만 잘 지키면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다. 집주인 간섭이나 집값 상승 걱정도 없다.” 또 다양한 소득 수준의 가구가 모여 협동적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것도 장점으로 꼽았다. “강제성은 없고 5층의 루프 가든, 1층 미팅룸 등의 공동 공간을 이용하면서 교류가 자연스레 이뤄진다.”
인기 많아 최대 5년 기다려야 입주 가능
캐나다에는 로어 크릴 같은 주택협동조합이 2200개가 있다. 9만1000가구가 참여해 25만명가량이 주택협동조합 집에서 살고 있다. 대부분의 주택협동조합은 정부의 주거 프로그램에 따라 만들어졌고, 임대방식이며 비영리에 기반을 둔다. 대개 주택협동조합이 땅과 건물을 소유한다. 주나 시 정부가 땅을 장기로 빌려주는 경우도 있다. 조합원은 주택을 임대해 살지 소유하거나 자산으로 갖지는 않는다. 처음 조합원이 될 때 500~5000달러를 예치한다. 이사를 하게 되면 이자는 없지만 예치금 전액을 돌려받는다. 조합원은 연례회에서 이사를 선출하고 감사를 임명하며 주택협동조합 원칙을 승인한다. 또한 조합 규칙에 따라 공동시설 관리를 위해 정원 관리, 수리 등 일정 시간 봉사를 해야 한다.
톰 암스트롱 비시 주택협동조합연합회 대표는 캐나다에서 주택협동조합은 기존의 사회주택(소셜하우징)과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우선 주택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어 임대를 하기에 소유와 임대, 양쪽의 특성을 동시에 갖는다는 점이다. 비록 집을 소유하지는 않지만 조합원으로서 운영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택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함께 운영하기에, 커뮤니티 측면에서도 자발성이 높은 편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캐나다 협동조합 주택에는 대기자가 많다. 로어 크릴의 경우 새로 조합원이 되려면 길게는 5년 정도 기다려야 한다. 웨스 호슬러는 “일반 임대주택에 견줘 월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고 공동사용으로 관리비도 적게 나오고, 요건이 되면 정부 보조금도 지급되는 등 여러 혜택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조합원들은 대개 직장을 옮기거나 결혼 등의 피치 못할 사정으로 탈퇴해 이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새로 조합원을 받을 때는 조합 규칙에 따라 조합 위원회와 이사회에서 인터뷰를 한다. 주로 조합의 규칙을 얼마나 잘 따를 수 있을지를 따져 가입 여부를 결정한다. 주택 수리, 정원 손질 등 건물 관리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주기도 한다.
“한국 노후 농촌주택 해법에 활용할만”
캐나다의 주택협동조합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우선 신규 주택협동조합을 만들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됐다. 연방정부가 지방정부에 주고 있는 주택건설자금 재정지원이 10년 뒤 중단될 예정이다. 또 주 정부의 주택보조금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주택협동조합 집들의 노후화 문제가 심각하다. 수리 비용이 많이 들어 개별 조합 단위에서 부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마이클 로저스 주택협동조합연합회 기획담당자는 “30~40년 된 노후 주택이 늘고 있는데 도전을 기회로 삼아 이들을 대상으로 주택협동조합을 만들어가려 한다”고 말했다.
비시 주택협동조합연합회를 함께 방문한 이영환 성공회대 교수는 “캐나다 주택협동조합의 핵심은 조합원들이 임대 형태로 거주하면서 주인의식을 갖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노후 농촌 주택 문제를 풀어가는 데 활용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밴쿠버/글·사진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 부소장 h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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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티시컬럼비아 주택협동조합연합회 톰 암스트롱 대표(왼쪽)와 주택협동조합 ‘로어 크릴’ 웨스 호슬러(오른쪽) 조합이사가 조합원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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