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열린 2015 우리 농업 지키기 소비자 10만인대회 추진 선언 기자회견에서 아이쿱생협 조합원 등 회원들이 우리 농산물로 채워진 밥상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HERI 협동조합] 진화하는 생협 소비자운동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 사회공공성 강화팀 팀장.’ 오귀복(48)씨의 현재 직함이다. 요즘 그가 가장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 사업은 ‘행복한 밥상, 함께 지키는 우리 농업 소비자 10만인 축제’다. 그는 조합원들이 농업 문제를 중요한 소비자 문제로 인식하고 이번 행사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도록 지역 대표들과 머리를 맞대고 있다. 팀원은 없지만 그의 활동에는 60여명의 지역조합 대표라는 든든한 협력자들이 늘 함께한다.
아이쿱생협 사회공공성 강화팀은 2013년에 만들어졌다. 당시 사회공공성은 아이쿱생협 내에서도 낯선 말이었다. 그해 2월 경남 진주의료원 폐업이 사회적 쟁점이 됐을 때, 진주아이쿱생협이 지역시민사회와 연대했다. 아이쿱생협 사회공공성 운동의 출발이었다. 하지만 한 지역조합에서 외치는 공공성 운동은 조합원 개개인에게까지 널리 퍼져가진 못했다. 공공성 운동을 조합원에게 널리 확산하기 위해 운동본부를 출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조직이 만들어졌다. 우선과제는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안들을 조합원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교육을 해 조합원의 문제의식을 높여, 이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아이쿱, 사회공공성 강화팀 출범
오 팀장은 “아이쿱생협은 그간 안전한 먹을거리, 학교급식, 식품안전 교육과 첨가물 배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대응, 농업 지키기 등의 운동을 해왔다. 공공성을 조합원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우리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우선순위와 전략을 세워 운동을 펼치려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논쟁거리에 대해선 소비자활동연합회를 통해 움직이고 진주의료원, 밀양 송전탑 등 지역의 문제는 지역 생협이 독자적으로 대응하고 다른 지역협동조합들과 협력하고 있다.
이처럼 아이쿱을 비롯한 생협의 소비자운동이 안전한 먹을거리 이용만이 아니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공공서비스 영역까지 관심을 넓혀가고 있다. 사회공공성 강화 운동은 시민으로서의 안전과 존엄성을 유지하고 삶의 질이 낮아지는 것을 막기 위한 사회적 연대 활동이다. 이러한 운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연대, 그리고 민주주의와 자치, 지속가능한 환경과 생태라고 하는 협동조합의 기본 가치와 맥을 같이한다.
유로쿱, 미국과 협정에 우려 표명
외국 생협들도 소비자운동의 활동 폭을 넓혀가고 있다. 국가간·지역간 경제협정에 대한 정책적 보완을 제기한다거나 대안에너지 운동 등 폭넓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예컨대 유럽소비자협동조합연합회(유로쿱)는 지난해 3월 시작된 유럽연합과 미국간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에 대한 입장보고서를 지난 1월 발표했다.
보고서에서 유로쿱은 유전자재조합식품(GMO)부터 동물복제에 이르기까지 식품 분야의 다양한 쟁점에서 양쪽 경제권의 규제 조정이 소비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보고 이러한 쟁점을 ‘무역 장애물’로 인식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유럽연합의 높은 식품안전, 소비자 정보 기준을 약화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 생활클럽생협은 환경·교육 등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진 조합원들이 생활정치 참여를 목표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대리인 운동’을 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50여명의 의원을 뽑아 지역의 시민정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에너지 문제를 자치의 문제로 인식하고 자체적으로 풍차를 만들어 에너지 자립을 위한 도전을 하고 있다. 수도권 4개 단위 생협의 공동출자로 ‘생활정치 풍차’를 만들어 풍력발전 산업과 그린 전력을 공급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생협의 사회 공공성 강화를 위한 활동에 조합원들이 모두 공감하는 건 아니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위해 만들어진 생협이 왜 정치적 문제에 개입하느냐고 볼멘소리를 내는 조합원도 있다. 때론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생협법 조항을 거론하기로 한다. 생협법 제7조를 보면 생활협동조합은 공직선거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사회 공공성 강화 운동에 대한 조합원 인식의 간극은 협동조합의 양가적인 면과 연관성이 있다. 협동조합은 사업체와 활동체의 유기적 결합체다. 협동조합의 석학인 스테파노 차마니 교수(이탈리아 볼로냐대)는 ‘야누스’라는 말로 협동조합의 특징을 설명했다. 그는 “협동조합은 시장의 테두리에서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지만 민주적 운영을 넘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공공적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며 “이 둘의 균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문제 해결 영향력 행사해야”
2년 전 서울에서 만난, 생활클럽의 싱크탱크인 시민섹터정책기구의 사와구치 다카시 이사장은 “생협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는 것은 특정 정당의 편을 드는 걸 문제삼는 거다”라며 “협동조합이 사회문제 해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캐나다 출신 세계적인 협동조합 연구자 이언 맥퍼슨 교수도 협동조합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자립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덧붙였다.
1980년에 발표된 ‘레이들로 보고서’는 협동조합 운동의 경전으로 불린다. 레이들로 박사는 자신이 직접 실천한 협동조합 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1980년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총회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서기 2000년의 협동조합 운동’을 전망했다. 보고서에서 그는 궁극적으로 협동조합 운동은 인류와 사회의 여러 문제를 바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존재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또 사회·경제적 과제를 해결하는 일에 협동조합 운동이 적극적으로 기여하지 않으면 쇠퇴하거나 변질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결사체로서의 성격을 잃지 않는 협동조합만이 살아남아 지속가능하다는 사실은 35년 전 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생협 소비자 운동의 진화는 이런 맥락에서 지속되어야 한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h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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