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지사(새누리당)가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제주도 서울사무소에서 제주의 사회적 경제와 지속가능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HERI가 만난 사람] 원희룡 제주도지사 ‘사회적 경제’를 말하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이른바 ‘야당 콘텐츠’로 불리는 사회적 경제에 가장 열심인 여당 정치인 중 하나다. 취임 직후 도정 철학으로 내건 ‘협치’의 주된 콘텐츠가 사회적 경제다. ‘제주를 사회적 경제의 시범도시로 만들겠다’는 공약에 따라, 사회적경제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조만간 지원센터를 만들 예정이다. 그는 의원 시절부터 국내외 사회적 경제 현장을 둘러보고 학습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 야당 단체장 일색인 사회적 경제 협의체(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에도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 경제는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제3의 길’이자 미래의 큰 흐름”이라고 했다. “사회적 경제 활동가와 전문가분들을 돕고 뒷받침할 뿐”이라면서 수많은 정책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제주도 서울사무소에서 원 지사를 만났다.
-취임 이후 ‘제주를 사회적 경제 시범도시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관련 정책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지난해 관련 조례가 제정됐고, 얼마 전 사회적경제위원회가 출범했다. 전반적인 정책 방향을 설명해달라.
“그동안 원주 생협 등 국내외 사회적 경제 현장을 직접 찾아가 조사하고 연구했다. 공적인 가치와 수요가 있는 영역에서 사회적 경제 방식으로 풀어나갈 문제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제주 안에 이미 오랜 기간 사회적 경제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제로 추진해 온 활동가분들이 많다. 이분들의 성과와 시행착오가 바탕이 될 것이다. 앞으로 이분들이 참여하는 민관 협의기구인 사회적경제위원회를 중심으로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관이 주도하는 게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와 요구가 직접 수렴될 수 있는 논의 구조다. 곧 설립될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운영과 집행을 해나갈 것이고, 도에서는 그 속도와 역량에 맞게 최대한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
시장경제 5%만 대체해도 대단한 성과
-민간의 자체적인 동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인가?
“그렇다. 사회적 경제는 영리 시장과는 다르다. 영리 기업이 할 수 있는 사업이라면 제대로 경쟁해야지 보조금 수혜에 의존해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시장의 실패 내지 시장에 공급되지 않는 재화와 서비스(일자리)를 창출하는, 사회적 경제 고유의 대체 불가능한 존재 이유가 있어야 한다. 정확한 위치 설정이 안 되면 성과와 연결되기 어렵고 보여주기식 전시 행정으로 귀결되기 쉽다. 그러면 납세자로부터 비판받고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진다. 이는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공공의 이익이라는 큰 방향에서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열의와 성실성에 세금이 쓰여야만, 성공과 실패 여부를 떠나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사회적 경제의 정체성에 맞는 아이템과 운영 방식 아래 자발적인 노력과 책임으로 추진하고 행정이 이를 뒷받침하는 관계 설정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정부·지자체의 지원은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딜레마다. ‘보조금 따먹기’라는 비판과 동시에 올바른 생태계 조성을 해친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로부터 그런 지적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저는 흥미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일반적인 이익단체들은 지자체 보조금을 어떻게든 더 많이 타내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사회적 경제 단체들은 가능하면 안 받으려고, 최대한 적게 받으려고 한다. 사회적 경제에 참여하는 분들이 사회적 경제의 본질에 대한 의식과 책임감이 매우 높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다. 물론 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시장경제든 사회적 경제든 경쟁 자체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런데 가끔씩 사회적 경제 사업의 동기와 성과를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게 된다. 사회를 바꾸겠다는 의지와 별개로 결과에 대해서는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실패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처음부터 목표를 높게 잡는 것도 실패를 키우는 요인이다. 저는 사회적 경제가 시장경제 영역을 5% 정도만 대체해도 대단한 성과라고 본다.”
제주엔 아직 마을공동체 살아 있어
-제주도의 사회적 경제 기반은 어떻다고 보나? 제주의 특수성이 갖는 장단점은?
“제주는 아직 마을 공동체가 살아있다. 도민들이 내향적으로 결집하는 문화가 강하다. 공동체에 기반을 둔 협동과 연대를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을 만들기’ 같은 사회적 경제의 좋은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마을은, 주민 자치회가 마을 단위에서 카페도 내고 서점을 만들고 유채꽃 축제도 연다. 대한민국에서 마을 만들기의 성공적인 모범 사례로 꼽힌다. 주민들이 마을 만들기의 운영 주체이며, 마을회 자체가 협동조합적 성격을 띤다. 또 하나의 장점은 제주의 산업 구조다. 제주 경제는 1차 산업과 관광 산업이 주다. 대량 생산을 하는 제조업이나 대규모 유통 서비스가 없는 영세한 구조다. 이는 뒤집어 보면, 개인 또는 영세한 경제 주체들이 서로 협동해야 할 필요성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농업이든 관광이든 자연스럽게 사회적 경제의 원칙이 접목될 수 있는 환경인 셈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일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정책이나 사업은?
“제주는 지금도 마을에 잔치가 있고 주민들이 단체로 오고 간다. 예컨대 잔치 마을까지 데려다주고 끝나면 돌아오는 ‘콜버스’ 같은 걸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전세버스로 운영하기 때문에 비싸다. 옛 도심에 문화 창작가들이 정착해 사는 창작 스튜디오 사업도 좋을 것 같다. 호텔 체인 같은 곳이 운영을 더 잘할지는 모르겠으나 이윤을 낼 수 있을 만한 규모가 아니다. 사회적 경제 방식으로 하면 이익 규모는 적지만 훨씬 더 아기자기하게 꾸며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또 제주에서 민박을 할 때 관광객들이 인터넷 업체를 통해 오는 경우가 많은데, 주민들이 협동조합 방식으로 결제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서비스망을 만들 수도 있겠다. 이런 식으로 문화와 관광, 마을 만들기 등의 영역에서 지역 주민들이 공동으로 협력해 꾸려갈 수 있는 일을 찾아내려 한다.”
-돈이 되면 민간기업들이 탐내지 않겠나?
“시장 경쟁을 치열하게 해야 하는 곳에서는 사회적 경제가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공공에서 해야 할 일인데 관료주의와 형식에 얽매여 잘 되지 않는 사회서비스 부분이 적지 않다. 제주 올레길이 모범 사례다. 도시재생, 대중교통 같은 영역과 상당수 복지 서비스에서도 사회적기업 등이 새롭게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지자체 보조는 충분한 명분이 있기 때문에 재정 측면에서 안정성이 확보될 수 있다.”
서울 대도시-제주 생태휴양지 장점 결합
-얼마 전 박원순 서울시장과 두 지역의 ‘사회적 경제 기반 확보’ 등의 협력을 맺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에서 어떻게 협력할 계획인가?
“사회적 경제는 지역 단위의 협동 체계로 연결이 되어야 발전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와는 다양한 협력 시스템을 구상할 수 있다고 본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와 제주라는 생태적인 휴양지가 서로의 장점을 살리는 방식이다. 예컨대 제주의 농축수산물을 팔고 서울에 휴양 상품을 제공하는 시스템을 생각할 수 있겠다. 또 중국 관광객에게 서울-제주를 묶어 공동 마케팅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두 지역의 협력 과정에서 개별 경제주체를 연결하고 끌어들이는 일은 공공이나 민간 외에 사회적 경제 차원에서 개발할 여지가 크다고 본다.”
-취임 200일이 지났다.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임기 안에 어떤 성과를 거두고 싶나?
“앞서 말했듯이 사회적 경제 정책에서 행정적인 ‘성과 목표’는 두지 않고 있다. 제주 지역에서 사회적 경제를 24시간 고민하고 노력하는 분들을 잘 뒷받침하면 그것이 성과를 낼 것이라고 믿고 있다. 도에서는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등을 통해서 마케팅·판로 등 스스로 하기 힘든 부분을 적극 지원할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연결해 판로나 협력처를 확보하는 것 등 지방정부가 정당하게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정책 수단을 가지고 최대한 돕겠다는 거다. 사회적 경제에 대해서는 도 의회에서도 공감이 많다. 도 전체 예산이나 행정 규모로 볼 때 지원 규모를 좀더 크게 키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예산이 남아돌아서가 아니다. 무엇보다 사회적 경제 단체들이 스스로 감당 못할 일은 벌이지도 않는다.”
-제주의 경우 개발 현안이 많은데,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큰 도전이 아닐까 싶다.
“제주의 개발 이슈는 전 국민의 관심사다. 두가지 큰 원칙을 갖고 있다. 하나는 공공자원의 관리이고, 또 하나는 주체의 참여다. 공공자원의 관리라는 부분을 ‘균형개발’의 측면에서, 구성원들의 참여를 ‘협치’를 통해 풀어나가는 것이다. 중국 등 해외의 투자 자체를 배타적으로 볼 순 없다. 다만, 환경과 토지 등 공공자산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명확한 원칙을 갖고 조정을 해야 한다. 최근에 싱가포르 자본의 대형 리조트 개발 사업에 4가지 엄격한 조건으로 허가를 내줬다. 제주 주민을 80% 이상 고용하고 건설 용역의 50%를 지역에 발주할 것과 제주 농축수산물과 원자재 우선 구매와 인력 양성 프로그램 운영 등이다. ‘투자를 받겠다는 거냐’는 비판이 있었지만 공공자원의 관리 원칙에 입각해 관철했다. 투자 유치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융합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이 깊은 게 사실이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논란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사회적 경제를 정파 이념으로 봐선 안돼
-사회적 경제가 국가 경제와 지방 행정에서 어떤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사회적 경제는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제3의 길’이다. 시장에서의 지불 능력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공적 수요와 공급을 대신하는 시스템이다. 취임을 전후해 다보스포럼이나 유럽 등지를 다니면서 사회적 경제가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직접 듣고 보려고 노력해왔다. 영국의 경우, 우리나라에선 정부나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의 상당 부분을 사회적기업 등이 맡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사회적 경제와 행정이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음으로써, 비용은 줄이고 주민 밀착도와 만족도는 높이는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가 급속히 고령화되면서 복지 등 공공서비스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의 사회적 경제도 영리기업들의 틈새시장보다는 공공성이 우선인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더 활발해져야 한다. 사회적 경제를 특정 정파의 이념으로 봐선 안 된다. 사회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주고받는 새로운 방식이다. 과거처럼 비대한 국가 기능을 사회적 경제 영역이 보완하는 게 세계적인 흐름이고, 그곳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대한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김회승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honesty@hani.co.kr
사진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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