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헤리 리뷰]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7년째
사회적 반목과 갈등 심해져
위기뿌리는 ‘불균형·불평등’
구호 대신 행동강령 필요한 때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7년째
사회적 반목과 갈등 심해져
위기뿌리는 ‘불균형·불평등’
구호 대신 행동강령 필요한 때
세계 경제가 혼돈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만성적인 불안과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든 모습이다.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가 터진 뒤 7년째를 맞는데도 세계 각국은 여전히 또다른 위기의 공포에 떨고 있다. 돌파구를 찾기는커녕 곳곳에서 미증유의 경제위기에 빠지거나 극심한 사회적 반목과 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영속적 침체’ 우려에 직면한 거대 소비대국 미국, 생산·수출대국으로 한때 ‘세계 경제의 구세주’로 떠오른 듯했다가 최근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하고 있는 중국, 재정위기에 따른 경제공동체의 균열을 넘어 정치적 통합까지 위협받고 있는 유럽, ‘잃어버린 20년’의 터널에서 아직도 탈출하지 못한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역시 산업화시대 이래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침체의 그늘에 들어서 있다. 전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이런 경제적 파동의 뿌리에 똬리를 틀고 있는 공통적인 요소는 이른바 ‘불균형’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글로벌 불균형뿐 아니라 각 지역·국가 내 경제에서도 1980년대 이래 갈수록 골이 깊어진 소득·자산 배분의 불균등이 소비 부진을 낳고, 이는 경제활력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기울어진 시장에서 벌어진 상품·자본 흐름의 쏠림 현상이 금융위기를 촉발한 뇌관이었다는 진단은 이제 새롭지도 않다. 시야를 세계 경제에 두지 않고 각국 경제로 좁혀 보더라도 사회·경제적 불균형 해소가 시대적 과제로 전면에 등장했다.
역동적인 성장의 시기는 다시 도래하기 어렵다. 세계 경제는 ‘새로운 균형’을 모색해야 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한·중·일을 비롯한 아시아도 바야흐로 대전환의 시대를 맞았다. 혼돈과 위기의 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는 새로운 균형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경제 질서와 성장모델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지난 한 세대 동안 세계를 한쪽 방향으로만 몰고 갔던 자본의 힘과 탐욕의 논리는 이제 유효기간이 다했기 때문이다.
불균형과 불평등의 심화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자산과 소득 배분의 불균형이 경제 확대재생산의 주요 원천인 수요·소비 부족을 야기하고, 이에 따라 기업의 투자와 생산이 위축되면서 일자리를 줄어들게 해 결국 국민의 소득과 생존 기반을 더욱 약화시키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세계 각국 정부는 이에 따른 수요 부족에 대응해 지금까지 개인과 기업의 부채를 늘리는 통화금융정책에 매달려왔으나, 경제의 불확실성만 키웠을 뿐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다는 진단을 받고 있다.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계속 떨어지는 가운데 부문간, 계층간 격차가 더욱 벌어지면서 사회적 긴장과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인간의 생존과 안전 등 기본권까지 위협하는 정치적 불안도 따지고 보면 불균형에 그 뿌리가 있다.
저성장의 덫에 걸린 경제가 다시 활력을 찾고, 새로운 균형으로 가는 길을 비추는 불빛은 ‘신뢰와 협동’이다. 90년대 이후 주기적으로 출몰해온 여러 경제적 충격들을 겪으면서 사회적 신뢰와 공동체의 가치에 따르는 협동은 경제학 입문서에서도 주요 주제로 다뤄지고 있을 만큼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새로운 균형에 맞는 새로운 성장 궤도에서는 노동과 자본 같은 생산요소의 양적 투입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신뢰와 협동, 책임 의식에 바탕을 둔 혁신 역량이 주요 변수다. 경제의 상호연관성이 밀접한 아시아 3국도 신뢰와 협동에 기반한 ‘새로운 균형’에서 공존공영의 터를 닦아야 한다.
그러나 신뢰와 협동의 경제에 대한 논의는 아직 구호나 전망에 머물고 있다. 지금은 현실적이면서도 실천이 뒤따를 수 있는 지침과 행동강령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신뢰와 협동의 경제를 통한 새로운 균형은 단계별, 점진적 접근 방식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불균형과 저성장의 골이 동시에 깊어지는 길에서 빠져나오려면 속도 조절이 아니라 다른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일상적인 경제·사회 활동에서부터 정부, 기업, 가계, 시민사회 등 모든 주체들이 함께 찾아서 함께 가야 할 길이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누가, 어떻게 새로운 균형을 위한 신뢰와 협동의 경제를 이룰 것인가? 한겨레신문사가 올해 6회째 여는 아시아미래포럼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들어볼 수 있는 자리다. 영국 상원의원이면서 세계 유력 언론을 통해 왕성한 기고 활동을 하고 있는 로버트 스키델스키(76) 영국 워릭대 명예교수가 ‘세계경제의 불균형을 넘어’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에 나선다. 현대 경제학의 거두인 케인스 연구로 일찍이 세계적 석학 반열에 오른 그는 이번 포럼에서 ‘탐욕의 충족’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과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경제질서와 대안적 가치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기조강연에선 사회정책에 기반한 대안 발전모델을 주창해온 인도의 진보적 경제학자 자야티 고시(60) 자와할랄네루대 교수가 ‘신흥경제는 발전하고 있는가, 도대체 발전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세계 경제가 맞닥뜨린 근본적인 위기 요인을 짚어본 뒤 한국과 아시아 신흥국들의 실정에 맞는 위기 극복 방안을 제언할 예정이다.
기조강연 뒤에는 박영철 고려대 석좌교수의 사회로 국내 케인스경제학 권위자인 정운찬 전 국무총리, 국내 ‘시카고학파 경제학자 1호’로 불리는 이지순 한국경제학회 회장(서울대 명예교수), 최근 금융·거시경제 분야의 비중 있는 논문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신관호 고려대 교수 등이 ‘새로운 경제’의 좌표와 가능성을 타진하는 토론의 장을 연다. 이번 포럼은 경제학계의 국내외 석학, 기업가, 정책 담당자, 한·중·일의 사회적 경제 연구자, 그리고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함께 ‘협동과 신뢰의 경제’라는 북극성을 탐색하는 마당이다.
조계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동향분석센터장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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