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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헤리리뷰

공공임대주택, ‘희망’과 ‘공포’의 이중성

등록 2017-12-26 11:23수정 2017-12-27 11:38



새 정부 5년간 85만가구 공급 약속
서울시민 95% “필요하다” 긍정답변
일부 주민들 “기피시설” 반발 대조
임대주택 건설 이후 인근 집값 상승
계층적 다양성, 도시 경쟁력의 핵심
지난 11월20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주거복지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김성광 기자
지난 11월20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주거복지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김성광 기자

# 장면 1

“처음으로 임대아파트 지원했는데요 . 떨리네요 ...대기중인 예비자가 5명이 있으니 ... 되도 이번 연도에는 못 들어갈 것 같아요 . 빨리 당첨결과 나오면 좋겠어요 !”

“저희도 00 지원했어요 . 매일 신랑이랑 기도하네요 . 남은 한 달 너무 길게 느껴져요 .”

네이버 카페인 ‘국민임대아파트 들어가기 공공임대아파트 ’에는 임대아파트 입주 자격과 대기 순위 등에 대한 질문이 쉴 새 없이 올라온다 . 이들에게 공공임대아파트 입주란 전셋값 걱정 , 이사 걱정 등 만성적인 주거불안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 또한 내 아이의 공부방도 생기는 축복 같은 일이기에 임대아파트 당첨 소식이 올라오면 다들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부러움을 맘껏 표현한다 .

# 장면 2.

지난 9월 25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단원고 조은화 ·허다윤양 이별식이 끝나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 갑자기 박원순 서울시장 면담을 요청하는 20명 남짓한 사람들이 난입해 시청 직원들과 몸싸움이 벌어지면서 숙연했던 장내가 소란해졌다 . 이들은 청년임대주택 건립 반대를 관철하기 위해 서울시청이 주관하는 모든 공식행사에 나타나 시위 중인 관악구 신림동 주민들이었다 .

서울 곳곳에서 각종 복지시설은 물론 공공임대아파트마저 ‘기피시설 ’로 간주하면서 지역 주민의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 서울시 청년 주택 예정지 45곳 중 주민과 합의를 이룬 곳은 불과 3~4곳에 불과하다 . 마포구 창전 1구역 지역개발조합 쪽은 “청년들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주거난을 해결하겠다는 서울시 정책에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일조권 , 조망권 피해는 물론 초등학생 등하굣길 안전문제나 교통사고 , 주차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것 ”이라며 반대에 나섰다 .

주거복지로드맵의 핵심 공공임대주택

얼마 전 문재인 정부가 주거복지 로드맵을 발표했다. 주택이라는 단어 대신 주거복지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서도 드러나듯 핵심은 공공성 강화였다.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취약계층들도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집을 100만호 공급하겠다는 계획이었고 그 중 65만호가 공공임대주택이었다.

주거 취약계층 주거안정을 위해 공급해야 하는 장기공공임대주택 재고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가 평균 9%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훨씬 못 미치는 6.3%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물론 안철수 후보도 공공임대주택 확대 공급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문재인 후보는 매년 공적 임대주택 17만 가구, 총량으로는 5년간 85만가구 공급을 목표로 제시해 공공임대주택 공급 재고율을 임기 말까지 9%에 도달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안철수 후보도 매년 15만가구씩 공공주택을 공급하고 5만의 청년희망임대주택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처럼 공공임대 확충은 여야, 진보보수에 관계없이 서민주거안정의 뼈대를 이루는 정책이다.

2016년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가 실시한 ‘사회 초년생 주거실태 및 인식조사’에 의하면 청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주거대책 1순위도 공공임대주택 확대(51%)로 나타난 바 있다.

2013년 6월 7일 오후 서울시가 추진한 대학생 공공 기숙사 건립 예정지인 서울 광진구 자양동 유수지 뒤로 주민들이 기숙사 건립을 반대하는 아파트가 보인다. 사진 신소영 기자
2013년 6월 7일 오후 서울시가 추진한 대학생 공공 기숙사 건립 예정지인 서울 광진구 자양동 유수지 뒤로 주민들이 기숙사 건립을 반대하는 아파트가 보인다. 사진 신소영 기자

대도시, 땅값 비싼 지역일수록 공공임대주택 반대 거세

사실 공공임대주택 공급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엄청난 재원도 문제지만 인근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계획이 차질을 빚거나 무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 땅값이 비싼 도심지역일수록 내 지역에는 안된다는 ‘님비현상’이 심각하다. 목동 유수지에 1300세대의 행복주택을 지겠다는 계획도 무산되었고 구의 유수지도 당초 대학생기숙사를 건립할 계획이었으나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이 계획은 468세대 행복주택 건립으로 선회했지만 이마저도 좌절되었다.

지난 10월 서울시가 주최한 주거복지 페스티벌에서 ‘서울시 임대주택 공급 님비현상’에 대해 발표한 지규현 한양사이버대학교 교수는 주민들의 반대 이유로 “표면적으로는 환경오염, 절차상의 하자, 교통혼잡, 조망권 피해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이유는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 우범지대화될 수 있다는 불안이 크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지 교수는 “강하게 반발할수록 공원과 같은 편의시설 등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공공임대주택이 주변 집값을 하락시킨다는 증거 없어

하지만 이런 우려는 허구에 가깝다. 서울주택 도시공사 도시연구원이 2006년 이후 서울에 공급된 임대주택 주변 아파트의 실거래가(2015년 7월~2016년 6월)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임대주택 반경 500m 안에 있는 주택가격이 임대주택 건설 이후 평균 7.3% 상승했다. 엘에이치(LH)가 공급하는 임대아파트도 비슷했다. 다만 임대가구 수가 늘어날수록 주택가격은 하락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임대가구가 100가구 증가할 때마다 0.7% 정도 가격이 내려갔다. 평균적으로 재개발 임대는 245가구 이상, 국민임대는 789가구 이상 입주할 경우 주택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컸다. 중산층 수요자를 위한 임대주택인 시프트는 예외여서 가구 수가 많아도 주택가격이 내려가지 않았다.

공공임대주택 ‘필요’ 96%, 이미지 ‘긍정적’ 54.6%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대목은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은 상당히 긍정적이라는 점이다. 서울주택공사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2015년 12월 1일∼2016년 1월 22일 서울시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만 명과 서울시 시·구의원 229명, 서울시 및 자치구 소속 주택도시 및 복지담당 공무원 2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공공임대주택의 필요성에 대해 서울시민들의 95%가 긍정적으로 응답했고 반대는 4%에 그쳤다. 공공임대주택의 이미지도 긍정적이라는 응답이 54.6%로 부정적이라는 응답(20.2%) 보다 월등히 높았다. 주목할만한 것은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입장 차이가 소득에 따라서도 별 차이 없었다는 점이다. 공공임대주택 확대에 대해 200만원 미만 저소득층의 51.4%, 600만원 이상은 49%가 긍정적 입장을 표명했다.

공공임대주택 중 선호도는 행복주택>저소득층 공공임대주택>뉴스테이 공급 순으로 높게 나타났는데 저소득층 공공임대주택이 뉴스테이 공급보다 높은 지지를 얻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소셜믹스에 대해서도 56%가 긍정적으로 인식한 것으로 나타났고 400~600만원 사이의 중산층에서 긍정적 인식이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임차가구는 물론 자가 층에서도 긍정적 인식이 50%를 상회했다.

이러한 조사결과를 정리하면 공공임대주택은 필요하고 지지하지만 내 주변에는 짓지 말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지규현 교수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살고 싶다는 분리의 욕망이 작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사회주택 ’녹색친구들 성산’. 사진 박승화 기자
사회주택 ’녹색친구들 성산’. 사진 박승화 기자

끼리끼리 주거가 중산층의 표상?

한 도시 내에서 계층/계급 간 주거를 분리할 것인가 섞여서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근대 도시화의 산물이다. 유럽에서 중세 봉건시대에 귀족은 성안에, 농노는 성 밖 거주로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다. 산업화 도시화를 겪으면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도시에서 같이 살게 되자 안전하게, 끼리끼리 살고자 하는 부르주아의 고민이 현대 도시체제로 투영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가 사는 위험한 도심을 피해 안전하고 쾌적한 교외를 택한 런던과 달리 파리의 부르주아는 문화가 있는 도시를 포기할 수 없었다. 대신 도시에서 두 계급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질병은 물론 혁명의 위협도 커졌다. 19세기 파리 대개조의 특징인 넓고 곧은 방사형 순환도로와 녹지 공간은 군대의 기동로 확보 등 혁명을 막기 위한 목적도 컸다. 어쩔 수 없이 한 도시 안에서 살지만 분리하고, 통제 격리함으로써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도 분리에 대한 욕망이 노골화되고 있다. 타워팰리스로 상징되는 고급 주택지들은 한결같이 철저한 검문검색으로 내부와 외부를 철저히 분리한다. 안전하고 쾌적한 끼리끼리 공동체를 제공한다는 이 전략은 중산층 아파트들이 좇는 모범이 되었다.

종종 일부 아파트에서 택배 차량 진입 금지나 택배 기사 엘리베이터 사용 금지 등의 결정을 내렸다는 뉴스가 언론에 보도되곤 한다. 엘리베이터 전기료 등 비용적 측면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외부인들의 진입을 더 어렵게 함으로써 내부의 동질성을 강화하겠다는 끼리끼리 주거 욕망이 작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도시의 계급 고착화는 도시 성장을 저해

이처럼 분리의 욕망이 강력하기에 한 단지 안에 분양세대와 임대세대를 강제로 혼합한다고 이질적인 계층이 자연스럽게 섞이긴 쉽지 않다. 초등학교 학급 안에서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임대와 분양으로, 분양세대는 다시 평수별로 끼리끼리의 뭉치는 모습은 드물지 않은 풍경이다.

이처럼 소셜믹스 정책이 현실에서는 적잖은 난관에 직면하고 있다. 소셜믹스(social mix)란 국가, 지역, 도시, 근린지역, 주택 단지 등에서 사회 계층 또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소셜믹스의 차원도 다양해서 아무리 부자 지역이라도 분양과 임대가 섞여 살아야 한다는 넓은 의미에서부터, 한 단지 안에서 분양과 임대를 함께 공급하는 측면, 그리고 주동 안에서 층간, 라인 간 임대와 분양이 섞이도록 하는 방법까지 다층적이다. 여러 전문가는 소셜믹스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동과 같이 드러나는 표식을 가급적 없애고 더 깊숙이 더 가까이 섞여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물리적 혼합을 넘어서 갈등의 해결과 상생 모색의 방법을 찾아가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소셜믹스는 차별과 배제 금지라는 윤리적 차원 외에도 도시의 성장, 활력을 위해서도 반드시 추진되어야 한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의 저자인 임동근 서울대 비케이(BK)교수는 “문화적, 계층적 다양성은 도시가 성장하는 주요 모토이고, 서구의 뉴욕이나 파리가 발전한 이유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다양성을 관용하고, 차별을 금지하는 훈련은 성장하는 도시에서는 주요 이슈다. 인재의 풀을 줄이면 새로운 혁신은 점점 더 힘들어진다. 도시의 계급 고착화는 이런 측면에서 도시의 성장을 갉아먹는다”고 말했다. 비싼 주거비 탓에 도시 빈민은 외곽으로 밀려나고 중산층 중심으로 획일화되어가는 서울이 계층적 다양성을 위한 정책을 의식적으로 시도해야 도시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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