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2~14일 경기도 파주 출판도시 지지향에서 ’생태문명 국제 컨퍼런스 2018’이 개최되었다. 사진 포럼 ’지구와사람’ 제공
한계에 이른 지구 생태문명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국제 포럼이 지난 10월 12~14일 경기도 파주 출판도시 지지향에서 열렸다. “산업문명을 넘어 생태문명의 새로운 꿈을 나누고 공동의 협력과 실천 모색”을 표방하며 2015년부터 개최된 포럼의 올해 주제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생태적 전환’이고 ‘지구와 사람’(대표 강금실)이 주최했다.
지난 여름 한국 사회는 최악의 폭염을 경험했다. 봄에는 숨 쉴 권리를 위협하는 미세먼지로 고통받았고 작년에 이어 올겨울도 혹한이 예고되고 있다. 이 같은 이상기온과 기후변화는 성장의 혹독한 댓가들로 생태적 위기를 보여주는 징후들이다. 한국은 산업문명의 후발주자로서 가장 많은 혜택을 누렸고 가장 많이 지구를 손상시키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한국은 이미 1970년부터 환경부하를 의미하는 ‘생태발자국’이 생태용량을 넘었다. 한국의 생태용량 대비 생태발자국 비율은 800%로 지구 상 모든 국가가 한국만큼의 소비 수준을 유지하려면 지구 3.5개가 필요하다.” 포럼에서 토론자로 나선 김종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진단이다. 통상 생태용량 대비 생태발자국 비율이 150%가 넘으면 생태적 부채가 심각한 국가로 분류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생태적 전환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문제는 산업사회에서 경제와 생태 간 조화를 이루는 경제시스템이 가능한가다.
“생태적 문명으로의 전환과 사회적 경제의 역할”에 대해 발표를 한 정건화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경제성장과 생태적 고려가 같이 제기될 경우 통상 경제가 이겼다. 성장이라는 거대한 목표 앞에 생태적 고려는 매우 왜소하고 때로 사치스럽게 여겨졌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는 단적인 사례다. 뉴욕타임즈가 가장 중요한 환경 관련 저작 중 하나로 꼽은 책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This Changes Everything)의 저자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자본주의와 지구와의 전쟁이고 자본주의가 언제나 쉽게 승리를 거두었다.” 성장과 풍요라는 지상 명제 앞에서 기후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늘 묻혔다.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문명적 수준의 대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생태와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에 대한 상상과 전망이 시급하다.
생태와 경제의 통합에 대한 요구는 당위적 차원을 넘어서 효율성 차원에서도 절실하다.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영국의 경제학자 니콜라스 스턴이 온난화의 위험성을 경고한 기후변화 보고인 <스턴 보고서>에 따르면 “그동안의 온갖 위험과 효과를 전부 고려하면 이미 나타난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비용으로 매년 인류는 전체 GDP의 5~20%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행동에 나선다면 최악의 결과를 피하기 위한 비용은 전체 GDP의 1% 정도다.” 지금 당장 나서는 것이 비용 대비 편익이라는 경제적 고려에서도 합리적이다.
정건화 교수는 대안적 경제시스템으로 ‘협력적 공유사회’를 강조했다. 이 개념은 미국의 문명비평가 제레미 리프킨에 의해 제시된 바 있는데 주거, 돌봄, 재생에너지, 도시농업 등 다양한 형태로 이미 우리의 일상 경제생활 속에 들어와 있다.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공유경제, 사회적금융, 지역화폐 등 이윤 중심의 자본주의 경제와 구별되는 실천들도 곳곳에서 활발하다.
이날 ‘공유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주제로 발표를 한 잭 월쉬(Zack Walsh) 독일 포츠담 IASS(Institute for Advanced Sustainability Studies) 연구원도 “자본주의가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공유에 있다. 여성의 무급노동이 그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이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최근의 공유 기반 경제학의 폭발적 증가는 위기에 대한 실천적 대응이다. 그는 “공유화 패러다임으로의 변화가 진정한 것이 되려면 사회적, 문화적 변화를 포함해야 한다”면서 ‘성찰하는 공유(The Contemplative Commons)’ 프로젝트를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공유 기반 시스템에서 심리적, 사회적, 정신적 패턴의 변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모색하는 실험이라고 소개했다.
새로운 경제시스템에 대한 실천적 모색은 법 영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강정혜 서울시립대 교수(법학)는 “지금의 경제시스템 아래서는 지구의 살아있는 시스템과 다양한 존재의 건강과 활력을 고려하지 못한다”며 대안으로 토마스 베리의 ‘지구법’을 제시했다. “기존의 법학은 인간의 천부적 존엄성만을 우위에 두고 우주나 지구적으로 작동하는 더 큰 원리를 배제하고 있는데, 새로운 법학은 지구공동체를 우위에 두고 새로운 법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지구법에 따르면 “지구, 동물, 식물, 산, 강, 호수 등의 존재들에게도 법적 주체성을 부여해야 한다.” 이들을 경제시스템의 구성요소로 인식해 고유의 권리와 이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3일에 걸린 생태문명 국제 포럼은 ‘생태적 전환을 위한 파주선언’으로 마무리되었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hgy421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