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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헤리리뷰

혁신은 안정과 행복을 먹고 자란다…“복지국가와 혁신경제는 한몸”

등록 2019-04-24 18:10수정 2019-04-25 10:23

‘혁신경제와 복지국가’ 토론회
안정감·만족도 클수록 창의성 높여
사회정책의 포용성도 긍정적 효과
정부의 ‘혁신 촉진자’ 역할 매우 중요
“생산성 낮은 기업 과감히 퇴출시켜야”
‘혁신경제와 복지국가’ 토론회가 지난 22일 연세대학교에서 열렸다. 발제자와 토론자는 최영준 연세대 교수(왼쪽부터), 안종석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광형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석좌교수, 양재진 연세대 복지국가연구센터장,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우석진 명지대 교수, 장덕진 서울대 교수, 한훈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혁신경제와 복지국가’ 토론회가 지난 22일 연세대학교에서 열렸다. 발제자와 토론자는 최영준 연세대 교수(왼쪽부터), 안종석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광형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석좌교수, 양재진 연세대 복지국가연구센터장,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우석진 명지대 교수, 장덕진 서울대 교수, 한훈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21세기 지식기반 경제에 접어든 한국 사회의 화두는 혁신이다. 혁신은 어떤 조건에서 활발할까?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복지국가는 혁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만약 복지국가가 제공하는 안정성과 높은 삶의 질이 혁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그 구체적 경로는 어떤 것인가? ‘혁신경제와 복지국가’를 주제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연세대 복지국가연구센터가 함께 연 토론회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탐색적 여정이었다. 토론회는 지난 22일 연세대 백양로에서 열렸다.

“혁신은 사회제도의 결과물”

복지국가가 제공하는 안정성은 양날의 칼이다. 굳이 애써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서는 노동자의 근로의욕이 떨어지고 기업의 이윤창출 동기도 약해져 혁신이 지체될 수 있다. 반면 안정성은 개인의 창의력을 높이고 새로운 기술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해 혁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복지국가는 어떻게 혁신경제에 기여하는가’를 주제로 발표한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후자에 주목하면서 실증분석을 시도했다.

최 교수는 복지국가가 혁신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두 가지 경로를 들었다. 첫째는 위험이 줄어드는 데서 생겨나는 안정성이다. 혁신은 새로운 기술과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 활발히 일어난다. 최 교수가 참여한 ‘랩(LAB)2050’의 ‘자유와 안정 서베이’(2018)에 따르면, 고용이나 소득이 안정된 사람일수록 새로운 기술과 혁신에 더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안정성이 변화에 대한 ‘수용성’을 높여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두번째 경로는 복지국가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 삶의 만족도가 창의성을 높여 혁신을 위한 긍정적 토양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최 교수는 “창의성은 인지적 다양성과 밀접히 관련되는데, 복지국가에서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감이 인지적 다양성을 높이고 창의성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가 시도한 실증분석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삶의 만족도가 높은 나라, 사회정책의 포용성이 높은 나라일수록 혁신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또한 근로 연령층에 대한 사회지출, 정부교육지출, 가족지출 등과 같이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진 나라일수록 혁신의 원천인 창의성도 높게 나타났다. 결국 최 교수의 지적대로 “혁신은 개인의 자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제도의 결과물”인 셈이다. 복지국가가 곧바로 혁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안정감과 행복도를 높여 혁신을 위한 토양에 기여한다고 풀이할 수 있다.

실패 두려움이 혁신의 걸림돌

그럼 복지에 대한 기대는 높지만 저성장의 덫에 갇혀 있는 한국 사회에서 혁신은 어떻게 가능할까? ‘혁신경제 창업국가 만들기’를 주제로 발표한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석좌교수는 창업이 갈림길에 선 한국 혁신경제의 ‘킹핀’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창업이 사회이동을 촉진해 일자리 격차와 불평등, 재분배 등 우리 사회의 난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창업이야말로 한 사회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한국은 다른 나라와 견줘 창업을 통한 혁신이 유독 더딘 나라다. 이 교수는 “한국과 미국의 50대 대기업을 비교해보면 한국은 익숙한 대기업이 상당수지만 미국은 과거에 없었던 창업 기업들이 대거 올라와 있다”며 “일본도 새로 창업한 기업가들이 50대 부호에 많이 속해 있어 재벌 2세, 3세 등 상속 부자들이 대부분인 한국과 대조된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제2의 벤처 붐’이 조성되는 등 어느 때보다 창업이 활발하지만 막상 혁신의 진원지인 소기업에 인재들이 몰리지 않는 이유는 낮은 생산성과 임금 수준 때문이라는 지적이 높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펴낸 자료를 보면, 한국의 1~9인 규모 소기업의 생산성은 250인 이상 규모 기업에 견줘 40% 남짓에 불과했다. 임금 수준의 경우 500인 이상 대기업에 견줘 1~4인 기업의 평균임금은 32.6%, 5~9인 기업은 48.3%에 그쳤다. 미국에서 동일한 규모의 기업은 각각 78.8%, 64.8%의 임금 수준을 나타냈고 일본도 대체로 비슷한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에서 소기업은 일하고 싶지 않은 기피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직장 1, 2순위는 각각 국가기관(25.4%)과 공기업(19.9%)이고 벤처기업은 2.9% 수준에 그치고 있다.(2017년 통계청 자료)

창의성이나 독립성처럼 창업에 필수적인 자질에서도 한국의 20대 청년은 자신감이 현저히 떨어졌다. 랩2050 자료를 보면, ‘나는 창의적이다’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모든 연령층 가운데 20대 청년들에서 가장 낮았다. 이들은 창의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요인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26.8%)을 1순위로 꼽았다. 다른 연령층에 견줘도 유독 높은 수치다. 불법 연대보증, 지식재산권 등 실패자를 보호하는 정책이 여전히 미흡하다 보니 청년들이 굳이 위험을 무릅쓰기보다 안전한 선택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혁신생태계 조성, 정부의 역할은?

해법은 없을까. 스타트업 등 창업이 활발히 일어나려면 무엇보다 혁신 촉진자로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의 연구개발 지원은 세계적으로도 이미 높은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정작 그 효과를 두고선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성공률 90%’라는 수치가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이광형 교수는 “해마다 연구개발에 20조원이 넘는 돈이 투입되고 있지만 안전한 연구, 기존의 연구와 거의 비슷한 연구들이 쏟아져 나온다”며 “실행을 위한 연구보다 논문 중심의 연구라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단기 실적 채우기에 급급해 실패를 감수하는 도전적인 연구개발이 나오기 힘들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정부의 지원정책이 ‘연명에 급급한’ 좀비기업을 보호하면서 혁신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진단은 눈여겨볼 만하다. 토론자로 나선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 정책은 청년을 중소기업에 묶어두는 정책에 가깝다”며 “데이터들을 보면 이미 청년들은 활발한 이직을 통해 좋은 일자리로 가고 있는데 정부의 과도한 지원이 이것을 막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벤처기업인들을 만나보면 상당수가 ‘죽게 내버려 달라’고 말한다”고 운을 뗀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도 비슷한 진단을 내놓았다. 장 교수는 “‘정부 지원으로 링거 맞고 안 죽는 좀비기업들이 가격을 덤핑하다 보니 오히려 다 같이 죽어간다’고 한다”며 “생산성이 낮은 기업을 퇴출시키지 않고는 혁신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혁신과 복지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조세정책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혁신과 재분배 사이에 놓인 조세제도의 딜레마’를 주제로 발표한 안종석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법인세는 민간의 혁신 인센티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법인세는 최고세율이 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높은 편이다. 세율은 낮추되 세원은 넓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어 안 연구위원은 만일 증세를 한다면 부가가치세, 소득세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증세가 시급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우석진 교수는 “증세 없이 복지국가를 하겠다는 것은 결국 안 하겠다는 것”이라며 자산에 대한 과세 등 증세를 서두를 것을 주문했다. 증세에는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에 대해 최영준 교수는 “복지가 잘되어 있는 관대한 나라일수록 관심과 열정 때문에 일하는 비율이 높은데,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세금이 높아도 수용 가능할 것”이라며 조심스럽게 낙관했다.

과연 우리 사회가 밟아나갈 현실적 경로는 무엇일까. 참석자 중에는 ‘새로운 상상’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장덕진 교수는 “우리나라가 조세부담률을 북유럽처럼 40% 수준까지 높인다고 해서 복지국가가 될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고령화, 4차 산업혁명 등 새로운 환경에 직면한 한국은 기존 복지국가의 막차가 아니라 새로운 복지국가의 첫차에 대한 상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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