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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헤리리뷰

‘러스트벨트’ 피츠버그는 어떻게 ‘신경제’의 중심이 되었나?

등록 2020-06-17 10:07수정 2020-06-17 14:14

‘혁신과 포용’ 현장을 가다
② 미국 피츠버그

제철산업 번성하던 ‘미국의 버밍햄’
1970년대 후발 공업국에 밀리며 ‘쇠락’
민관산학 협력으로 첨단기술산업 육성
‘러스트벨트’에서 ‘브레인벨트’로 변모
계층·지역간 불평등 해소 과제 남아
다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공기식 브레이크, 토마토 케첩, 증기선, 라디오 방송, 지프 자동차, 원자력 발전, 아폴로 우주선, 맥도널드 빅맥 버거, 소아마비 백신, 심장이식 수술…. 잘 모르겠으면, 다음 사람들의 공통점은? 앤디 워홀, 조지 벤슨, 토마스 멜론, 헨리 하인즈, 앤드류 카네기…. 아마 카네기의 이름을 보고 정답을 맞히는 독자들이 많지 않을까 한다. 정답은 피츠버그다. 이 도시에서 탄생한 제품, 예술가 및 기업가들을 나열해 보았다. 오랜 혁신과 창조의 도시, 피츠버그를 다녀왔다. 코로나19가 대구에서 폭발하고, 미국은 한국 여행에 대한 경고를 내리던 2월 말이었다.

피츠버그는 인구 30만의 작은 도시지만 경제생활을 함께하는 광역피츠버그 지역은 인구 260만으로 미국에서 20번째로 큰 대도시권이다. 우리가 보통 피츠버그 하면 카네기멜론대학과 피츠버그대학이 자리잡은 오클랜드 지역과 앨리게니강과 모농게헬라강이 교차하는 두물머리의 멋진 고층빌딩 숲만을 연상한다. 그러나 피츠버그는 1960년대까지 이 두 큰 강과 오하이오강을 따라 수많은 제철소와 제조업 공장들이 즐비했었던 산업생산의 중심지였다. 피츠버그의 참 모습은 지금은 공장이 사라지고 빈 터로 남은 쓸쓸한 강변 산업지대에 있는지도 모른다.

피츠버그 도심 풍경
피츠버그 도심 풍경

피츠버그는 운하로 워싱턴 DC와 연결되고, 오하이오강을 통해 북으로는 시카고와 디트로이트가 있는 오대호 연안의 중서부 산업지대, 남으로는 미시시피강에 이르는 내륙 물류의 출발지이다. 게다가 석탄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어 일찍이 ‘미국의 버밍햄’이라 불리며 제철산업이 번성했다. 철강왕 카네기가 이 지역 제철소의 40%를 소유하고, 피츠버그에서 미국 철강 생산량의 60%를 담당하던 20세기 초에는 ‘철의 도시(Iron City)’로 불리며, 돈과 사람이 몰리는 산업의 중심지였다. 피츠버그 출신 토마스 멜론이 이 지역에 세운 멜론은행은 걸프 오일, 엑슨 모빌, 제너럴 모터스, 유에스스틸, 하인즈, 웨스팅하우스, 알코아 같은 산업화 시기 대표 기업들을 소유하거나 키워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군수품 생산으로 전성기를 맞으며 공장 연기가 하늘을 덮는 ‘매연 도시(Smoky City)’로 악명을 날리기도 했다. 2차 대전 후 전쟁특수가 사라지자 매연 퇴치와 도심 재개발 등 피츠버그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났고, 웨스팅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전자, 우주, 원자력산업 등이 새롭게 발전해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도 한 때. 1970년대 미국의 전통 산업이 후발 공업국에 밀리며 구조조정을 당하자 피츠버그는 다른 중서부 지대의 산업도시들과 함께 소위 러스트벨트(Rust Belt)로 전락하고 말았다. 1977년부터 1987년까지 10년간 75%의 제철소가 문을 닫고 제철산업에서만 35만명이 감원되었다.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이후 신규 원전 건설이 중단되자, 웨스팅하우스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인구가 70만명이었던 피츠버그는 30만의 도시로 끝도 없이 추락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는 도시로 다시 태어났다. 1600여개의 첨단기술 기업들이 자리잡고, 아메리칸 드림 도시 2위, 살고 싶은 도시 5위로 뽑히기도 했다. 2009년에는 G20 세계정상회의가 피츠버그에서 열렸다. 오바마 대통령이 “피츠버그는 21세기형 새로운 일자리와 산업 창출의 모범적 사례”라고 치켜세울 정도로 성공한 도시가 되었다. 무엇이 대표적인 러스트벨트 도시를 21세기 경제의 신모델로 만들었을까?

재기의 계기가 된 것은 1983년 펜실베니아 주정부에서 실시한 BFP(Ben Franklin Partnership) 사업이었다. 주정부, 경제계, 그리고 펜실베니아의 연구중심대학 간의 협력거버넌스를 만들고, 4곳에 첨단기술센터(Advanced Technology Center)를 건립하는 것이었다. BFP는 벤처캐피탈의 역할도 했다. 피츠버그의 카네기멜론대학과 피츠버그대학이 공동으로 BFP 사업을 유치하여 첨단기술센터와 Innovation Works라는 기술투자회사를 세웠다. 초점은 상용화가 가능한 기술개발과 창업지원이었다. 과거 피츠버그가 누렸던 풍부한 자원과 물류 등 지리적 잇점에서 벗어나, 세계 수준의 연구대학을 활용해 연구개발을 산업화하기로 한 것이다.

카네기멜론대학은 이미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컴퓨터사이언스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다. 연구개발 산업화는 성공적이어서 현재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우버, 인텔, 오라클, 야후 그리고 월트디즈니가 연구소나 지사를 세워 산학협력을 펼치고 있다. 피츠버그대학은 대학병원(UPMC)을 중심으로 의료와 바이오 분야를 특화시켰다. 현재 UPMC는 피츠버그와 펜실베니아 전역에 40개의 병원과 8만7000명의 직원을 거느린 비영리 조직으로 성장하여 피츠버그 최대 고용주가 되었다. 인구 260만명의 광역피츠버그에서 지식산업 종사자만 41만5200명이고, 1990년 이래 12만8400명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미국에서 보스톤 다음으로 학사와 석·박사 학위 소지 거주자가 크게 증가한 도시이기도 하다.

주정부의 자금과 대학의 연구력만으로 피츠버그가 탈산업화시대 신경제의 중심지가 된 것은 아니다. 시민사회 주도의 민관협의체이자 싱크탱크(Think Tank)인 앨리게니 회의(Allegheny Conference)가 그 뒤에 있었다. 앨리게니 회의는 1944년에 멜론 가문의 리차드 킹 멜론(Richard King Mellon), 카네기공과대학(카네기멜론대의 전신) 총장 로버트 도허티(Robert Doherty), 피츠버그 시장 데이비드 로렌스(David Lawrence)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든 단체로 2차 대전 이후 피츠버그 르네상스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끈 바 있다.

피츠버그의 산업이 붕괴되며 경제위기가 가속화되자, 경제계와 대학 총장 및 학자, 시장 등 정관계 인사가 참여한 앨리게니 회의는 21세기 전략(Strategy 21)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제2의 피츠버그 르네상스 운동을 일으켰다. 기술기반 산업과 매력적인 도시 만들기가 운동의 핵심이었다. 주정부의 BFP 사업을 재빨리 유치하여 연구개발 산업을 중심으로 신성장동력을 만들어 내는 데 일조했다. 1985년 화폐가치로 2조원짜리 도시 인프라 혁신 프로젝트를 만들고 주정부와 연방정부 지원을 통해 신공항 건설과 광역교통망 확충 등을 성사시켰다. 그리고 과학자, 엔지니어, 벤처 투자자 등 고학력 인구가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고자, 도심 재개발과 문화시설 확충에도 나섰다. 앤디워홀 미술관 건립, 피츠버그 역사박물관의 도심 이전 그리고 PNC 파크(Pittsburgh Pirates의 홈 야구장) 건립 등이 그것이다.

릭 스태포드(Rick Stafford) 전 앨리게니 회의 사무총장
릭 스태포드(Rick Stafford) 전 앨리게니 회의 사무총장

최근에 피츠버그는 러스트벨트가 아닌 브레인벨트(Brain Belt)로 불린다. 후기산업사회 지식기반 신경제로의 진입에 성공하였다. 샌프란시스코 못지않게 고학력 젊은이들이 모인다. 그러나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앨리게니 회의의 전 사무총장이었던 릭 스태포드(Rick Stafford) 카네기멜론대 교수는 “피츠버그는 성공적으로 부활했다. 그러나 커져만 가는 계층·지역간 소득 불평등 그리고 디지털 디바이드라는 도전을 극복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오클랜드 지역을 중심으로 하이텍 분야와 의료산업의 고임금 서비스 일자리는 늘었지만, 대부분 외지로부터 유입된 지식노동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 지역 토박이들, 특히 과거 제철소와 공장지대의 주민들 중 상당수 젊은이들은 타지로 떠나고 이제는 노인들만 남아 있다.

듀케인 트램
듀케인 트램

1877년 모농게헬라 강변의 공장지대와 그 위 산동네 노동자 거주지를 잇는 트램이 다니기 시작했다. 이후 60개가 설치되어 노동자의 출퇴근을 도왔다고 한다. 지금은 관광용으로 2대만이 가동된다. 이 중에 듀케인 트램(Duquesne Incline)을 타고 산동네에 올랐다. 산동네의 앞 쪽에는 고급 주택들이 일렬로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두물머리 강변과 피츠버그 도심 고층건물 숲을 조망할 수 있는 천혜의 전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뒤편은 다소 낙후한 주택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별다른 전망도 없이 언덕 위에 지은 집들이기 때문이리라. 고급 주택 사이사이 곳곳에 조그마한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모농게헬라 강과 과거 공장터였을 빈 땅을 바라보았다. 태화강의 울산과 포항 등 주변 산업지대가 떠올랐다. 우리나라 중화학공업의 메카. 피츠버그를 반면교사로 삼아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고, 피츠버그를 모델로 삼아 포항공대, 울산과기대 등 대학을 중심으로 첨단 지식산업들이 성장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보았다.

피츠버그/글·사진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연세대 복지국가연구센터 소장 jjya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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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철강회사 홈스테드 제철소 안내판. 건축용 철강재 생산을 선점하면서 부를 축적했다
카네기철강회사 홈스테드 제철소 안내판. 건축용 철강재 생산을 선점하면서 부를 축적했다

“혁신 참여해 과실 나누자”…노조도 4차 산업혁명 ‘동승’

피츠버그가 미국 초기 산업화의 중심지였던 만큼, 노동운동의 발원지이며 중심지이기도 하다. 1881년 12월 미국노동총연맹(AFL)이 역사적인 창립대회를 피츠버그에서 열고 그 출범을 알렸다. 1892년 6명의 사상자를 내며 주 방위군이 투입되어서야 진압되었던 미국 노동운동의 상징적 사건인 홈스테드 철강회사 파업이 벌어진 곳도 피츠버그였다. 1938년 11월 우리나라의 민주노총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산업별노조회의(CIO)가 탄생한 곳도 바로 피츠버그다.(1955년 AFL-CIO로 통합. 현재 본부는 워싱턴 DC)

철강을 비롯한 제조업이 번성하던 1960년대까지 피츠버그의 노동운동은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철강산업이 쇠퇴함과 동시에 노동운동도 힘을 잃었다. 피츠버그의 최대 고용주였던 유에스 스틸이 1979년과 1983년 사이 66%나 감원하였고, 다른 기업들도 미국 남부 혹은 아시아로 이전하거나 아예 문을 닫았다. 지역 노조와 활동가들이 Tri-State Council on Steel and Manufacturing을 결성하고 계속되는 제철소와 공장 폐쇄에 맞서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공공화(국유화)를 도모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실패하였다. 기업 자체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노동운동은 무기력했다.

피츠버그가 인공지능, 로봇연구 등 연구개발과 의료 산업 등 신경제(New Economy)로 부활하고 있는 현재, 노조의 전략은 바뀌었다. 교육·훈련의 강화를 통해 노동자들이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함께 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피츠버그의 전기노조(IBEW-Local 5)가 앞장서고 있는데, 5년짜리 견습생 훈련과 기술자 재직훈련을 노조 조직화와 함께 핵심 사업으로 삼고 있다. 1999년에 피츠버그 소재 17개 건설업 분야 직능노조가 연합해 설립한 건설노조(BG)도 매년 5000명에게 무료로 견습생 훈련을 시키고 기술자 재교육에 나서고 있다. 건설노조 사무총장인 제프 노버스(Jeff Nobers)는 “러스트 벨트 지역의 노동운동도 많이 바뀌었다. 직업능력을 갖추고 정당한 대가를 받고자 한다. 우리는 마약하는 사람은 견습공으로도 안 받고 노조원 자격도 박탈한다. 사용자가 우리 노조원이면 믿고 계약하게 스스로를 관리한다. 이것이 저임 외국인 노동자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방법이다”라고 노동운동의 변화를 전하고 있다.

AFL-CIO는 ‘미래의 일과 노조 위원회(AFL-CIO Commission on the Future of Work and Unions)’를 출범시키고, 2018년 10월 9일 위원장 리처드 트럼크(Richard Trumk)와 사무총장 리즈 슐러(Liz Shuler) 등 최고위 임원진이 AFL-CIO의 고향인 피츠버그의 카네기멜론대학을 방문했다. 미래의 산업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이 위원회는 “노동운동은 기술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혁신이 생산성 증가를 촉발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함께 나눌 부(wealth)를 창출시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는 혁신의 모든 과정, 즉 디자인과 개발에서부터 숙련향상(upskilling), 직업재교육 그리고 신기술의 과실을 나누는 전 과정에서 노동자가 충실한 파트너가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술혁신으로 부가 소수에게 집중될 수도 있지만, 일하는 사람의 생활수준을 높이고 좋은 일자리가 보장되도록 노동운동은 포용적이면서 동시에 강력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혁신에 참여하고 그 과실을 함께 나누려는 미국 노동운동의 변화된 모습이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연세대 복지국가연구센터 소장 jjyang@yonsei.ac.kr

※ 필자가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출발한 2월 29일,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민에 대해 한국여행 금지령을 내렸다. 그러나 불과 보름만에 상황은 급반전하였다. 피츠버그의 모든 직업훈련은 3월 16일자로 중지되었고, 아직 문은 열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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