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경제 헤리리뷰

“건강한 사회보다, 아파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등록 2020-11-27 17:33수정 2020-11-27 21:01

‘불안사회,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2020 사회정책연합 학술대회
‘쉬어도 괜찮습니다’ 토론회

건강 중심사회 대안으로 ‘질병권’ 제시
아파도 잘 살 수 있는 사회
아픈 몸도 일할 수 있는 일터
지난 10월 과로사 택배 노동자 추모 집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10월 과로사 택배 노동자 추모 집회가 열리고 있다

‘아프면 집에서 쉰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정부가 내세운 주요 방역 수칙이다. ‘과로 사회’ 한국에서 견고했던 노동 규범이 팬데믹을 계기로 바뀔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현실의 변화는 매우 더디다. 병가제도가 없는 일터가 수두룩 한데다, 병가제도가 보장되어 있더라도 대체인력이 없다면 동료들에게 부담을 전가하게 될까 미안해 병가 사용이 어렵다.

27일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온라인으로 개최된 ‘2020 사회정책연합 학술대회’에서는 ‘쉬어도 괜찮습니다’라는 제목의 세션이 열려 ‘질병권’에 대한 담론과 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가 이어졌다.

‘질병권, 아플 권리로 다시 만나는 세계’를 주제로 발표한 조한진희 작가는 “건강 중심사회는 ‘아픈 몸’을 열등한 몸으로 만들고 건강한 몸만을 표준이자 정상으로 놓는 사회”라며 비판한다. ‘건강하세요’,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는 말은 물질보다 건강이 우선이다는 뜻의 덕담으로 사용되지만, 그 이면에는 “아픈 몸을 배제”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아픈 몸들은 자기 관리에 실패했다는 비난을 무릅써야 할 뿐만 아니라 “아파서 가난해지고 가난해서 더욱 아프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조 작가는 우리 사회가 질병의 원인을 개인의 부주의함이나 잘못된 생활 습관에서 찾는 것, 즉 ‘질병의 개인화’를 부추긴다고 꼬집는다. 하지만 불안정 노동자들은 점심시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 짠 음식을 급하게 먹는 경우가 많고, 경제빈곤이나 시간빈곤층일수록 담배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된다. 또한 일상적 야근과 과로 때문에 운동이 어려워 건강도 나빠진다.

조 작가는 건강 중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대안적 관점으로 ‘질병권’을 제시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아플 수밖에 없는 구조에 주목하게 된다. 높은 산재 사망률, 최장 노동시간, 성별 불평등, 양극화, 불안정 노동 등은 아픈 몸을 야기하는 구조들이다. 그 결과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사회는 “건강을 잃어도 모든 것을 잃지 않는 사회”, “아파도 잘 살 수 있는 사회”다.

‘질병권’은 일터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는 논의로도 이어진다. 노동시간 단축, 상병수당 등 제도 변화는 물론 노동공간과 시간이 노동자에게 유연한 방식으로 누구나 어디서든 필요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회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일자리와 아픔의 격차’를 주제로 발표한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 박사는 ‘아픔의 경험은 불평등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콜센터,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은 대표적 사례다. 어떤 공간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아픔에 노출되는 정도가 달라진다. 사회안전망은 위험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버팀목이지만 우리 사회는 아픔에 더 빈번하게 노출될수록 사회안전망 보호가 어렵다. 사회안전망의 역설인 셈이다.

권 박사는 2018년 한국노동패널 자료를 분석해(경제활동을 하는 임금근로자 6051명 대상 분석) 유급휴가, 병가제도 가용 여부를 살핀 결과를 발표했다. 근로사업체에서 유급휴가 제도가 운용되는 비율은 정규직 78.8%, 비정규직 36%로 크게 차이가 난다.

특히 아픈 노동자에게 제공되는 안전망인 병가제도의 경우 정규직은 60.4%가 사업체에 제도가 마련되어 있고 제도 이용이 가능한 비율도 57.2%에 이른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사업체에 병가제도가 있는 경우가 23.7%에 그치고 있으며 실제 병가제도 이용이 가능한 경우는 16%에 불과했다.

‘자영업자를 위한 상병수당제도 국제비교 연구’를 발표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기태 박사는 새로 도입될 상병수당 제도는 특수고용노동자 등 비정형 노동자, 자영업자들을 포괄해야 하며 자영업자들에 대한 소득 파악이 중요한 과제라고 짚었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hgy4215@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경제 많이 보는 기사

삼성전자 인사 쇄신은 없었다 1.

삼성전자 인사 쇄신은 없었다

‘1년 400잔’ 커피값 새해에 또 오르나…원두 선물 가격 33% 폭등 2.

‘1년 400잔’ 커피값 새해에 또 오르나…원두 선물 가격 33% 폭등

‘차기 총리설’ 이창용 “경제 어려운데 한은 총재 충실하겠다” 3.

‘차기 총리설’ 이창용 “경제 어려운데 한은 총재 충실하겠다”

세종대 교수 4명,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 선정 4.

세종대 교수 4명,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 선정

기재부, 예산안 야당 단독 처리에 “유감” “민생 저버려” 5.

기재부, 예산안 야당 단독 처리에 “유감” “민생 저버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