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지 시엔에스(LG CNS)를 제외하면 (참여 기업 중에) 대기업이 없거든요. (네이버 계열 법인인) 네이버클라우드도 아직 대기업 규모는 아니고요. 역량 있는 중소기업들이 굉장히 많이 참여해 애썼는데, 대기업 참여제한제 얘기가 나오면서 중소기업의 공은 퇴색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지난달 발생한 코로나19 백신 사전예약 시스템의 먹통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 지원에 참여했던 한 중소기업 관계자의 말이다. 논란이 불거진 질병관리청의 백신 예약 시스템은 국내 한 중소 아이티(IT)기업이 만든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접속장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기업 시스템통합(SI) 계열사인 엘지 시엔에스 등에 도움을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선 ‘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SW) 시장 참여를 규제한 결과’라는 주장이 나왔다. 애초에 인력과 기술이 풍부한 대기업이 백신 예약 시스템을 구축했다면, 이번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논리다. 이에 지난 2013년 대기업 쏠림 현상을 막고, 중소·중견 아이티 기업의 성장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대기업 참여제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소프트웨어 업계의 설명을 종합하면, 지난달 코로나 백신 예약 시스템의 접속장애는 프로그램 자체의 오류와 질병관리청의 서버, 네트워크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결과다. 원래 이 시스템 구축을 맡은 건 지난 2019년께부터 인플루엔자(독감) 예방접종 시스템의 유지·보수 업무를 해온 중외정보기술이다. 이 회사는 올해 1월 질병관리청이 ‘나라장터’(국가종합전자조달 시스템)에 낸 코로나 백신 예약 시스템 구축 입찰공고에 단독으로 응해 사업을 수주했다. 업체가 계약한 사업금액은 14억9천만원이었다.
중소 아이티 기업들은 이번 일과 관련해 중소기업의 기술력 부족만을 지적하는 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송기호 한국정보산업협동조합 전무는 “시스템은 단순히 소프트웨어 개발만으로 작동하는 게 아니다. (접속자가 폭주한) 피크타임 때 필요한 하드웨어, 네트워크 용량 등도 종합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며 “4~5개월 걸리는 일을 두 달 안에 끝내라거나 (대기업 입장에서) 돈도 안 되는 10억~20억원짜리 사업이니까 중소기업이 (입찰에) 들어가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사의 코딩 기법 등에 문제가 있었다 해도 그것만을 원인으로 볼 순 없다는 것이다.
실제 질병관리청 서버는 2000년대 초반 구축돼 동시 접속 인원이 최대 30만명에 불과했다. 이 문제는 백신 예약 시스템 개선 작업에 투입된 베스핀글로벌이 서버 용량을 빠르고 손쉽게 늘릴 수 있는 클라우드(가상 서버) 도입을 지원해 해결할 수 있었다. 이 기업은 2015년 설립된 스타트업이다. 기업의 규모보다 기술력과 경험이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데 더 중요하다는 반론이 나오는 까닭이다.
2013년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현 소프트웨어진흥법) 개정으로 대기업의 공공 발주 소프트웨어 사업 입찰이 제한된 이후 생태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지난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공개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이 제도는 그 취지에 맞게 소프트웨어 중소·중견 기업의 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제도가 시행되기 전인 2011년 국내 소프트웨어 대기업의 공공사업 비중은 전체 매출의 9.2%까지 이르렀는데 2015년 4.4%, 2017년 3.8%로 감소세를 보이며 2019년 1.3%까지 줄었다. 이 기간 전체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중소·중견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51.7%에서 2019년 62.5%로 증가했다. 또한 10년간(2008~2018년) 관련 분야 대기업은 24곳에서 17곳으로 줄어들었고, 중소기업은 966곳에서 2596곳으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최근 소프트웨어 업계에선 대기업 참여제한제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 5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한준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소프트웨어진흥법 개정안 때문이다. 현행법은 사업을 발주한 공공기관이 불가피하게 대기업 참여를 예외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하면, 과기정통부가 민간 심의위원회를 거쳐 공공사업 참여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사업을 발주하는 “국가기관의 장”에게 결정 권한을 줘 별도의 심의 절차가 없다. 지난해 교육부가 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나이스) 사업을 위해 과기정통부에 대기업 참여 허용을 신청했지만 거부된 사례 등에 비춰볼 때 부처별 특성과 자율권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중소·중견 아이티 기업 단체들은 지난달 12일 낸 성명에서 “(개정안은) 지난 8년여간 수많은 중소·중견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증명해 온 소프트웨어진흥법의 성과를 왜곡하고 부정하는 것”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과기정통부 민간 심의위원회에 참여하는 송기호 전무는 “현재도 심의위원회에서 전체 대기업 참여 예외 신청 건수의 약 50%, 사업금액 기준으론 80% 이상이 통과되고 있는 만큼 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참여 기회는 충분히 열려있다”며 “개정안이 통과되면 3대 대기업(삼성·LG·SK)이 공공사업의 70% 이상을 차지했던 2013년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중소·중견기업의 성장 사다리는 완전히 무너지게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각양각색 삼성·LG·SK 계열사들의 변신
2013년 3월 대기업집단(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아이티 서비스 기업들의 공공사업 참여가 제한된 이후 ‘빅3’ 계열사(삼성·LG·SK)의 현재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삼성에스디에스(SDS)는 제도 시행 직전인 2012년 물류 컨설팅 기업 이엑스이씨엔티(EXE C&T)를 인수하며 아이티 기반 물류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13년만 해도 이 회사 연결기준 매출의 59.82%(4조2151억원)는 시스템 통합구축·관리 사업에서 나왔고, 물류부문 비중은 26.07%(1조8370억원)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물류사업이 전체 매출액의 51.8%(5조7029억원)를 차지했다. 이 기간 총매출액은 2012년 6조1058억원에서 지난해 11조174억원으로, 영업이익도 5580억원에서 8716억원으로 증가했다.
삼성에스디에스가 물류 업무처리 아웃소싱(BPO) 사업으로 외형성장을 이뤘다면, 엘지시엔에스(LG CNS)는 상대적으로 본업인 아이티 서비스 고도화에 집중한 편이다. 최근엔 이 회사도 인공지능(AI),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물류사업을 한다. 엘지 시엔에스는 지난해 7600억원 규모로 추산되는 국내 물류 자동화 시장에서 30%의 점유율 30%를 기록하며 업계 1위를 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출은 2012년 3조2495억원에서 지난해 3조3604억원으로 비슷했지만,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372억원에서 2461억원으로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현재 내후년을 목표로 상장을 추진 중이다.
에스케이씨앤씨(SK C&C)는 지난 2015년 지주회사 에스케이㈜와 합병돼 현재는 법인이 아닌 에스케이㈜의 사업부문으로 남아있다. 지난해 에스케이㈜의 아이티 서비스 사업실적은 매출 1조7999억원, 영업이익 1862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는 씨앤씨 사업부문의 자체 사업만 반영된 것이라 전체 실적을 담지 못했다는 게 회사 쪽 설명이다. 씨앤씨 사업부문이 투자한 합작법인(JV)과 자회사의 실적은 에스케이㈜의 연결매출에 반영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