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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T

NFT는 미술계의 금맥? 신기루?

등록 2021-12-26 18:08수정 2021-12-26 21:21

리암 샤프는 작품을 온라인에서 공개해왔지만, 그의 작품(왼쪽)을 훔쳐서 이를 NFT로 발행(오른쪽)하는 절도 행위가 발생하고 있다.  리암 샤프 트위터
리암 샤프는 작품을 온라인에서 공개해왔지만, 그의 작품(왼쪽)을 훔쳐서 이를 NFT로 발행(오른쪽)하는 절도 행위가 발생하고 있다. 리암 샤프 트위터
“슬프네요. 제 데비앙아트 갤러리를 몽땅 폐쇄하려 합니다. 사람들이 자꾸 내 작품을 훔쳐 엔에프티(NFT)로 만들고 있거든요.”

리암 샤프는 12월18일, 트위터으로 ‘디지털 폐업’을 선언했다. 그는 영국 유명 작가이자 그래픽 노블 아티스트다. 작품을 공유하는 온라인 갤러리를 14년째 운영해 왔지만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엔에프티 절도범 때문이다.

‘대체불가능토큰’인 엔에프티는 올 한 해 디지털 경제를 뒤흔든 열쇳말이다. 엔에프티는 디지털 아티스트에게 신천지를 예고했다. 누구나 복제해도 손 쓸 방도가 없었던 디지털 작품에 위조가 불가능한 인증서를 붙여서 판매하게 해 준다니, 귀가 번쩍 뜨이지 않겠는가.

성공 신화도 이어졌다. ‘엔에프티’를 붙인 고양이 게임 캐릭터가 우리돈 20억원 넘게 팔렸다는 얘기는 열풍을 풀무질했다. <뉴욕타임스>는 칼럼에 엔에프티를 붙여 6억3천만원에 팔았고, 트위터 창업자는 자신이 올린 첫 트윗을 팔아 32억원을 벌었다. 아디다스는 올해 12월, 처음 발행한 엔에프티로 2300만 달러, 우리돈 270억원이 넘는 수익을 거둬들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도 올해 12월, 자체 엔에프티를 발행하며 가상 재화 경제에 뛰어들었다. 인스타그램도 게시물을 엔에프티로 발행, 이용자끼리 거래하는 기능을 준비중이다.

엔에프티는 또한 메타버스 속 아이템, 아바타, 한정판 상품 등에 두루 붙어 유통된다. 메타버스 속 알짜배기 땅이나 요트 등은 실물 땅과 요트보다 더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이 재화의 주인을 인증해주는 것도 엔에프티다.

하지만 그늘도 짙다. 리암 샤프 사례에서 보듯, 엔에프티 작품 거래는 디지털 저작권 관리의 난맥상을 다시금 드러냈다. 미술의 대중화를 가져왔다고 하지만, 실제 거래된 엔에프티 미술작품은 상위 1% 뿐이다. 승자독식은 더욱 굳건해졌다. 엔에프티로 소유권을 증명하려면 대규모 블록체인 시스템을 돌려야 한다. 환경 측면에선 퇴행이다. 법은 이 새로운 시스템에 대응할 준비조차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다 제쳐두자. 누구나 쉽게 복제할 수 있는 디지털 작품을 굳이 비싼 셈을 치르고 구매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다. 그런데 그 값을 치를 만큼 작품 가치를 인정해서인가, 혹은 남에게 더 비싸게 팔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까?

엔에프티는 위조 불가능한 증명 수단이지만 작품의 가치 자체를 대체하진 않는다. 닭장에 최첨단 보안 장치를 달았다고 해서 닭장이 전원주택이 되는 건 아니다. ‘고양이 그림 한 장에 10억원’이란 극적인 성공신화 뒤엔 창작자 허락 없이 빼돌린 작품을 사고파는 장물아비들의 남루한 현실이 똬리틀고 있다.

인터넷은 무한 복제가 가능한 플랫폼이지만, 모든 복제가 합법인 건 아니다. ‘기술 복제 시대’에 진품에 ‘아우라’를 부여하는 수단이 엔에프티라면, 그 가치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일에 머리를 맞댈 때다. 인증이란 권위로 포장한 장물이 활개치는 사막에서 ‘엔에프티 이코노미’는 신기루일 뿐이다.

미디어전략팀장 asada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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