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S-B 정보 시스템은 항공안전을 위해 전세계 항공기들의 실시간 운항정보를 1초 단위로 공개하고 있다. 지난 3일 밤 한반도 주변을 날고 있는 항공기들의 실시간 정보. FlightAware 제공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1949년 발표한 소설 <1984>에서 빅브러더가 감시도구 텔레스크린을 통해 모든 시민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미래 전체주의국가의 출현을 경고했다. 오늘날 중국처럼 정부가 주도적으로 얼굴인식 기술과 사회신용시스템 등을 통해 시민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국가들도 있지만, 인터넷 환경에서는 ‘만인에 의한 감시’도 못지않게 위험하다. 고도화하고 있는 추적 기술의 사례를 살펴본다.
트위터 계정 @ElonJet에 공개된 일론 머스크 소유 자가용 비행기의 지난 1월25일 운항정보. 하와이 마우이섬 카훌루이국제공항에 착륙한 상세 정보가 드러나 있다. twitter@ElonJet 제공
최근 외신을 통해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의 자가용 비행기 운항 경로가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 추적 공개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미국 플로리다에 사는 19살의 대학생 잭 스위니가 운영하는 트위터 자동계정(봇) ‘일론젯(@ElonJet)’은 일론 머스크의 자가용 비행기(N628TS)의 이·착륙 시간, 공항, 여행 기간 등을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있다. 2020년 6월 개설된 이 계정의 팔로워는 32만명을 넘는다.
머스크가 지난해 11월30일 스위니에게 “(일론젯) 계정을 내려줄 수 있겠니? 보안상 위협이야. 난 미치광이의 총격을 받고 싶지 않아”라는 트위터 비공개메시지(DM)를 보내고, 계정 삭제 대가로 5000달러(약 600만원)를 제의했다. 스위니는 머스크의 제안을 거부하고 역으로 “대학 등록금과 테슬라 모델3를 사는 데 쓰겠다”며 5만달러(약 6000만원)를 요구했다. 머스크는 지난달 19일 스위니에게 비공개메시지를 보내 “계정 폐쇄를 위해 돈을 내는 것은 옳지 않다”며 수정 거래 요청을 거부했다. 이런 사실은 스위니가 트위터에 메시지를 공개하면서 알려졌다. 스위니는 머스크의 비행기외에도 빌 게이츠, 제프 베이조스, 래퍼 드레이크, 마크 큐반 등 억만장자들의 자가용 제트기의 위치와 경로를 추적해 공개하는 자동화된 트위터 계정 15개를 더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개인용 비행기를 추적하는 트위터가 이미 공개되어 있는 항공운항 정보를 활용했다는 점이다. 스위니가 운영하는 트위터 계정은 항공 안전을 위해 전세계 항공기들의 운항정보(항공기 식별부호, 위치, 속도, 방향 등)를 1초 단위로 방송하는 시스템(ADS-B)의 정보를 자동으로 반영한다.
애플이 지난해 4월 출시한 위치 추적용 소형 블루투스 기기 ‘에어태그’가 스토킹에 활용된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1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뉴욕주 웨스트세네카 경찰서에는 차량에서 미행 목적으로 의심되는 에어태그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2건 접수됐다. 펜실베이니아와 아이오주 경찰에도 유사한 신고가 접수됐다. 애플은 지난달 스토킹 우려가 있는 에어태그 추적을 탐지하는 데 유용한 안전지침을 공표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지난해 1월6일 바이든 대통령 취임에 반발해 미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친트럼프 시위대의 신원을 사건 발생 직후 전원 식별하고 6일 만에 70명을 기소했다. 짧은 기간에 난입 시위대의 신원을 확인한 데는 얼굴인식앱 클리어뷰를 비롯한 인공지능 얼굴인식 기술의 기여가 컸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의 자가용 비행기 궤적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트위터계정 @GatesJet가 지난 5일 게이츠 소유 비행기가 시애틀 공항을 이륙했다는 정보를 자동으로 올려놓았다. 잭 스위니가 개설한 16개 추적 계정의 하나다. twitter@GatesJet 제공
영국 정부는 최근 ‘숨을 곳은 아무 데도 없다(No place to hide)’는 구호를 내걸고, 소셜미디어 등에서 암호화된 상태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종단간 암호화 통신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미성년 대상 성범죄나 테러 등 범죄에서 수사당국의 접근이 어려운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다. 국내에서 범죄 혐의와 관련된 텔레그램, 아이폰 문자메시지 계정에 수사권이 접근하지 못해 문제되는 상황과 유사하다.
인터넷에서 공개 정보와 도구를 이용한 추적기술은 계속 발달하고 있다. 스마트폰 보급 초기 국내외에서 스마트폰 위치 정보를 활용해 여성들을 추적하는 ‘내 주변 여자들’ ‘오빠 믿지’와 같은 스토킹 앱이 등장했다가 비판을 받고 사라진 일이 있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빠른 기술 변화에 사회 제도가 기민하게 대응하기 어려운데, 이 틈을 악용하는 어뷰징 기술의 폐해도 크다. ‘일론젯’과 같은 ‘만인에 의한 감시’를 막기 위해 항공 안전을 위한 정보 공유를 중단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일론젯’은 신기술과 인터넷 정보 공개의 사회적 합의에 대한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학의 프라이버시 연구자 폴 버널은 최근 “인터넷에 위험한 포식자들이 많을수록 안전하게 숨을 곳이 중요하며 숨는 방법을 배우는 게 필요하다”고 자신의 블로그에 밝혔다. 그는 ‘숨을 곳은 아무 데도 없다’는 캠페인의 가장 큰 문제는 “숨는 것이 나쁜 것이라는 이미지를 정부가 퍼뜨린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기술적·제도적 노력과 함께 이용자 스스로 온라인에서 프라이버시의 가치와 지키는 법을 어려서부터 교육하는 게 중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