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영 한양대 교수는 최근 방송 <당신의 문해력>과 저서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를 통해, 디지털 시대 긴 글 읽기 능력이 취약해진 현상에 대한 대응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도 처연한 계급우화” 2019년 개봉한 <기생충>에 대한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한줄평이 내용과 별개로 어휘의 적절성 논란으로 이어졌다. 대체공휴일로 ‘사흘 연휴’가 생겼다는 보도에는 “왜 3일 연휴인데 사(4)흘이라고 보도하냐”는 댓글과 함께 ‘사흘’이 포털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안철수 후보에게 “무운을 빈다”고 말하자, ‘운이 없기를 바란다’고 해석한 기사가 잇따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5월 발표한 <피사(PISA) 21세기 독자: 디지털 세상에서의 문해력 개발> 보고서에서 한국의 만 15살 학생(중3, 고1)들의 디지털 문해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중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그래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1년 5월 발표한 <피사(PISA) 21세기 독자: 디지털 세상에서의 문해력 개발> 보고서에서 한국 15살 학생들의 디지털 문해력은 충격적으로 낮은 수준이었다.
지난해 교육방송(EBS)이 방영한 <당신의 문해력>은 특정 세대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세대가 긴 글 읽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려줬다. <당신의 문해력> 패널로 출연한 조병영 한양대 교수(국어교육학)는 미국 피츠버그대 교수로 10년 넘게 문해 교육을 연구해온 전문가로, 최근 교양서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를 펴냈다. 조 교수를 만나 디지털 시대에 문해력이 문제되는 상황을 물었다. 인터뷰는 지난 10일 조 교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문해력이 교육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리터러시 연구자가 보는 최근 문해력 저하 현상의 문제는 무엇인가.
“국내에 관련한 조사가 없기 때문에 ‘문해력 저하’를 일반화할 데이터는 없다. 하지만 피사 발표로는 분명 저하됐다. 2006년 1위가 2018년 9위로 떨어졌다. 아이들이 어려운 단어를 모르는 현상은 세대간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디지털과 인터넷을 사용한 지 겨우 30년이다. 그동안 의사소통 경험과 정보환경이 크게 바뀌었고 이는 세대간 경험의 차이, 사용 어휘의 차이로 나타난다. 각 세대가 살아가는 문해환경이 달라진 것을 의미한다.
오이시디 데이터에서 주목할 점은 문해력의 양극화 현상이다. 모든 학생들의 문해력이 저하된 것이 아니라, 못읽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비판적 사고는 고사하고 글에 있는 최소한의 정보를 읽어내기 어려운 학생들의 비중이 늘어났다는 게 문제다. 교과과정 개편에서 창의성 등을 강조하면서 기능적 문해력이 낮은 학생들을 위한 대책이 부족했다는 점도 배경이다.”
—사회 변화에 따른 세대간 문해력 차이는 항상 있어 왔는데, 무엇이 다른가.
“과거엔 그래도 사는 데 문제가 없었다. 암기식 교육이 과거엔 매우 효율적이었고 유용했다. 그런데 시대가 변화무쌍해지고 창의성 등이 중요해졌지만 학교는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또한 능력의 저하라기보다 읽고 쓰는 일을 아이들이 가치있게 여기지 않는다. 지식과 앎, 대화와 토론에 대한 경시 문화가 있다.”
—왜 지식 경시 문화가 생겨났다고 보나.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입시 위주 교육을 하다보니 문제풀이식 정답찾기를 많이 한다. 답이 하나만 있으니 무조건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교과서는 질문할 필요 없다.”
—텍스트보다 동영상 위주의 정보 이용도 관련이 있나.
“동영상을 보고 있으면 정보가 저절로 들어온다. 이해했다고 보기 어려운데 알고 이해했다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수동적 이용이 늘어나면 인식에서 주체성이 약해진다. 지성과 진실은 외부의 정보를 갖고 자기 안에서 구성해내는 것이다. 사람들이 뭔가 안다는 것을 단지 정보를 아는 것으로 취급하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나?
“정보는 맥락과 상황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데, 정보를 개별적으로 이해한다. 안 배워서가 아니라 맥락 이해 없이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낱개 정보를 찾고 읽는 것에 익숙하다. 세상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중요한 문제는 많은 것을 찾아보고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스스로 구성해내는 일이 필요하다. 정보를 빠르고 쉽게 찾을 수 있게 됐지만 맥락을 놓치기 쉽다. 디지털에서 잘 읽는 방법은 연결해서 읽을 때 가능하다.”
—오늘날은 정보 홍수의 환경인데.
“디지털 이전에 필요한 정보는 생존과 성공에 중요한 정보였다. 디지털에서는 생존과 관련 없는 많은 정보가 넘쳐난다. 지금은 즐거움과 웰빙을 위한 정보를 찾는 경향이 있다. 나는 요즘 사람들이 정보 홍수 아닌 정보 결핍에 시달리고 있다고 본다.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라는 측면에서는 정보 결핍이다. 그런데 대부분 자각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넘쳐나게 들어오는 정보의 유해성, 유익성을 판별하기 어렵다. 있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고, 자신의 일은 그걸 찾아내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런 태도가 왜 문제되는가.
“삶의 문제 해결은 내가 찾은 것들을 기반으로 나의 인식과 상황을 연계해 자신의 답으로 재구성하는 일이다. 존재하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당장 사는 데 문제없지만 복잡하고 중요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세대간 리터러시 능력의 차이인가, 리터러시에 본질적 위기가 닥친 것인가.
“리터러시를 문자를 읽는 능력으로 보면 저하가 맞지만 텍스트 읽기로 본다면 다양한 미디어 환경에서 리터러시의 근본적 저하라고 보기는 어렵다. 2500년 전 문자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우려도 비슷하다. 디지털과 인터넷을 본격 사용한 지 겨우 20~30년 정도다. 리터러시 능력은 계속 바뀐다. 다만, 다양한 형식의 텍스트를 연결하고 종합해 다룰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바우하우스 교수를 지낸 시각예술가 라슬로 모호이너지는 ‘미래의 문맹은 글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지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문해력 평가가 기성세대 위주의 테스트라는 견해도 있다. 갈수록 이미지 위주 콘텐츠와 소통이 늘어날텐데, 젊은 층보다 중장년 이상의 리터러시가 문제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이미지 모르면 문맹이라 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중요한 의미 소통은 여전히 문자로 이뤄진다. 문자는 의미를 구체적으로 만들어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반면 이미지는 공간적이기 때문에 다양한 의미와 해석이 가능하다. 사실 아이들도 텍스트로 소통한다.”
—문해력 위기 속에서 유튜브 등 동영상 이용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데.
“기술은 가장 자연스럽고 쉬운 방향으로 발전한다. 결국 사람이 가장 쉽게 정보를 취득하는 방식인 이미지와 음성을 더 많이 보고 듣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문자를 읽고 이해하는 방식은 몇백년 전에야 보급된 비자연적인 정보 취득 방법이다. 그런데 기술의 방향이 사유와 지성의 방향과 안맞을 수 있다.”
—기술이 지성의 방향과 맞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정보 취득 측면에서는 문제없다. 그런 일들은 결국엔 기계의 몫이 될 것이다.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은 사유하고 분석하고 판단해야 하는 일이다. 최종적 판단이 사람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단순 정보 취득을 넘어서는 리터러시는 미래에 가장 핵심적인 능력이다. 리터러시는 정보 취득이 아니다. 정보는 세줄 요약된 것을 보면 된다. 문자는 추상 기호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게 아니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동영상도 보는 것을 넘어 읽어야 한다.”
조병영 한양대 교수는 최근 방송 <당신의 문해력>과 저서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를 통해, 디지털 시대 긴 글 읽기 능력이 취약해진 현상에 대한 대응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해력이 중요한 이유는 갈수록 희소해지기 때문인가.
“점점 복잡한 상황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정보량이 많아지고 세상은 더 복잡해지고 연결성은 높아진다. 정보를 연결하고 선택하고 분석하고 적용하는 능력은 예전보다 훨씬 복잡해질 것이다. 과거 신문을 읽고 복잡한 의사소통하던 시기보다 미래는 훨씬 도전적 상황이 된다.”
—미래 세대에게 미디어의 주체적 이용법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뭔가를 수용할 때는 비판 정신이, 만들 때는 창의성이 필요하다. 디지털은 뭔가를 만들어내는 데는 유용한데, 좋은 것을 만들기 위해선 좋은 것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 젊은 세대가 디지털에서 창조적이 되자면 좋은 것을 판단하고 재구성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젊은 세대가 좋은 정보를 만들기 위해 리터러시를 높여야 한다는 학습 요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읽기 교육은 쓰기 교육과 함께 가야 하고 디지털 리터러시는 수용 측면과 함께 생산 측면이 모두 중요하다. 특히 사유역량, 능력, 기술 등은 진공상태에서 습득되는 게 아니라 각자의 구체적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다.”
—가정에서는 어떤 문해력 교육이 필요한가.
“부모들이 책을 사주면서 문해력을 가르치려고 하는데 잘못된 방향이다. 체계적인 문해력 교육은 학교에 맡겨야 한다. 가정에서 문해력과 관련해 가장 신경써야 할 것은 다양한 경험을 위한 장이 되는 것이다. 다양한 주제의 대화가 출발점이다. 뉴스나 일상에서의 일을 소재로 자녀와 대화하는 게 중요하다. 아이들이 부모와 대화 안하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그릇된 정보를 취득하는 경우가 많다.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상의 문제를 소재로 이야기하고 다양하게 분석하는 문화가 주체적인 문해력 향상에 무엇보다 도움된다.”
글·사진/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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