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보업체 ㄱ사는 온라인 회원을 받을 때 ‘마케팅 활용’을 명목으로 이메일 주소와 휴대전화 번호 같은 개인정보를 제공할 것을 요구한다. 개인정보 제공·활용 등에 동의하지 않으면 다음 가입 절차로 넘어가지 못한다. 개인정보 제공·활용에 동의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것이다. 온라인 쇼핑몰 ㄴ사는 콜센터 등 하청업체에 회원 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누리집에 올라온 개인정보 관련 안내문에는 이런 내용이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 있어, 회원들은 자신의 어떤 정보가 누구에게 넘어가는지 모른 채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정보보호법은 두 회사의 이런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모두 ‘위법’으로 본다. 개인정보 처리자는 개인정보 처리 관련 안내문에서 중요 항목의 글씨 크기를 키우는 등 가독성을 높여야 하고, 개인정보 처리방침에 동의하지 않는 고객에게도 서비스 이용에 불이익을 줘서는 안된다는 법 취지에 어긋나서다.
3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이런 내용을 정리한 ‘알기 쉬운 개인정보 처리 동의 안내서’와 ‘개인정보 처리방침 작성 지침’을 발표했다. 이들 가이드라인은 개인정보 처리자가 개인정보 처리 동의를 받을 때 준수해야 할 주요 사항으로 △개인정보의 최소 처리 △처리 주체의 명확한 표기 △부동의 시 불이익 부과 금지 등을 들었다.
우선 개인정보 처리자는 홍보·판촉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활용하거나 생체정보 등 민감정보를 수집·처리할 경우 관련 내용을 다른 내용보다 20% 이상 큰 글자로 표기해 눈에 쉽게 띄게 해야 한다. 활용 동의는 개인정보 처리 필요성을 미리 예측해서 회원가입 시점 등에 포괄적으로 받아선 안되며, 필요할 때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대상으로 동의를 받아야 한다. 동의하지 않는 고객에게도 재화·서비스 제공 거부 등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
개인정보위는 개인정보 처리방침에 포함돼야 할 구체적인 내용도 제시했다. 개인정보 처리자는 고객 개인정보를 해외로 이전할 경우 어떤 개인정보가 어느 국가에, 어떤 목적으로 이전되는지 등을 명시해야 한다. 만 14살 미만 아동의 개인정보를 처리할 때는 법정대리인의 동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안내해야 한다. 이밖에도 개인정보위는 긴급상황 발생 시 처리되는 개인정보와 근거 법령, 개인정보 보호인증 등 안전성 확보 조처 여부 등을 표기하게끔 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상당수 시민들이 동의서·안내문을 제대로 읽지 않은 채 개인정보 활용에 동의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마련됐다. 지난해 개인정보위의 설문조사 결과 ‘개인정보 처리 동의서를 확인한다’고 밝힌 응답은 66.1%에 그쳤다. 개인정보 처리자가 동의서를 ‘날림’으로 만들어 정보 주체가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윤종인 개인정보보호위원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개인정보 안심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기업들의 자발적인 관심과 협조를 당부한다. 개인정보위도 (개인정보 처리) 동의를 실질화하고 정보 주체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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