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 모습. 뒤로 게임업체 위메이드 사옥이 보인다.
6일 오전 9시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지하철 판교역에서 판교테크노밸리로 넘어가는 횡단보도에는 신호를 기다리는 직장인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엔씨소프트의 파란색 야구 점퍼를 입거나 카카오의 노란색 사원증 등을 목에 찬 이들이 출근길에 만난 동료와 담소를 나누며 소속 회사 사옥으로 향했다. 시스템통합(SI) 회사에 다니는 한 개발자는 “회사에서 주 2회 재택근무를 권하고 있지만 가급적 매일 회사에 나오고 있다. ‘완전 재택근무’를 하던 때보다 (사무실 출근하는) 지금이 업무 하기엔 편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2년여 동안 재택근무를 하던 ‘아이티(IT)인’들이 속속 사무실 출근을 재개하고 있다. 원격근무 여건이 비교적 잘 갖춰진 아이티 회사들 상당수는 ‘코로나19 대유행 시국’ 초기부터 원격근무를 시작했지만, 최근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기조에 맞춰 재택과 사무실 출근을 병행하는 모습이다. 감염병 종식 이후까지 염두에 두고 ‘포스트 코로나’ 근무체제를 준비 중인 곳들도 많다.
6일 <한겨레>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네이버는 새 근무체제 마련을 위한 본사 임직원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지난 5일 사내망에 공지했다. ‘하이브리드’(혼합형) 근무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52.2%로 가장 많았다. 하이브리드 근무는 일주일 중 며칠만 사무실로 출근하고 나머지는 원격 근무를 하는 체제이다. 주 5일 원격근무가 41.7%, 주 5일 사무실 출근이 2.1%로 뒤를 이었다.
네이버는 이번 설문 결과를 바탕으로 5월까지 구체적인 새 근무체제를 확정할 예정이다. ‘일주일에 하루 이상 회사에 나오겠다’는 응답이 절반 이상인 만큼 지금과 같은 ‘완전 재택’은 종료될 가능성이 크다.
6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서 판교역으로 가는 건널목이 직장인들로 붐비고 있다.
다른 아이티 회사들의 원격근무도 끝나가는 분위기다. 카카오는 일정상으로는 오는 6월까지는 전 직원이 원격근무를 할 수 있다. 이후에는 감염병 확산세 등을 참고해 새로운 근무제도를 공지할 예정이다. 다만, 지금도 급한 일이 있거나 출근을 원하는 직원은 사무실에 나올 수 있다. 개발·영업 부서 등에서는 이미 자율적으로 사무실로 출근하는 직원들이 부쩍 늘었다.
게임업체 엔씨소프트 역시 지난 2월 말부터는 직원들에게 원격 근무나 사무실 출근을 자율적으로 선택하게 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 오는 16일부터는 새 근무체제를 적용할 방침이다.
아이티업체 직원들 사이에선 사무실 출근에 대해 아쉬움과 기대가 엇갈린다. 코로나19 대유행 동안 회사를 옮겼거나 신규 입사한 이들은 사무실 출근을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 사내 메신저 사진이나 화상회의 등이 아니면 아직까지 동료 얼굴을 못 본 경우가 많아서다. 지난해 하반기(7∼12월) 분당 소재 포털업체로 이직한 한 직원은 “아이티 회사 직장문화는 ‘팀바팀’(팀 바이 팀)이라 불릴만큼 부서마다 천차만별인데, 재택 근무 기간엔 동료들 얼굴을 보지 못하니 분위기를 파악할 수 없어 답답했다”며 “재택 근무 기간이 끝나길 기다렸다”고 말했다.
반면 재택 근무가 끝나는 걸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많다. 이번 네이버 설문조사도 세부 항목을 들여다보면 주 2일이나 주 1일 출근 등보다 완전 원격 근무를 원하는 응답이 더 많았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네이버 게시판에는 “주 2일 출근과 완전 원격 두 선택지로 ‘결선 투표’를 하자” 등의 주장이 올라오고 있다.
판교에 본사를 둔 한 아이티 회사 서비스기획자는 <한겨레>에 “재택근무 초기에 회사가 노트북 등을 고성능 모델로 바꿔줘 비대면으로 일하는 데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며 “서울 집에서 판교까지 만원 광역버스 타고 출퇴근할 생각을 하니 막막하다”고 말했다. 한 스타트업 개발자는 “서울 강남의 한 핀테크 회사에선 코로나19에 걸린 사람도 사무실에 나와 마스크를 쓰고 일하게 했다는 ‘괴담’이 돈다”며 “재택근무 기간이 공식적으로 끝나면 우리 회사에서도 이런 사례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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