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이노베이션 아카데미가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설립한 소프트웨어 교육기관 서울42. 이노베이션아카데미 제공
100평 넘는 공간에 컴퓨터 143대가 마주보고 가지런히 놓여 있다. 비전공자도 코딩을 배울 수 있는 42서울 교실 모습이다. 뻥 뚫린 커다란 교실엔 교사도, 칠판도, 교재도 없다. 에콜42는 프랑스의 인터넷 1세대 기업가 자비에 니엘이 개인돈 2천만유로(약 260억원)를 투입해 만든 학교다.
에콜42는 ‘3무 학교'다. 교사와 교재가 없고 학비도 없다. 시스템에서 정해 놓은 50여 프로젝트를 학생 스스로 수행하면서 코딩을 배운다. 본과정에 입학하려면 4주 동안 진행되는 라 피신(La Piscine)이라는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라 피신은 프랑스말로 수영장이다. 물 속에서 스스로 헤엄쳐서 살아남으라는 뜻이다. 교사도 교재도 없기 때문에 학생들이 믿을 구석은 인터넷과 동료뿐이다.
42서울에서 첫 라 피신이 진행될 때 나는 현장을 지켜봤다. 상세한 안내가 제공되는 한국 교육에 익숙한 교육생들은 한달 내내 당황의 연속이었다. 코딩을 배우려면 에콜42 시스템에 접속해야 하는데, 누구도 그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교육생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첫날 시스템 로그인을 못해서 1시간 내내 모니터만 멍하게 쳐다보는 교육생도 있고 첫 시험에서 시험문제를 확인하는 방법을 몰라서 시험장에서 퇴장당한 경우도 있었다. ‘저는 도저히 안되겠어요.’ 짧은 메모와 출입증카드를 자리에 놓고 조용히 사라진 교육생도 있다.
교육생들은 시스템을 통해서 매주 주어지는 미션을 풀어야 한다. 과제 결과물을 시스템에 내면 자동으로 채점이 되고 이후 반드시 동료 평가를 받아야 한다. 동료 평가를 받을 교육생을 찾는 것도 스스로 해야 한다. 다른 교육생에게 본인이 왜 이렇게 코딩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고, 서로 질문을 주고받은 뒤 상대에 대한 평가가 이뤄진다. 과제, 시험, 동료 평가, 멘토 평가에서 종합적으로 우수한 성적을 받아야 본과정에 들어갈 수 있다.
모든 점수를 합계내는게 아니라 항목마다 가중치가 다르다. 예를 들어 첫 시험에 0점을 맞아도 점점 실력이 향상되는 교육생은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휴일도 없다. 24시간 개방된 교육장은 늘 학생들로 북적인다. 마지막 날 8시간 동안 긴 시험을 치른 후 교육생들은 한 달을 함께 수영장에서 허우적거렸던 동료와 부둥켜안고 울기도 한다.
교사와 교재대신 동료와 협업하면서 인터넷에 있는 정보를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촘촘히 설계돼 있다. 기존 학교 수업방식을 그대로 온라인으로 옮긴 게 아니다. 본교육 시스템도 비슷하다. 게임에서 스테이지를 하나씩 해결하듯 코딩 기본 교육부터 블록체인과 인공지능(AI) 알고리즘까지 스스로 학습하도록 설계돼 있다. 에콜42의 인재상은 코딩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두려하지 않고 부딪히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사람이다.
현재를 예측 불가능한 시대라고 한다. 정답도 없는 세상이다. 정답을 가르쳐주는 교육은 이제 의미가 없다. 정답이 없기도 하고, 정답이 있는 경우에는 사람보다 기계가 먼저 알 테니까. 예측이 통하지 않는다고 불안해 하지 않고 침착하게, 더 나아가 변화하는 세상을 두근거리면서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코딩학습법은 매번 다른 파도를 즐기는 서퍼를 닮았다.
강현숙 | 서울여성가족재단 여성경제사업본부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