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의 자동 출입국심사대. 법무부는 내·외국인 입국자 1억7000만명 이상의 사진을 인공지능 학습용으로 활용해왔다. 사진공동취재단
법무부가 ‘출입국 절차 고도화’ 명목으로
내·외국인 얼굴정보 1억7천만여건을 정보주체 동의 없이 인공지능 알고리즘 개발에 활용한 데 대해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인정보위)가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민감한 개인정보 부당 이용과 특정 민간업체 ‘독자적 이익’을 위한 개인정보 이전 등 여러 ‘불법’ 지적이 있었지만, 개인정보위 처분은 과태료 100만원 부과에 그쳤다. 개인정보 이용 계약 구조와 사업 목적 등을 개인정보위가 제대로 살피지 않은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민 얼굴사진 무단 이전에 ‘과태료 100만원’
개인정보위는 27일 전체회의를 열어 법무부 인공지능 식별·추적 사업의 불법 여부를
심의했다. 결론은 이 사업에 활용된 개인정보가 원래의 수집 목적 범위 내에서 활용된 것으로 판단했다. 출입국 심사·고도화를 통해 ‘안전한 국경관리’를 달성하고자 한 것이므로 당초 개인정보 수집·이용 목적 범위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법무부가 민간업체들과 맺은 개인정보 처리위탁 계약의 성립 여부에 대해서도 “적법하다”고 봤다. 법무부는 참여 업체들에 개인정보를 단순히 위탁처리한 것이므로 무단 제공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반면 정보인권 시민단체 등은 “법무부가 참여 업체들에 알고리즘 개발에 따른 지적재산권 등 ‘독자적 이익’을 제공하기로 해 개인정보 처리위탁 계약의 요건을 어겼다”고 지적해왔다. 대법원은 2017년 4월 개인정보 수탁자 권리를 다룬 사건에서 “개인정보 처리 수탁자는 위탁업무에 따른 대가 외에 개인정보 처리를 통한 독자적 이익을 가지면 안 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개인정보위는 법무부가 처리위탁 계약 이후에도 수탁자 명단을 공개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만 과태료 100만원을 부과했다.
법조계 등에서 “개인정보위가 위탁계약서 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탁계약 업체가 20여곳에 이르는 대목을 근거로 든다. 법무부는 2020년 16개 업체, 2021년 8개 업체와 개인정보 처리위탁 계약을 맺었다. 이들 중 가장 우수한 업체를 선정해 솔루션 개발을 맡기는 ‘오디션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최종 선정된 업체 이외 업체들은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바가 없게 되는 셈이다. 모든 업체와의 계약이 “안전한 국경관리 목적에 부합한다”는 개인정보위 결론을 꼬이게 만든다.
참여업체 쪽에선 이 사업에 끼는 것만으로도 ‘이득’을 볼 수 있는 구조다. 공공데이터에 접근해 기술력을 키울 수 있는 데다, 개발된 시스템에 대해 독자적인 저작권 행사가 가능하다. 사업 참여 업체 중 일부는 ‘카메라 영상 딥러닝’ 등으로 특허를 따기도 했다. 김하나 변호사(민변 디지털정보위원회)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개발이 설립 목적인 법인들이 민감정보 등이 포함된 개인정보를 받아 자체 특허 등을 냈다. 시민 개인정보가 이들의 (독자적) 이익을 위해 사용됐다고 볼 수 있다”고 짚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전체회의를 열어 법무부 인공지능 식별추적 사업의 불법성을 심의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제공
개인정보위가 조사 과정에서 이런 정황을 파악하고도 제재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정보위 조사조정국 관계자는 <한겨레>에 “사업 참여에 따른 기술적 노하우 향상의 효과는 (업체 쪽에) 있었다. 어떤 정보를 어느 타이밍에 투입해야 성과가 잘 나온다는 사업기술 향상의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 참여만으로 수탁자에 주어진 이익이 있었다는 얘기다.
‘24개 사업 참여 업체 모두 목적 범위 내에서 개인정보를 처리했다고 볼 수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개인정보위 담당자들조차 답을 꺼렸다. 그는 “개별 사업자가 모두 (사업 목적에) 기여했느냐에 대해 단정적으로 언급하기 어렵다”며 “(모든 사업자가) 직접적으로 안전한 국경관리를 위한 역할을 했느냐의 문제보다는 전체적으로 (그러한 목적의) 흐름 안에서 사업이 진행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감사원에 공익감사 청구가 돼 있다”며 “감사원 쪽에서도 감사 중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 쪽에서도 나중에 (조사 결과)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보인권 시민단체들은 ‘부실 조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이사는 “개인정보위가 ‘힘센 부처’ 법무부를 상대로 독립성 있는 조사를 했는지 의심스럽다. 행정부 간의 짬짬이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시민사회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기다리는 한편, 공익소송 등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개인정보위가 인공지능 정책 강화 움직임을 보이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쪽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뒷말도 나온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