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IFS 프랜차이즈 서울’ 박람회가 열린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관람객들이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한 지능형 운반로봇의 음식 접대 시연을 지켜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풍요를 가져다주지만 일자리도 위협한다. 기계의 등장과 자동화가 인간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자동화 불안’은 산업혁명 이후 반복되어온 논쟁이다. 신기술의 위협이 과장됐다는 비판과 인공지능, 로봇으로 특이점이 도래해 이번엔 다르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상충하는 의견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노동이 그 뿌리부터 변하고 있다는 점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미래의 노동은 어떤 모습이며 인간의 역할은 무엇일까?
■ “20세기는 노동의 시대”
2013년 영국 옥스퍼드대학 칼 프레이와 마이클 오즈번은 자동화로 미국의 직업 약 47%가 사라질 것이라며 기술 대량실업을 예고했다. 반면,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경제학자들은 21개 회원국의 직업들 중 평균 9%만이 자동화하고, 한국은 6%선에 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의 미래에 대한 예측이 상이한 이유는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자동화 정도 역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기술은 인간의 선택없이 자동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중간 숙련 노동자들이 자동화의 최대 피해자라는 데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다. 반복적이고 정형적 업무를 수행할수록 신기술 도입의 직접적 피해를 볼 가능성이 컸다. 비서, 행정 사무원, 생산직 노동자와 판매원 일자리가 줄었다는 통계 결과가 뒷받침한다. 반면 고도의 인지력, 창의력, 판단력을 요구하는 고숙련 노동자의 일은 기계 대체가 어렵고 임금도 상승했다. 돌봄 등 서비스 노동에 종사하는 저숙련 저임금 노동자들도 기계화의 파고에서 비켜서 있다. 결국 안정된 중산층이 몰락하고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소득불평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화되고 있다.
기술은 사람들을 일자리에서 내쫒을 수 있지만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있다. 자동화로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상품 가격이 내려가고 소비가 늘어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다. 여행, 취미 등 여가 관련 일자리도 늘어날 수 있다. 기술 발전과 노동의 관계는 단선적이지 않다. 노동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터는 “기계가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수준은 과장하고 자동화와 인간 노동의 강력한 상호보완성은 무시했기에 비관론이 득세했다”고 말한다.
■ 이번엔
정말 다를까?
20세기는 기술 진보의 물결이 노동자를 밀어내기보다 도움이 된 ‘노동의 시대’였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쓸모도 커져갔다. 하지만 이 균형이 깨지고 있다.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의 저자 대니얼 서스킨드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으로 더 유능해진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면서 전문지식, 직관력과 판단이 요구되는 고숙련 전문직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반복적이고 틀에 박힌 작업은 기계가 처리하고 인간은 최종 판단을 한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딥러닝 등 빅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 발달로 기계가 인간 판단까지 대신하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이미 의사, 회계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의 일 중 상당부분을 데이터 기반 인공지능이 잠식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모든 직업에서 인간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특정한 성격의 업무, 또는 세부 작업에서 사람보다 나은 능력을 보여주며 지원한다. 지금까지는 노동자를 대체하는 힘보다 보완하는 힘이 강했지만 앞으로는 역전되리라는 게 서스킨드의 진단이다. 기계가 모든 업무를 대체하지는 않겠지만 더 많은 업무를 맡을 것이고 일자리가 부족한 기술실업 시대가 본격화될 수 있다.
■ 기술결정론을 넘어서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량실업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라는 견해에 대해 위험한 기술결정론이라는 우려도 높다. 자동화에 대한 불안만 부각되면, 모든 관심은 어떻게 자동화에 잘 적응하고 생존할까로 좁혀진다. 새로운 일과 실천을 만들어낼 인간의 적극적 선택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게 된다.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자를 도와주는 것은 주목받지만 인공지능 속에 있는 인간 노동의 흔적은 숨겨진다는 점도 짚어야 할 대목이다. 로봇이 수행하는 단순한 돌봄노동은 크게 주목받지만, 인간의 돌봄노동은 당연시되고 있다. 하대청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는 “불안한 지위에 있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인공지능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숨기고, 인공지능이 자율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기업은 혁신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된다”고 지적한다 .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 노동을 밀어내고 있다는 점보다 노동의 질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야 말로 인간을 위협하는 ‘미래의 일’의 모습이다. 기존의 정규직 노동은 작은 작업들로 분해되고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의 몫으로 바뀌고 있다. 인간이 인공지능, 로봇과 공존하면서 좋은 일자리를 어떻게 유지해갈 것인가가 관건이다. 결국 우리가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인간 노동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가 문제다.
한귀영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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