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2018년 애플워치에서 파킨슨병을 추적할 수 있는 새로운 리서치키트 API를 공개했다.
파킨슨병은 치매·뇌졸중과 함께 대표적 노인성 신경질환이다. 아직까지 완치법도 없다. 환자들은 일생을 질병과 동거한다. 국내에만 11만명 넘는 사람들이 밥 먹고, 글 쓰고, 걷는 일상을 침해받고 있다.
지금까지 의사들은 일정 시간 동안 환자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이를 토대로 파킨슨병을 진단했다. 파킨슨병은 시간에 따라 증세가 다르게 나타나는 질병이다. 오랜 기간 관찰할수록 더 정확한 진단과 치료법을 찾을 수 있다. 휴대기기는 인간에 밀착된 도구다. 내장 센서로 움직임부터 각종 생체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휴대기기로 모은 데이터와 정보기술(IT)은 난치병에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
애플은 2018년 애플워치에서 파킨슨병을 추적할 수 있는 새로운
리서치키트를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로 공개했다. 리서치키트는 질병 치료를 위해 생체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도구다. 애플 휴대기기 이용자는 생체 정보를 보태고, 이렇게 모인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전세계 연구자들은 의학을 발전시키는 데 십시일반 힘을 보탠다.
애플이 2015년 선보인 ‘엠파워(mPower)’는 파킨슨병 연구를 위한 데이터를 수집하고자 제작된 모바일 응용프로그램(앱)이다. 참가자가 앱을 열고 화면 지시에 따라 동작을 수행하면 아이폰에 내장된 센서들이 민첩성·균형감각·기억력 등을 측정해 데이터로 수집한다. 지금까지 1만명 넘는 참가자들이 엠파워를 통해 데이터를 제공했다. 애플은 2021년 2월 애플워치로 파킨슨병 증세를 정확히 추적할 수 있다는 자체 연구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올해 6월에는 미국 의료 스타트업 룬랩스의 ‘
스트라이브피디(StrivePD)’ 앱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애플워치의 모션센서와 운동장애 API를 활용해 이용자 움직임을 장기간 추적, 파킨슨병 전조 증세를 진단해주는 기능을 지녔다. 스마트워치가 학술용 데이터를 수집하는 걸 넘어 실제 증세를 진단하고 관리하는 기능까지 확장한 셈이다.
스마트스푼도 비슷한 생각에서 탄생한 제품이다. 미국
리프트랩스가 2013년 처음 공개한 ‘리프트웨어’는 파킨슨병 환자처럼 손떨림이 심한 사람들을 위한 숟가락이다. 숟가락에 내장된 센서가 동작을 인식해 떨림의 반대 방향으로 자극을 줘서 손떨림을 상쇄시키는 ‘서모 캔슬링’ 기술을 적용했다. ‘
스테디마우스’는 수전증 환자를 위한 마우스 제작 프로젝트다. 커서 움직임을 감지해 급격히 흔들리는 식의 불필요한 동작을 제거하고 의도치 않은 마우스 클릭도 방지해주는 기능을 갖췄다. 파킨슨병이나 다발성 경화 환자에게도 유용하다.
런던임페리얼대학 의대생이던 파이 옹은 병원에서 만난 할머니를 잊지 못했다. 손떨림이 심한 할머니는 수프를 먹는 데만 30분이 걸렸다. 그나마도 대부분 흘렸다. 파이 옹은 직접 치료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는 어릴 적 갖고 놀던 자이로스코프 팽이를 떠올렸다. 그렇게
자이로기어를 설립하고 ‘자이로글로브’를 내놓았다.
미국 리프트랩스의 스마트스푼 ’리프트웨어'. https://www.youtube.com/watch?v=zPALOTBZqT8 (스테디마우스 시연 동영상)
파이 옹이 설립한 자이로기어의 ‘자이로글로브’
자이로글로브 손등 부분엔 동그랗고 묵직한 장치가 달려 있다. 손떨림이 발생할 때마다 이 장치는 반대 방향으로 힘을 제공해 손떨림을 줄여준다. 약물을 이용한 치료법 대신에 물리 법칙을 이용해 파킨슨병을 치료하려는 시도다. 매일 물을 마시고, 밥을 먹고, 물건을 옮기거나 글을 쓰는 파킨슨병 환자에겐 무척 요긴한 물건이다. 디자인공학자 정수민씨는 런던임페리얼대학 재학 시절, 파킨슨병 환자들이 손떨림을 극복하고 글을 또박또박 쓸 수 있게 돕는 ‘아크펜’을 내놓기도 했다.
먹고 숨쉬는 것이 삶의 동의어는 아니다. 평생을 질병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에게 삶을 돌려주는 일. 휴대기기와 네트워크로 연결된 시대엔 모두가 기여자이자 수혜자다.
이희욱 미디어전략팀장
asada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