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씨제이이엔엠이 선보인 버추얼 프로덕션 스튜디오 안 초대형 엘이디 화면을 배경으로 배우가 연기하고 있다. 씨제이이엔엠 제공
검은 철제 구조물이 양쪽으로 열리자 칙칙하던 스튜디오가 한순간에 눈이 펄펄 내리는 설산으로 바뀌었다. 노을진 하늘, 단풍 가득한 숲 속, 번화가 상점 앞 등 하나둘 바뀌는 배경 앞에서 배우는 연기를 했다. 이를 촬영해 송출한 모니터에는 현지에서 찍었다고 착각할 정도의 영상이 가득 찼다. 스튜디오 내 타원형 모양 큰 벽뿐 아니라 천정까지 덮은 마이크로엘이디(LED)가 구현한 가상 배경 덕분이다.
씨제이이엔엠(CJ ENM)은 5일 ‘씨제이이엔엠 스튜디오 센터’를 공개하고,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스튜디오를 선보였다. 경기도 파주시에 약 21만1571㎡ 규모로 지난 4월 구축된 센터는 마이크로엘이디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버추얼 프로덕션 스테이지’ 등 13개 실내 스튜디오와 다양한 차량 장면을 촬영할 수 있는 다용도 도로 ‘멀티 로드’, 야외 세트 등으로 구성됐다.
특히 버추얼 프로덕션 스테이지엔 동네 수영장보다 조금 작은 길이 20m, 높이 3.6m의 일자형 엘이디 벽과 작은 소행성 하나만한 지름 20m, 높이 7.3m에 달하는 타원형 엘이디 벽 등 총 두 개의 마이크로엘이디 벽이 설치돼 있었다.
5일 씨제이이엔엠이 선보인 버추얼 프로덕션 스튜디오 안 초대형 엘이디 화면을 배경으로 배우가 연기하고 있다. 씨제이이엔엠 제공
버추얼 프로덕션(Virtual Production·가상 제작)은 대형 엘이디 화면을 벽이나 천장에 설치하고 그 앞에서 촬영해 실사 촬영과 유사한 효과를 내는 새로운 제작 방식이다. 디즈니플러스가 지난해 내놓은 오리지널 콘텐츠 ‘만달로리안’ 시즌1이 전체 장면의 절반 이상을 버추얼 프로덕션 방식으로 촬영했다.
씨제이이앤엠은 이날 시범작 ‘엠호텔’을 상영해 버추얼 프로덕션 스테이지 성능을 뽐냈다. 작품은 긴 호텔 복도 양옆으로 문이 늘어선 영상으로 시작했다. 이어 직원이 노크 뒤 문을 하나씩 열자 방의 모습이 들어왔다. 한 방은 모래가 날리는 사막을, 또 다른 방은 등장인물의 콧수염이 꽁꽁 어는 얼음 동굴로 시선을 이끌었다. 이어 등장한 방 문을 열자 터널 속을 달리는 차 안이, 그다음에는 한 발만 내디디면 떨어져 죽을 듯한 대도시 빌딩 옥상 난간이 기다렸다. 모두 마이크로엘이디 벽에 가상 배경을 띄워 놓고 찍은 장면들이다. 심지어 길게 이어진 복도조차 실제로 여닫을 수 있는 문은 두세개 정도만 가져다 두고, 나머지는 엘이디 벽 속 가상 배경으로 대체했다.
5일 씨제이이엔엠이 선보인 버추얼 프로덕션 스튜디오 안 초대형 엘이디 화면을 배경으로 배우가 연기하고 있다. 씨제이이엔엠 제공
김상엽 씨제이이엔엠 연구개발센터장은 “최신 기술과 인프라를 집약한 ‘콘테크’(콘텐츠와 테크놀로지의 합성어)를 통해 배우와 감독의 몰입감을 최대한 끌어올려 콘텐츠의 완성도를 높이고, 시·공간이나 날씨, 팬데믹과 같은 통제가 어려운 환경의 한계를 뛰어넘는 제작 환경을 구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녹색 스크린이나 크로마키를 설치해 두고 그 앞에서 연기하려면 실감이 나지 않아 배우가 몰입하기 어렵고, 감독 입장에서도 사후에 컴퓨터 특수 효과를 입힌 결과물이 촬영 전에 생각한 ‘그림’과 다르면 난감한 경우가 있는데, 이런 어려움을 첨단 기술로 극복한다는 이야기다.
김 센터장은 이어 “현지를 찾는 대신 버추얼 프로덕션 스테이지에 아카이빙해 둔 배경을 불러오기만 하면 여기가 바로 뉴욕이 되고 우주가 된다. 가상 배경을 우리는 ‘애셋’(asset·자산)이라고 부르는데, 전세계 모든 유명한 지역을 미리 담아 둔 애셋이 쌓일수록 콘텐츠 제작자들이 비용과 시간을 크게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5일 경기도 파주시 씨제이이엔엠 스튜디오 센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전성철 커뮤니케이션 담당(왼쪽부터), 김상엽 콘텐츠 연구개발센터장, 서정필 씨제이이엔엠 테크앤아트 사업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씨제이이엔엠 제공
씨제이이엔엠은 현재 버추얼 프로덕션 스테이지로 불러올 수 있는 가상 배경 제작에 12명가량의 내부 인력을 투입했다. 필요한 경우 외부 업체와도 협력한다. 전성철 씨제이이엔엠 커뮤니케이션 담당은 “과거엔 컴퓨터그래픽을 활용한 특수효과 제작이 노동집약적인 ‘사양 산업’에 속했는데 이제는 신기술과 결합해 최첨단 산업이 됐다”고 말했다.
씨제이이엔엠은 앞으로 버추얼 프로덕션 스테이지를 영화와 드라마뿐 아니라 예능, 공연 등 다양한 콘텐츠 제작에 활용할 계획이다. 특히 드라마 제작 부문 계열사 스튜디오 드래곤의 콘텐츠를 이곳에서 찍은 뒤 실시간 동영상 시청 서비스(OTT) ‘티빙’, 종합 엔터테인먼트 채널 티브이엔(tvN) 등 다양한 통로로 전세계에 내보낼 예정이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