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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우리 몸에서 수명을 다했을 때

등록 2022-08-08 09:00수정 2022-08-08 10:01

싱크론은 뇌질환을 앓는 중증 환자의 뇌에 ‘스텐트로드’를 이식해 의사소통 능력을 회복시켜 준다. 싱크론.
싱크론은 뇌질환을 앓는 중증 환자의 뇌에 ‘스텐트로드’를 이식해 의사소통 능력을 회복시켜 준다. 싱크론.

2014년 9월, 인도 뭄바이에 사는 남성이 6400km 떨어진 프랑스 파리에 있는 남성에게 머릿속으로 ‘안녕’이라는 인삿말을 떠올려 이를 전송했다. 메시지를 받는 순간, 프랑스 남성의 뇌에 미세한 활동이 감지됐다. ‘세계 최초의 텔레파시 전송’은 이렇듯 간단한 메시지만 겨우 해독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무궁무진한 뇌파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지만, 생각만으로 대화를 나누고 사물을 조종하는 건 여전히 과학보다 공상에 가깝다. 공상을 과학으로 전환하려는 도전도 끊이지 않는다. 그 중심에 뇌와 컴퓨팅 기술이 교감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이 있다. 이른바 ‘브레인 해킹’ 얘기다.

싱크론은 뇌 컴퓨팅 기업이다. 이 기업은 지난 7월6일 루게릭병으로 불리는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ALS)을 앓는 환자의 뇌에 1.5인치 길이의 칩을 심었다. ‘스텐트로드’ 칩은 가슴에 심은 송신기와 통신하며 뇌 신호를 받아 행동으로 변환해준다. 신체와 언어 능력을 상실한 환자도 그 덕분에 생각만으로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 뇌를 가르는 수술도 필요 없다. 목을 2㎜ 정도만 절개하면 되므로 환자 부담도, 수술 후유증도 적다. 싱크론은 2019년에도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뇌졸중과 루게릭병에 걸린 중증마비 환자에게 스텐트로드를 이식해 의사소통 능력을 되살렸다.

올해 3월에도 비슷한 사례가 화제를 모았다. 스위스에서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34살 남성이 칩 이식 시술을 받았다. 그는 깨어난 뒤 “맥주를 마시고 싶다”거나 카레를 달라고 머리로 말했다.

일론 머스크도 뇌의 무한한 가능성에 일찌감치 도전장을 던진 인물이다. 그는 2016년 뉴럴링크를 설립하고 사람 뇌에 칩을 이식하는 연구를 진행해 왔다. 뉴럴링크는 2021년, 칩을 심은 원숭이가 손을 쓰지 않고 뇌 신호만으로 탁구 게임을 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그 직후 <월스트리트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머스크는 2022년 안에 사람 뇌에 칩을 심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지만, 아직까진 실행되지 않았다. 2019년에는 몸 속에 무선주파수인식(RFID)칩과 근거리무선통신(NFC)칩을 이식해 집의 문을 열고 결제를 하는 영국 여성 윈터 므라즈의 사례가 <비비시>에 소개되기도 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rsCul1sp4hQ)

생각해 볼 대목도 있다. 생체에 심은 첨단 기기들이 유효기한을 넘긴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미국 세컨드사이트메디컬프로덕트 는 시각장애인의 눈에 ‘아르고스2’란 칩을 심어 앞을 보게 해주는 ‘바이오 망막 임플란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까지 350여명이 망막 임플란트 시술을 받았다. 일부는 시력을 회복했지만, 오히려 시야에 방해가 된 사례도 나타났다. 이들은 칩을 제거하길 원했지만, 회사는 재정 위기로 파산 직전이었다. 기존 시술자에 대한 업그레이드 약속도 지키지 않았고, 칩 고장에 따른 수리도 이뤄지지 않았다. 칩 제거는 고통도 수반하는데다 비용도 비싸다. 시술자들은 고장난 칩을 평생 눈에 넣고 살아야 할지도 모를 운명이다. 게다가 이 칩은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등을 할 때 또다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지금 내 몸에 심는 건 최신 기술이겠지만, 내일이 되면 어쩌면 낡고 위험한 기술이다. 폐기된 기술 찌꺼기가 우리 몸 곳곳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몸 안에서 수명을 다한 폐기물과 그에 따른 국민 건강 문제는 결국 공동체의 부채로 쌓인다. 퇴역 기술이 신체를 잠식하는 날은 생각만큼 머지않았다.

미디어전략팀장 asada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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