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1조6700억원을 주고 인수한 미국 온라인 중고 의류 거래 플랫폼 ‘포시마크’는 당근마켓보다는 인스타그램과 유사했다. 지역 기반 중고거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우리나라에선 ‘미국판 당근마켓’으로 불리는데, 포시마크 창업자 얘기를 들어보고 사업 내용을 살펴보니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달랐다. 당근마켓은 지역을 한정시켜 중고거래의 신뢰성을 높였지만, 판매자와 구매자 관계는 상품거래가 끝나면 종결되고 서로에 대한 평가만 남는다. 반면, 포시마크는 인스타그램처럼 서로를 ‘팔로우’하고, 자신이 팔로우한 판매자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도 할 수 있다. 판매 물품이 중고에만 한정되지도 않는다. 판매 노하우를 나누는 오프라인 모임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마니시 샨드라 포시마크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는 12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레드우드에 위치한 포시마크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용자들이 자신의 옷장을 기반으로 서로를 연결해 수익을 창출하고 상호 소통할 수 있도록, 창업 초기부터 커머스(상거래)와 커뮤니티를 결합한 ‘커뮤니티 커머스 플랫폼’ 형태로 서비스를 출시했다”고 말했다. 2011년 사업을 시작한 포시마크는 미국을 중심으로 캐나다·호주·인도에 걸쳐 총 8천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한 북미 최대 온라인 중고 플랫폼이다. 가입자의 80%가 엠제트(MZ)세대이고, 가입자 한명이 하루 평균 25분 이상의 시간을 포시마크에서 보낸다.
마니시 샨드라(가운데) 포시마크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가 12일(현지시각) 포시마크 사무실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네이버 제공
판매자들이 상품을 올리고 구매자들이 상품을 구매한다는 점은 일반 상거래 플랫폼과 유사하다. 다른 점은 `소셜' 기능이다. 판매자는 인스타그램과 유사한 계정을 보유한다. 판매자 계정에 들어가면 판매자가 올린 모든 상품을 확인할 수 있다. 판매자가 올린 상품 개수, 공유된 게시물 개수, 팔로워·팔로잉 숫자 등도 확인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이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는 플랫폼이라면, 포시마크는 자신의 상품 게시물을 공유하는 플랫폼인 셈이다. 특정 판매자와 유사한 취향을 가진 팔로워들이 판매자의 상품 게시물을 공유하면서 판매 가능성을 높여준다.
포시마크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구매자 760만명, 판매자 560만명이 활동하고 있고, 팔로워가 100만명 이상인 판매자도 등장하고 있다. 하루 50만 건 이상의 새로운 판매 글이 올라오고, 10억건 이상의 좋아요·공유 등 소셜 활동이 발생하고 있다.
포시마크 판매자 페이지의 모습. 포시마크 누리집 갈무리
포시마크는 지난해 10월 초 네이버가 2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투입해 인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네이버는 미래 먹거리로 ‘개인 간 거래’(C2C) 서비스를 점찍었다. 이미 스페인·프랑스·싱가포르 등 유럽·아시아의 중고거래 플랫폼에 투자했고, 한국과 일본에서는 직접 서비스를 운영한다.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엠제트 세대에게 중고거래가 이미 라이프스타일로 정착되면서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시투시(C2C) 플랫폼 성장세가 가팔라지고 있는 점을 겨냥한 것이다. 현장에 동행한 최서희 네이버 상무는 “네이버의 커머스 사업 방식이 수많은 사용자 간 자유로운 거래가 이뤄지는 시투시 방식과 유사하다고 판단해 시장 초기부터 장기적인 관점으로 글로벌 포트폴리오 구축을 시작했다”며 “북미시장까지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며 본격적인 글로벌 경쟁에 진출하고, 시투시를 주요 매출원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포시마크를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동안은 시장이 우려를 나타냈다. 포시마크 인수 소식이 발표되자 주가가 하루 만에 8.79%나 하락했다. 경기둔화 국면에서 조 단위의 공격적인 투자가 무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포시마크는 지난해 4400만달러의 영업손실을 봤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들이 속속 커머스 시장에 뛰어들고 있고, 대형 상거래 플랫폼들의 고객 간 커뮤니티 구축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도 언급됐다.
포시마크 쪽은 “아마존, 인스타그램 등을 경쟁자로 보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마니시 최고경영자는 “그 어떤 회사도 소셜, 이커머스, 마켓플레이스를 잘 결합한 회사는 없다”고 말했다. “아마존은 소셜 서비스를 추가하려고 했고, 인스타그램은 커머스를 추가하려고 했지만, 지금까지 포시마크만큼 성공적으로 3가지를 결합한 회사는 없다. 판매자들이 상품을 올리면 팔로워들이 공유해주면서 서로 도와주고, 관계를 이어간다”고 설명했다.
12일(현지시각) 포시마크 사무실에 마련된 스튜디오에서 라이브 커머스가 진행되고 있다. 이 스튜디오는 판매자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안태호 기자
판매자가 제품을 손쉽게 배송할 수 있도록 물류 시스템 ‘포시 포스트’를 마련한 것도 차별화 요인이다. 공동 창업자 트레이시 선 선임 부사장은 “미국은 택배를 보낼 때 굉장히 다양한 배송 옵션이 있어 매우 복잡하다. 포시 포스트 기능을 사용하면, 물건 판매 시점에서 이미 비용이 다 지불되고, 주소가 입력된 스티커가 도착해 손쉽게 배송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빅테크 기업의 투자를 받거나 관련 기술을 지닌 미국 기업 인수·합병에 나서지 않고 네이버의 투자를 받은 이유에 대한 설명도 내놨다. 마니시 최고경영자는 “투자 논의 초기 네이버가 포시마크와 네이버의 기술력을 어떻게 연동해 혁신할 수 있는지를 담은 자료를 공유해줬는데, 포시마크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였다. 네이버가 상당한 시간과 돈을 고객에게 투자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 깊었다. 그런 회사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네이버가 지분 100%를 인수해 소유하지만 포시마크 직원 800여명과 현 경영진은 그대로 유지된다. 2011년 포시마크를 만든 4명의 공동창업자는 여전히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마니시 최고경영자는 “이제 포시마크가 네이버의 일원이 된 만큼, 네이버의 강력한 기술력을 활용해 포시마크의 마케팅, 검색, 커뮤니티 등 서비스 전반에서 판매자와 구매자 양쪽의 경험을 모두 향상시키며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것”이라며 “2024년이면 흑자로 전환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레드우드(미국 캘리포니아주)/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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