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가 이달 중순 진행 중이던 경력 개발자 채용 절차를 돌연 중단했다. 판교에 위치한 기업들도 인건비 부담 등을 원인으로 신규 채용을 줄이는 추세다. 사진은 경기도 판교의 카카오 아지트. 연합뉴스
기술 스타트업에서 프론트엔드(프로그래밍) 업무를 하는 3년차 개발자 박아무개씨는 이직을 위해 올해 들어서만 10여차례 이력서를 넣었으나 줄줄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박씨는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동료 개발자들의 이직이 잦았는데, 경력을 좀더 쌓으려고 기다리다가 이직 시기를 놓쳤다”며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개발자) 채용을 더 줄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정보기술(IT) 업계에 개발자 채용 축소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구직자들의 고용 불안도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틈탄 호황기에 연봉을 높여 ‘개발자 모시기’ 나섰던 기업들이 경기 둔화 영향 등으로 긴축 경영에 나서면서 고용 한파 분위기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여서다.
22일 카카오와 이 회사 전·현직 개발자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카카오가 진행 중인 개발자 수시 경력 채용 절차를 최근 갑자기 중단해 지원자들의 공분을 샀다. 채용 절차가 중단되면서 서류 전형과 코딩 테스트를 통과해 면접 전형을 준비하던 개발자들에게도 일괄적으로 탈락 통보가 보내졌다. 카카오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불확실한 대외 환경 변화로 채용을 보수적으로 간다는 기조 아래 내려진 결정”이라며 “지원자들에게 양해를 구했고, 이후 해당 직군 채용이 재개되면 우선적으로 채용 절차를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코로나19 대유행을 틈탄 호황기에 개발자를 많이 채용한 카카오가 인건비 부담이 늘자 채용 기조를 바꾼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카카오의 지난해 인건비는 1조6871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19% 늘었다. 이는 총 영업비용 중 26%를 차지한다. 인건비 증가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카카오 영업이익(5805억원)은 2018년 이후 처음으로 뒷걸음질쳤다. 올해도 경기 둔화로 광고·전자상거래 시장의 불황이 예상되고, 지난해 발생한 대규모 서비스 장애 사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도 해야 해, 긴축 경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다른 정보기술 기업들 상황도 마찬가지다. 게임 ‘쿠키런’으로 잘 알려진 데브시스터즈는 최근 지식재산(IP) 관련 팀을 해체하고, 이 팀 소속 직원 40여명에 대한 재배치를 논의 중이다. 직원들은 “사실상 구조조정”이라고 보지만, 회사 쪽은 “직원들과 면담을 통해 부서 이동 상황을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슈팅게임 ‘배틀그라운드’ 제작사 크래프톤도 오는 3월부터 조직장 연봉을 동결하고, 필수 개발 인력을 제외한 나머지 직군에 대한 신규 채용을 중단하기로 했다. 대형 게임사 엔씨소프트의 북미법인 엔씨웨스트도 전체 직원 중 20%를 감원하며 조직 개편에 나섰다. 익명을 요청한 게임사 관계자는 “규모가 있는 기업들은 몇 년 사이 많은 개발자를 채용했다. 실적 개선이 불확실한 요즘은 채용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스타트업 붐으로 많은 연봉을 받고 옮겨간 개발자들이 최근 투자 시장이 얼어붙어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다시 구직 시장에 나와 경쟁이 더 치열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중소 스타트업들은 개발자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개발자 몸값이 치솟아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들에겐 경력 개발자 채용이 ‘하늘의 별 따기’란 말까지 나온다. 시드투자를 준비 중인 메신저 플랫폼 회사 직원 오아무개씨는 “3천만원 초중반대 연봉으로 경력 개발자를 찾기 어려워 재택근무와 스톡옵션 혜택들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채용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채용 시장 양극화를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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