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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T

‘가상현실 싱가포르’가 현실의 태풍·홍수 재난 막는다

등록 2023-04-04 11:00수정 2023-04-04 11:19

②신뢰성 높은 공공데이터의 힘
싱가포르 ‘지능형 국가’ 사업 완성
시우 홍 고 싱가포르 정부기술청(GOVTECH) 디렉터가 지난 2월9일 전 국토를 3차원(3D)으로 구현한 ‘가상 싱가포르’에서 실시간 대중교통 흐름을 바탕으로 도심 유동인구를 예측하는 시뮬레이션을 해보이고 있다. 싱가포르/옥기원 기자
시우 홍 고 싱가포르 정부기술청(GOVTECH) 디렉터가 지난 2월9일 전 국토를 3차원(3D)으로 구현한 ‘가상 싱가포르’에서 실시간 대중교통 흐름을 바탕으로 도심 유동인구를 예측하는 시뮬레이션을 해보이고 있다. 싱가포르/옥기원 기자

대형 모니터에 펼쳐진 3차원(3D) 가상도시에서 파란 점들이 싱가포르 랜드마크인 마리나베이샌즈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다. 파란 점들은 도심의 실시간 택시 이동 경로를 나타낸다. 현실을 온라인 공간에 그대로 복제한 ‘가상 싱가포르’(Virtual Singapore)에서 파악한 교통량과 유동인구 데이터가 실시간 안전대책을 수립하는데 쓰이고 있었다.

지난 2월9일 싱가포르 정부 산하 부동산 개발 기관 제이티시(JTC) 서밋에서 만난 시우 홍 고(Siew Hong Goh) 싱가포르 정부기술청(GOVTECH) 디렉터는 “공공 기술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도우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상 싱가포르는 1천억원 가량의 정부 예산을 투입한 ‘지능형 국가’ 프로젝트로, 2018년 완성됐다. 전국 도로·빌딩·건물 등을 3차원 가상 현실에 그대로 옮겨, 도심 개발이나 태풍·홍수 재난 상황 등을 시뮬레이션하는데 쓰인다.

<한겨레>는 싱가포르 정부기술청의 도움을 받아, 가상 싱가포르에서 해안 간척지에 구축한 신도시에 지진이나 홍수가 발생하는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먼저 지반 강도 등을 고려해 각각 높이·면적이 다른 건물들을 3차원 가상 도시에 실제 완공된 것처럼 구현했다. 이후 폭우로 인한 홍수 같은 자연재해 변수를 대입했다. 모니터에는 강수량에 따라 침수되는 지역과 건물들이 나타났다. 해안가에 지진이 발생했을 때 어느 지역과 어떤 형태의 건물들의 피해가 클지도 예측할 수 있었다. 시우 디랙터는 “가상공간에서 현실의 자연재해 피해 상황을 예측해 도시 계획 과정부터 미리 반영할 수 있다”며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한 해안 수위 및 상하수도 상황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싱가포르 도시개발청은 북부 도시 풍골(Punggol)을 설계할 때 가상 싱가포르 플랫폼을 활용했다. 시우 디렉터는 “가상도시에 햇빛이나 바람 변수를 적용하며 각 건물마다 일조량이 적절한 지, 건물들 사이 ‘바람 길’이 잘 만들어지는 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가 이처럼 디지털 트윈에 집중한 이유는 기술을 국가의 미래 생존전략으로 택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 말레이 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싱가포르는 서울보다 조금 더 큰 면적(728㎢)의 도시국가로, 자원도 빈약하다.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만들기 위해 2000년대 초부터 정부 주도로 정보기술통신(ICT) 융복합 정책을 추진해 왔다.

싱가포르 현지에 파견된 국내 클라우드 기업 관계자는 “인구 수가 560만명인데, 돈이 될만한 인프라 자원이 없었다. 생존을 위해 기술에 대한 투자가 중요했다. 사회 엘리트층으로 공무원 사회를 구성해, 정부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가상 싱가포르’ 디지털 트윈 기술로 가상공간에서 실제 건물의 냉방 문제를 파악해 해결할 수 있다. 가상 싱가포르 시뮬레이션 화면 갈무리
‘가상 싱가포르’ 디지털 트윈 기술로 가상공간에서 실제 건물의 냉방 문제를 파악해 해결할 수 있다. 가상 싱가포르 시뮬레이션 화면 갈무리

디지털 트윈은 공공기관 건물 깊숙이까지 적용돼 있다. 안드리안 찬(Andrian Chan) 정부기술청 선임매니저는 “공공건물 공간 곳곳을 3차원 지도로 옮겨놔, 원격으로 특정 사무실의 냉방 장치를 켜고 끄거나 건물 엘리베이터를 작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가 3차원 지도에서 호출하자, 아래 층에서 대기하던 서비스 로봇이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 앞까지 올라왔다. 안드리안 매니저는 “코로나19 확산기에 3차원 지도에서 각 회의실에 몇 명이 있는지 파악해 거리두기를 했다. 각 방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에어컨과 전등이 켜져 있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어서 에너지 절약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디지털 트윈은 사람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데에도 쓰인다. 정부기술청 엔지니어들과 함께 제이티시 서밋 10층 사무실 에어컨에서 화재가 발생한 상황을 가상 지도에 대입해 봤다. 불길과 연기의 이동 방향뿐 아니라 건물 내 사람 수를 고려한 대피로가 화면에 표시됐다. 안드리안 매니저는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3차원 모델링 기술을 융합해 현실의 재난 상황에 대비하고 인명피해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기술청 전문가들은 시연 과정에서 “정부가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많은 사람의 삶이 달라진다”는 점을 제차 강조했다. 시우 디랙터는 “전 국토 디지털화로 도시 계획에 필요한 데이터 대부분을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는 환경이 건설·교통 산업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지능형 빌딩 기술을 공공 건물에 우선 도입한 뒤, 민간 건물들에서도 쓰이도록 운영 소스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이 측정하는 세계 스마트시티 순위에서 싱가포르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개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스마트시티 순위는 전 세계 118개 도시의 기술·경제적 투자와 발전 가능성을 척도화한 ‘스마트시티지수’를 기준으로 해마다 매겨진다. 싱가포르는 정부 기술 투자뿐 아니라 납세 절차와 병원 진료 등 공공시스템을 디지털화하려는 노력으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싱가포르/글·사진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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